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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 청송도 뚫렸다...올 200만그루 소나무 에이즈? 전국 비상

중앙일보

입력

7일 경북 포항시 남구 연일읍 한 야산 소나무숲 사이로 '소나무재선충병'으로 고사한 나무들이 눈에 띈다. 김정석 기자

7일 경북 포항시 남구 연일읍 한 야산 소나무숲 사이로 '소나무재선충병'으로 고사한 나무들이 눈에 띈다. 김정석 기자

7일 경북 포항시 남구 연일읍의 한 야산. 사계절 내내 푸르러야 할 소나무 잎이 붉게 변해 있었다. 나무도 바짝 말라 썩은 상태였다. 주변을 쭉 둘러보니 소나무 5~6그루 중 한 그루꼴로 이랬다. 흙 바닥 위론 시들어 떨어진 나뭇가지 등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연일읍뿐 아니다. 포항 지역 내 침엽수림 곳곳이 마치 단풍 든 것처럼 울긋불긋했다.

소나무 100% 죽는 재선충병 올해 급증

소나무가 붉게 물들고 고사한 원인은 소나무재선충병(이하 재선충병)에 걸려서다. 국내 재선충병은 1988년 10월 부산 금정산에서 처음 발견됐다. 길이 1mm가량인 재선충은 솔수염하늘소나 북방수염하늘소 몸속에 기생하는데, 이들 매개충이 나무를 갉아먹을 때 생긴 상처를 통해 침투한다.

[사진 산림청]

[사진 산림청]

감염된 소나무는 6일 후부터 잎이 아래로 처지고, 20일 뒤엔 잎이 시든다. 30일이 되면 잎이 빠르게 붉은색으로 변하면서 말라 죽기 시작한다. 수분·양분의 흐름에 이상이 생겨서인데, 고사율 100%다. 재선충병을 ‘소나무 에이즈’로 부르는 이유다. 하지만 현재까지 마땅한 치료제가 없다.

이런 재선충병이 올해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9일 산림청에 따르면 재선충병 피해는 지난해 31만 그루에서 올해 38만 그루로 20% 이상 늘었다. 2017년 99만 그루, 2018년 69만 그루, 2020년 41만 그루 등 지난 7년간 감소 추세였다가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7일 경북 포항시 남구 연일읍 한 야산 바닥에 소나무재선충병으로 고사한 나무의 나뭇가지와 이파리가 시든 채 떨어져 있다. 김정석 기자

7일 경북 포항시 남구 연일읍 한 야산 바닥에 소나무재선충병으로 고사한 나무의 나뭇가지와 이파리가 시든 채 떨어져 있다. 김정석 기자

경북도에 따르면 올해 도내 23개 시·군 가운데 영양과 울릉을 제외한 21곳에서 재선충병이 발생했다. 그동안 청정지역이던 청송에 지난 8월 소나무재선충병이 새로 생겼고 해안가와 댐·강가 등 인근 산림지역에서 빠르게 피해가 확산하고 있다. 특히 포항, 경주, 안동, 구미, 고령은 피해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경북 재선충병 작년 비해 40% 급증 전망

경북도는 지난해 가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재선충병 피해 고사목 11만 그루를 포함한 방제 대상목 31만 그루를 제거했는데, 이번에는 이보다 40%가량 많은 50만 그루 정도를 제거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경북도는 재선충병 방제 기간인 이달부터 내년 3월까지 재선충병 피해 고사목과 감염 우려 나무, 자연 고사목까지 제거할 방침이다. 재선충병이 확산할 경우 금강송 주산지인 경북 울진까지 위협할 수 있다.

지난 7일 경북 포항시 남구 연일읍 한 야산 소나무숲 사이로 소나무재선충병으로 고사한 나무들이 눈에 띈다. 김정석 기자

지난 7일 경북 포항시 남구 연일읍 한 야산 소나무숲 사이로 소나무재선충병으로 고사한 나무들이 눈에 띈다. 김정석 기자

강원지역도 심각하다. 그간 재선충병이 한 번도 보고되지 않았던 화천군에서 최근 잣나무 4그루 감염이 확인됐다. 화천군은 감염나무 주변 200여그루를 베고 드론 등을 띄워 정밀 예찰활동에 나설 방침이다.

올해 재선충병 피해가 유난히 확산한 데 대해 경북도는 올해 상반기 따뜻한 겨울과 고온 건조한 봄철 날씨가 이어져 매개충 밀도와 활동량이 늘어난 데다 태풍, 집중호우, 산불 등 산림재해로 방치된 소나무류 피해목이 매개충 산란처가 된 것으로 보고 있다. 2015년 이후 재선충병 피해가 감소해 방제 예산도 점차 줄면서 매개충 우화기(4월 중순)까지 추가 발생하는 감염목 방제에 어려움이 따랐던 것도 한몫한 것으로 분석된다.

환경단체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녹색연합은 지난달 26일 “6월부터 현장조사를 벌여보니 전국에 재선충병이 퍼지는 것이 확인됐다”며 “소나무 200만 그루 이상이 재선충병에 걸려 상황이 가장 심각했던 2014년과 비슷하거나 더 심한 수준”이라고 했다.

녹색연합은 “재선충병 확산세는 올봄부터 확인됐으나 산림당국과 지자체들이 관망만 하고 있다”라면서 “전문가 사이에선 ‘정부가 방제를 포기한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라고 비판했다.

남성현 산림청장(맨 오른쪽)이 지난 7일 경남 밀양시 상남면 소나무재선충병 피해지를 찾아 경남도, 밀양시 관계자들과 피해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뉴스1

남성현 산림청장(맨 오른쪽)이 지난 7일 경남 밀양시 상남면 소나무재선충병 피해지를 찾아 경남도, 밀양시 관계자들과 피해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뉴스1

산림당국 “재선충병 확산 차단에 총력을”

이와 관련해 산림청은 재선충병 방제 기간을 앞두고 지난달 28일 대책 회의를 진행했다. 15개 광역지자체 산림관계 기관과 5개 지방산림청장 등 30여 명이 참석했다. 이번 회의는 감소 추세에 있던 재선충병이 증가 추세로 전환됨에 따라 본격적인 방제사업 전에 재선충병 전국 피해 현황, 방제 대책을 점검하기 위해 마련됐다.

임상섭 산림청 차장은 “본격적인 방제 시기를 앞두고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해 재선충병 피해 확산 차단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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