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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선수 중 랩 제일 잘하고, 래퍼 중 축구 제일 잘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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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민은 진정한 멀티 플레이어다. 본업은 프로축구 광주FC 수비형 미드필더, 부캐는 래퍼다. 프리랜서 장정필

이순민은 진정한 멀티 플레이어다. 본업은 프로축구 광주FC 수비형 미드필더, 부캐는 래퍼다. 프리랜서 장정필

“제가 축구선수 중에서 랩을 제일 잘하고, 래퍼 중에서는 축구를 제일 잘하겠죠. 더 잘하는 분이 계신다면 태클 걸어주세요.”

최근 광주축구전용경기장에서 만난 이순민(28)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광주FC 유니폼에 우승 기념 스냅백을 착용하고, 한 손에 축구공, 다른 한 손에는 마이크를 들고 나왔다. 그는 ‘축구선수’ 겸 ‘래퍼’, 진정한 멀티 플레이어다.

본업은 축구 선수다. 광주FC는 올 시즌 경기당 2.7골의 공격축구를 펼쳤는데, 수비형 미드필더 이순민이 넓은 지역을 커버하며 숫자 싸움의 우위를 만들어줬다. 지난달 고비였던 FC안양전에서는 벼락 같은 중거리슛으로 ‘원더골’을 뽑아냈다. K리그2 광주FC는 압도적인 K리그1(1부) 승격을 이뤄냈다. 역대 최다승(25승), 최단 기간 우승(잔여 4경기), 최다 승점(85점) 등 새 역사를 썼다.

광주 수비형 미드필더 이순민은 32경기에 출전해 팀의 1부리그 승격에 기여했다. 포항 신진호, 산둥 손준호처럼 넓은 지역을 커버했다. 사진 프로축구연맹

광주 수비형 미드필더 이순민은 32경기에 출전해 팀의 1부리그 승격에 기여했다. 포항 신진호, 산둥 손준호처럼 넓은 지역을 커버했다. 사진 프로축구연맹

이순민은 “광주는 3번 강등 당했지만, 3번 승격 역사를 썼다. 위기에 강하다”고 했다. 이순민의 축구인생도 광주FC와 비슷하다. 그는 2017년 광주에 입단했지만 주전 경쟁에서 밀렸다. 2018년부터 2년간 사회복무요원으로 K3리그 포천시민축구단에서 뛰었다. 2020년 광주로 돌아와 26살에야 프로에 데뷔했다. 작년부터 출전 시간을 늘리더니 올해 주전으로 도약했다. 사회복무요원 시절 월급은 40만원대였지만, 현재 연봉은 1억원 대다.

그의 ‘부캐(부 캐릭터)’는 래퍼다. 비 시즌에 소셜미디어와 유튜브에 직접 작사한 랩 9곡을 올렸다. 대표곡 ‘멍’, ‘혼란’을 들어보면 수준급 실력이다. 이순민은 “고등학교 때 지코의 믹스테이프를 듣고 랩에 관심이 생겼지만 꾹꾹 눌러뒀다. 프로 데뷔도, 래퍼 데뷔도 멀게만 느껴졌다. 독립 영화 ‘델타보이즈’를 봤는대, 꽁치 파는 청년 등이 4중창 대회에 도전하는 내용이었다. ‘꼭 1등하려고 대회 나가냐’는 대사에 용기를 얻었다. 그동안 축구 하나만 해왔는데, 랩을 시작하지 않으면 평생 못하고 내 20대가 너무 아까울 것 같았다”고 했다.

주변에서는 “뜬구름 잡지 말고 축구나 잘해라”고 비아냥댔다. 이순민은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축구 훈련을 더 열심히 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남는 시간에 가사를 썼다. NBA(미국프로농구) 데미안 릴라드(포틀랜드)도 힙합 앨범을 내면서 농구도 잘한다”고 했다.

광주FC 미드필더 이순민의 랩 네임은 wero다. 랩으로 사람들 마음을 위로하고, 축구도 위로 올라가겠따는 중의적인 의미다. 프리랜서 장정필

광주FC 미드필더 이순민의 랩 네임은 wero다. 랩으로 사람들 마음을 위로하고, 축구도 위로 올라가겠따는 중의적인 의미다. 프리랜서 장정필

이순민의 랩 스타일은 붐뱁(드럼 비트가 강조된 음악), 랩 네임은 ‘Wero(위로)’다. 이순민은 “랩으로 사람들과 내 마음을 ‘위로’하고, 축구도 ‘위로’ 올라가겠다는 중의적 의미이다. 처음에는 예명을 아버지가 어린 나를 부르던 ‘꼴통’으로 하려 했다”며 웃었다.

이순민은 지난해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 미 더 머니10’에 지원했다가 탈락했다. 이순민은 “올 시즌이 끝난 뒤 신곡을 내려 한다. ‘힘들었지만 이겨내고 여기까지 왔다’는 제 이야기를 담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내년에 ‘쇼 미 더 머니’에 지원 영상을 올릴 생각”이라고 했다.

광주FC 승격의 주역 중 한 명인 이순민. 사진 프로축구연맹

광주FC 승격의 주역 중 한 명인 이순민. 사진 프로축구연맹

‘프리스타일 랩’을 요청하자 이순민은 “목표는 사실적이지만 꿈은 낭만적. 한계를 넘어 여기까지 안 돌아가 전으로. 허투루 뱉어냈던 꿈이 가까워와 현실로. 아빠의 꿈을 이룬 지금 내 발걸음은 어디로”라고 거침없이 내뱉었다.

이순민은 “어릴적 박지성 선수를 보며 맨유에 가고 싶었지만 현실에 부딪혀 꿈이 꺾였다. 어느 순간 목표가 ‘프로 한 경기만이라도 뛰자’로 바뀌더라. 느리지만 꿈을 이뤘다. 이제는 국가대표라는 더 큰 꿈을 꾸겠다”고 했다.

▶‘축구선수’ 이순민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소속팀: 영남대-광주FC(2017~) 포천시민축구단(2018~20, 군복무)
올 시즌: 32경기 2골(베스트11 5회)

▶‘래퍼’ 이순민
랩 네임: wero(위로)
장르: 붐뱁
음악: 멍, 혼란 등 9곡

▶광주FC의 압도적 승격
역대 최다승: 25승
최단 기간 우승: 4경기 남기고 우승 확정
최다 승점: 85점(최초 승점 80점 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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