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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에서 CEO로, 애플에게 매년 100억 위안 받는 中 기업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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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위안, 우리 돈으로 1조 9700억 원에 이르는 거금이다.

매년 미국 애플에 제품을 납품해 약 100억 위안을 벌어들이는 중국 기업이 있다. 음향 장치 제조 및 솔루션 업체 루이성커지(瑞声科技, AAC Technologies)의 이야기다.

루이성커지는 음향 솔루션, 정밀 가공, 하드웨어·소프트웨어·알고리즘 솔루션 및 광학 솔루션, RF 안테나 솔루션, MEMS 감지 솔루션을 제공하는 업체다.

루이성커지는 음향 솔루션, 정밀 가공, 하드웨어·소프트웨어·알고리즘 솔루션 및 광학 솔루션, RF 안테나 솔루션, MEMS 감지 솔루션을 제공하는 업체다.

루이성커지는 음향 솔루션, 정밀 가공, 하드웨어·소프트웨어·알고리즘 솔루션 및 광학 솔루션, RF 안테나 솔루션, MEMS 감지 솔루션을 제공하는 업체다.

루이성커지는 중국은 물론이고 세계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현재 8000여 개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으며, 애플, 삼성 등의 대기업에 자사 제품을 납품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휴대폰 3대 중 1대에는 루이성커지의 음향, 무선 주파수 기술이 탑재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거대 기업 루이싱커지를 이끄는 수장은 누굴까? 우춘위안(吴春媛, 51)과 그의 남편 판정민(潘政民, 55)이다.

우춘위안(왼)과 판정민(오)

우춘위안(왼)과 판정민(오)

이 두 사람의 이력은 다른 의미로 범상치 않다. 우춘위안은 30년 전 간호사로 근무했으며, 판정민은 수학 교사로 교직에서 몸 담고 있었다. 현 업종과 전혀 무관한 곳에 종사하던 이들이 어떻게 휴대폰 음향 장치 및 기술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을까?

우춘위안은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평범한 아이였다. 부모님의 바람대로 간호사가 된 뒤 병원에 입사했다. 3교대 근무로 밤낮없는 생활을 하던 중, 수학교사였던 판정민을 만나 결혼했다. 두 사람 모두 IT나 기술 개발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그들이 휴대폰 음향 장치 제조업의 길에 들어선 것은 판정민의 부친인 판중라이(潘中来)의 영향이 컸다.

판중라이는 일찍이 철물 전기 공장에서 근무해, 남들보다 빨리 세계 각지의 선진적인 전자 과학 기술을 접했다. 판중라이는 전자 완구나 알람 시계에 들어가는 '전자기식 스피커'에 수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만 해도 미국, 일본만 이 기술을 갖고 있었고 중국에는 해당 기술을 보유한 업체가 단 한 곳도 없었다. 그는 이 기술을 습득하기만 하면 국내 시장을 선점할 수 있을거라 확신했다.

그는 회사 간부들에게 전자기식 스피커의 현황과 발전 전망에 대해 수차례 설명하며 연구 자금을 지원받기를 원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그 무렵 타 제조업체가 이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여러차례 시도했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는 회사에서 퇴사한 후, 30만 위안의 자본을 갖고 직접 전자기식 스피커 제조 공장을 열었다. 회사를 열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지만, 대표가 된 그는 기술자처럼 연구 개발에만 몰두할 수 없었다. 공장 임대, 설비 구입, 노동자 고용 등 기업 경영도 함께 해야했고 자투리 시간을 쪼개 기술에 대한 공부를 해야했다.

판중라이는 해당 분야 최고 인재를 고용해, 최고급 재료를 써가며 연구에 매진했으나 실패만 거듭했다. 설상가상으로 자본금까지 바닥나자 주변 사람들은 포기할 것을 권했다. 그러나 판중라이는 끝까지 도전해 전자기식 스피커 샘플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열심히 개발한 물건을 판매할 루트가 없었던 것. 매일 한숨만 쉬고 있는 시아버지를 본 우춘위안은, 간호사 일을 관두고 판중라이의 사업을 돕기로 결정했다.

part1. 시아버지 사업 확장의 일등공신이 된 며느리

우춘위안은 가장 먼저, 판매 채널이 부족한 이유를 분석했다. 시장에서 활용되고 있는 전자기식 스피커 부품은 대부분 수입품으로, 주요 완구 공장은 외국 공급업체로부터 고정적으로 물건을 공급 받고 있었다. 이런 시장 상황에서 우춘위안이 노린 건, 가격 경쟁력이었다. 외국 제품의 경우 수출입 및 관세, 운송 비용이 높아 제품 가격이 비쌌지만 중국 내 생산 제품은 그런 비용이 모두 사라지기 때문에 가격을 크게 낮출 수 있었다. 기존 완구 공장들 역시 저렴한 부품을 판매하는 판중라이의 제품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판중라이의 제품은 시장을 빠른 속도로 선점해가기 시작했다.

2년도 채 되지 않아, 판중라이는 우춘위안의 전략 덕에 수백만 달러를 벌었다. 비즈니스가 확대됐고, 선전에서 들어오는 주문량이 많아 선전에 지사를 세우기로 했다. 며느리가 아닌 사업가, 경영인으로 우춘위안의 능력을 알아본 판중라이는 그를 선전 지사 총괄로 임명했다. 우춘위안은 밤낮 없이 일했지만 혼자 모든 업무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남편 판정민은 이때 교편을 놓고 아내를 돕기 시작했다.

part2. 선전에서 찾은 새로운 사업 아이템

선전에서 본 사업 전망은 달랐다. 창저우 공장의 제품이 표면상으로는 잘 팔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시장에서 주류가 될 수 없음을 포착했다. 당시 신흥 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던 것은 휴대폰 부품 사업. 부부는 시장 조사 끝에 기존 계획을 변경해, 1993년 선전에 위안위산업발전(远宇实业发展)을 설립했다. 이들은 2년 만에 위안위를 중국 최고의 음향 장치 부품 회사로 만들었다. 이들은 중국 시장에 만족하지 않고 세계 시장으로 사업을 넓힐 것을 구상했다. 1996년, 부부는 선전에 루이성커지(AAC Technology)를 설립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판로를 개척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프로젝트 담당자를 만나는 것은 커녕, 안내데스크에서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였다.

판정민은 좌절했고 사업 기반이 탄탄하게 잡힌 중국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그러나, 우춘위안의 생각은 달랐다. 제품에 문제가 없으니 좋은 기회만 잡으면 된다고 판단했고, 의지를 갖고 버텨냈다. 2년 동안 우춘위안은 낮 시간에 모든 방법을 동원해 제품 영업에 나섰고, 밤에는 시차를 활용해 중국 회사 업무를 처리했다.

드디어, 2년 만에 기회가 찾아왔다. 1996년, 모토로라가 기존 납품 업체인 일본 기업에 '마이크로 스피커*' 개발을 요청했으나 해당 기업이 난색을 표하자 공급 업체와의 계약을 종료한 것이었다. 모토로라의 신제품 개발에도 차질이 생겼다. 모토로라는 루이성커지가 자사 표준에 맞는 부품을 개발할 수 있다면 협력하겠다는 의견을 전했고, 우춘위안은 즉시 중국으로 돌아와 신제품 개발에 착수했다. 그 과정은 결코 쉽지는 않았다. 난징대학 전기음향학 분야의 교수들을 두루 만나 자문을 구하고 그동안 쌓은 기술력과 자본을 총동원해 제품 개발에 매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루이성커지는 모토로라와 약속한 기한 내에 완제품을 제출했다.
*휴대폰 부품 중 하나로 음성 출력 신호가 강하고 음악 기능을 강화한 것

모토로라의 부품 업체 입찰에서 무명에 가까웠던 루이성커지는 업계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기술력만으로 당당히 모토로라의 공급 업체가 됐다.

당시 모토로라는 루이성커지의 마이크로 스피커를 탑재한 폴더폰을 출시했고, 이 제품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때의 협력은 모토로라와 위안위 그룹에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 주었고, 루이성커지 역시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으며 많은 회사로부터 러브콜을 받기 시작했다.

part3. 모토로라 납품 성공 후, 소니·에릭슨과도 제휴

루이성커지는 미국 내 수 많은 공급업체를 제치고 소니와 글로벌 이동통신 장비 제조사인 에릭슨에 자사 제품을 납품하는 데 성공했다. 2005년에는 홍콩증권거래소에 입성하는 쾌거를 이뤘다. 루이성커지는 모토로라라는 거목에 의존해, 미국 시장에서 점점 더 성장해나갔으며 유명 기업들의 주요 공급 업체로 자리잡았다. 루이성이 생산하는 휴대폰 스피커는 전세계 프리미엄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90%에 달한다.

우춘위안과 판정민은 큰 성공을 이뤘으나, 전자 분야의 세대 교체 속도가 놀라울 정도로 빠르다는 것을 체감하고, 도태되지 않기 위해 업계 동향을 시시각각 분석했다. 2000년에 접어 들며, 우춘위안은 가격 전쟁보다 고유 기술을 갖고 있는 것이 핵심 무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판중라이가 이룬 기술 혁신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 기술 혁신을 추구해야만 루이성커지가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음을 판단한 우춘위안은, 기술 연구와 개발에 총력을 다했다. 남편 판정민은 미국과 스웨덴에 음향 연구소를 설립했다.

part4. 애플의 공식 지정 업체 선정, 매년 100억 위안 이상의 수익

우춘위안은 한 수 앞을 내다보고 기술 개발에 매진했으나, 연구 개발 속도는 시장의 수요보다 느렸다. 우춘위안은 전략을 바꿔, 작지만 정교하고 심도있는 기술을 보유한 소규모 기업을 인수해 나갔다. 루이성커지는 이들이 보유한 다수의 선진 기술을 기반으로 고객의 니즈에 맞춘 제품을 빠른 시간 내에 생산해 낼 수 있었다. 미국 놀스(Knowles)의 특허 기술을 인수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루이성커지가 놀스의 기술에 독자 기술을 더해 '애플'로부터 러브콜을 받게된 것. 2010년 루이성커지는 애플사의 유일한 공식 지정 공급 업체가 됐다. 단 한 해도 공급업체 명단에서 제외된 적이 없었다. 루이성커지는 애플로부터 매년 수백억 위안의 수익을 올리는 알짜 기업으로 등극했다.

우춘위안은 기술 및 연구 개발에 '돈을 뿌린다'는 조롱을 받을 정도로 많은 비용을 투자했는데, 이는 미래를 위한 무엇보다 확실한 투자였음을 증명해냈다. 2018년에 회사가 또 한 번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 루이성커지는 1년 동안 5000여 건의 기술 특허를 출원했다. 2020년까지 우춘위안의 루이성커지는 8000개의 기술 특허를 보유하며 업계 무적이 됐다.

우춘위안은 2017년, 순자산 290억 위안으로 후룬의 부호리스트 7위에 오를 만큼 성공했지만 이후에도 한결같이 회사를 꾸리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나갔다. 그는 공개 석상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교육 분야에 기부를 아끼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범한 간호사에서 애플과 거래하는 기업 경영인으로 180도 다른 삶을 사는 우춘위안. 시대와 흐름을 읽어내는 타고난 눈과 진취적인 태도가 오늘의 그를 만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차이나랩 임서영 에디터

[사진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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