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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업자 살해 후 암매장, 시신 꺼내 지장찍은 여성 “무기징역”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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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면

“피고인은 범행 도구와 암매장 장소 등을 치밀하게 준비했다. 시신의 지문을 이용해 사문서를 위조하는 범행까지 저질렀다. 피고인을 무기징역에 처한다.”

지난 14일 부산지법 형사5부 박무영 부장판사가 이같이 선고하자 피고인 40대 여성 A씨가 고개를 떨궜다. A씨는 지난 4월 6일 오후 9시쯤 부산 금정구 한 주차장 차 안에서 의사 B씨(60대)를 살해하고 시신을 암매장한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지난달 A씨에게 징역 28년을 구형했다. 하지만 박 부장판사는 “피해자 가족은 형언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며 검찰 구형보다 무거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2013년 말 주식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만난 두 사람은 경남 양산의 한 원룸에 투자 사무실을 냈다. B씨 돈을 받아 A씨가 굴리는 방식이었다. 둘 사이에 억대 자금이 오갔다. 수익이 날 때도 있었다. 하지만 투자 실패로 B씨는 원금을 잃었다. 게다가 A씨가 투자금 가운데 약 1억원을 생활비로 유용한 사실을 B씨가 알게 됐다. B씨는 지난 3월 “임의로 쓴 돈을 갚지 않으면 가족에게 알리겠다”며 A씨를 압박했다.

이혼 등 가족 관계 악화를 우려한 A씨는 B씨를 해치기로 마음먹었다. 준비는 치밀했다. 먼저 시체를 파묻으려고 경남 양산의 지인 땅에 깊이 1.2m, 폭 2.5m 규격의 구덩이를 파뒀다. 땅 주인에게는 “나무를 심으려 한다”고 둘러댔다. 범행에 이용한 차량도 지인에게 빌린 것이었다.

사건 당일 A씨는 “월 100만~150만원을 줄 테니 (가족에게) 찾아오지 말라”는 취지로 B씨를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받아들이지 않자 A씨는 물건을 꺼내는 척하다 미리 준비한 끈으로 뒷좌석에서 조수석에 앉은 B씨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구덩이를 파둔 양산으로 차를 몰던 중 위치 추적을 의식한 A씨는 전원이 꺼진 B씨의 휴대전화를 인근 버스정류장에 버렸다. 차 번호판은 인쇄물로 가렸다. A씨는 시신을 밀어 넣어 땅을 덮고 현장을 벗어났다.

그런데 이튿날 오전 9시30분쯤 A씨는 시신을 은닉한 장소를 다시 찾았다. 그는 시신의 왼손을 꺼내 엄지에 인주를 묻힌 뒤 준비해온 계약서에 지장을 찍었다. 계약서 날짜는 지난해 6월 28일로 작성됐다. 동업 관계를 의심받을 것을 염려한 A씨가 두 사람 사이의 동업과 채무 관계 등이 이미 정리됐다는 내용의 계약서를 꾸며 지장을 찍은 것으로 재판부는 판단했다.

심야에 일어난 이 사건은 시신이 확인되지 않은 ‘완전범죄’로 남을 뻔했다. 살해와 은닉현장에 폐쇄회로(CC)TV도 없었다. 서무성 금정서 형사팀장은 “시신을 매장한 마을 건너편 농로의 CCTV 영상을 토대로 암매장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수색 중 오랜 시간 묻혀 산화됐다가 땅 위로 드러난 지 얼마 안 된 깡통을 발견했다. 이곳에서 최근 땅을 팠을 거라고 확신했다. 땅 주인에게 ‘시신이 나오지 않으면 책임지고 원상 복구하겠다’고 한 뒤 일대 땅을 팠다”고 했다. 이곳에서 B씨 시신이 나왔다. 시신의 왼손 엄지에 남은 붉은 도장밥 또한 움직일 수 없는 증거였다.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던 A씨는 결국 범행 사실을 자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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