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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끝난뒤 더 쏟아지는 비…500년 된 '장마' 표현 사라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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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집중호우가 내린 8월 8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횡단보도에서 우산을 쓴 시민들이 길을 건너고 있다. 연합뉴스

집중호우가 내린 8월 8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횡단보도에서 우산을 쓴 시민들이 길을 건너고 있다. 연합뉴스

500년 넘게 썼던 '장마'라는 표현이 기후변화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기상학계에서도 달라진 장맛비에 맞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기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기상청은 20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기후위기 시대, 장마 표현 적절한가?’라는 주제로 한국기상학회 특별분과 행사를 개최했다. 이번 특별분과 행사에는 기상학계 전문가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여름철 집중호우의 특성과 장마 용어 재정립을 위한 논의가 진행됐다.

장마란 여름철에 오랜 기간 지속되는 비를 말한다. 1500년대 중반 이후부터 ‘오랜’의 한자어인 ‘장(長)’과 비를 의미하는 ‘마ㅎ’를 합성한 ‘댱마ㅎ’로 표현되다가 1700년대 후반 ‘쟝마’로 표기, 1900년대 이후에 지금의 ‘장마’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여름철 집중호우 20%↑…장마철 이후 강수량 더 많아

1991~2020년 기간 강수량의 연내 사이클(전국 56개 대표지점 사용). 장마철이 끝난 직후에 2차 우기 기간이 시작되고 8월 초와 말에 두 번의 정점을 보인다. 기상청 제공

1991~2020년 기간 강수량의 연내 사이클(전국 56개 대표지점 사용). 장마철이 끝난 직후에 2차 우기 기간이 시작되고 8월 초와 말에 두 번의 정점을 보인다. 기상청 제공

장마는 보통 남부지방은 6월 중순, 서울 등 중부지방은 6월 말에 시작한다. 이후 한 달가량 지속되다가 7월 말에 끝난다. 하지만,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이런 여름철 장마 패턴이 깨지고 있다.

이날 기상청이 공개한 ‘장마백서 2022’에 따르면, 장마철을 포함한 여름철 집중호우의 빈도가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최근 20년(2001~2020년)의 시간당 30㎜ 이상의 집중호우 빈도가 과거 20년(1970~1990년대) 20% 이상 증가했다.

특히 장마철이 끝난 8월 초에도 많은 비가 내리는 등 2차 우기의 시작이 빨라졌다. 최근(1994~2020년) 8월 초순의 전국 강수량은 95㎜로 과거(1973~1993년)의 63㎜보다 50.8% 증가했다. 또, 2차 우기의 정점이 과거에는 8월 말이었지만, 최근에는 8월 초와 8월 말 두 번으로 늘었다. 이 영향으로 여름철 전체 강수량 중 장마철 강수량이 42.2%, 장마철 이후 강수량이 49.8%를 차지하는 등 장마철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올해에도 장마가 끝났다고 공식 선언된 이후인 8월 초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면서 서울 강남 일대가 물에 잠기는 등 전국적으로 큰 피해가 발생했다. 정용승 고려대기환경연구소장은 “장마철 강수 지속 기간이 크게 변했고 소나기와 국지적 폭우가 잦아지고 있어, 오랫동안 사용해온 용어인 장마의 표현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마 대신 우기(雨期) 사용해야”

집중호우가 쏟아진 8월 8일 서울 강남역 사거리 교대 방향 도로가 침수돼 있다. 뉴스1

집중호우가 쏟아진 8월 8일 서울 강남역 사거리 교대 방향 도로가 침수돼 있다. 뉴스1

이날 토론회에서는 기후변화로 급변하고 있는 여름철 강수 유형을 반영할 수 있도록 장마를 새롭게 정의하거나 신규 용어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장은철 장마특이기상연구센터장(공주대 교수)는 “장마가 종료된 후에도 소나기 및 국지성 강수가 집중되는 현상이 자주 나타나는 만큼, 최근 여름철 강수 발생 과정과 특징들이 전통적인 장마의 특성과 부합하는지 추가 연구를 통해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학계 일각에서는 아열대성 기후의 특징인 강수가 집중되는 구간을 의미하는 우기(雨期)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의견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유희동 기상청장은 “여름철 강수 특성이 변화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기에 적절한 형태의 구분과 표현을 찾기 위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면서도 “장마는 온 국민이 수백 년 이상 사용해 온 친숙한 용어인 만큼 간단히 결정할 사항이 아니므로 학계와 산업계는 물론 국민의 의견을 종합하는 과정을 거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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