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정진홍의소프트파워

목표가 매력인 리더가 그립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1917년생인 존 F 케네디는 63년 11월 22일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암살당했다. 그가 세상을 살았던 세월만큼의 시간이 그가 죽은 후로도 지났건만 그는 여전히 살아 있는 신화다.

실제로 케네디는 단지 1037일 동안만 백악관의 주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역대 그 어느 대통령보다도 가장 백악관에 어울리는 인물이란 평을 듣고 있다. 정치학자 존 매커덤스의 말처럼 그는 미국인이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관계없이 존경을 표했던 마지막 대통령으로 자리매김된 지 오래다. 그만큼 그는 매력적인 존재다.

하지만 케네디의 매력은 빛나는 미소와 깔끔한 외모 덕분만이 아니다. 탄탄한 재력과 빵빵한 가문의 후광 덕분만도 아니다. 하버드를 나온 학력이나 그의 아리따운 아내였던 재클린 덕분만도 아니다. 심지어 쿠바 위기 때 보여준 두둑한 배짱과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강렬하고 호소력 있는 웅변술 덕분만도 아니다. 오히려 케네디의 진짜 매력은 다름 아닌 그가 내걸었던 '목표' 그 자체다.

'목표'가 매력이라고? 그렇다! 목표가 진짜 매력이다. 리더가 어떤 목표를 지향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그 리더의 진짜 매력이 된다. 61년 5월 25일 케네디 대통령은 "60년대가 끝날 때까지 사람을 달에 착륙시켰다가 무사히 지구로 귀환시키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국가의 긴급과제에 관한 특별교서'를 발표했다. 케네디는 이 특별교서를 통해 10년이란 시한을 정해 사람을 달에 보냈다가 무사히 귀환시키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한 것이다.

브라이언 트레이시의 말처럼 "시한을 정하지 않은 목표란 장전되지 않은 총과 같다." 한마디로 시한 없는 목표란 '빈총'인 셈이다. 거기엔 위력이 없다. 우리도 수천 년 동안 토끼 한 쌍이 계수나무 아래서 방아 찧는 달에 가보고 싶어 했다. 우리는 그러나 그저 막연히 동경하며 가보고만 싶어했을 뿐 구체적인 시한도 정하지 않았고 전략도 짜지 않았다. 하지만 케네디는 달에 사람을 보냈다가 무사히 귀환시키겠다는 생각을 구체적인 시한을 정해 국가적 목표로 상정했다. 그리고 해냈다. 비록 그가 죽은 후일지라도 말이다. 이것이 목표의 힘이다. 아울러 그 목표를 내건 사람의 진짜 매력이 발휘된 증거다.

사실 50년대 후반부터 미국은 소련과의 우주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었다. 소련은 이미 58년에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려 미국과 서방세계를 긴장시켰다. 거기에 더해서 61년 4월 12일에는 소련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이 최초의 유인 우주비행체를 타고 108분 동안 지구궤도를 돌아서 무사히 귀환했다. 이 일에 미국은 경악했다. 소련과의 우주 경쟁에서 완패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케네디의 시한을 못 박은 구체적인 목표 설정이 있은 후 채 10년이 안 된 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로 날아간 세 명의 미국 우주비행사 중 선장이었던 닐 암스트롱의 왼발이 달 표면에 닿았다. 이 왼발이 인류 역사의 신기원을 이룬 '그레이트 스텝'이 되었다. 그후 약 60여 시간이 지난 뒤 암스트롱과 올드린, 콜린스의 세 우주비행사는 무사히 지구로 귀환했다. 이로써 미.소 간의 우주경쟁의 전세는 일거에 역전됐다. 한 리더의 시한을 정한 구체적인 목표가 이뤄낸 장쾌하고 매력적인 역전승이었다.

그렇다면 정작 오늘을 사는 우리는 지금 어떤 목표를 갖고 있는가? 그 목표는 구체적인가? 시한은 정해져 있는가? 스스로에게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당장 돈이 없고 성취가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목표가 없는 것이 진짜 문제다. 그래서 더욱 더 목표가 매력인 리더가 그리운 게다.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