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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명중 10명 지병, 37세에 목숨 잃기도…'집단과로' 빠진 K웹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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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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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공장 2022]①~③ 종합 

 신인 웹툰 작가 A씨는 지난해 초 희귀병 진단을 받았다. 10년 전 수술을 받고 완치된 줄 알았던 병이 첫 연재 시작 3개월만에 재발한 것이다. “수술을 미루면 안 된다”는 의사의 권고에 그는 결국 수술 일정을 잡았지만 제작사의 담당자에게선 “휴재(休載)하면 매출이 떨어져요”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회사는 A씨의 비축 원고 약 8화를 회복 기간에 풀었고, A씨는 두달 만에 붕대도 채 풀지 못한 채 연재에 복귀해야 했다.

 유명 작가도 예외는 아니다. 웹툰 ‘나혼렙’을 그린 장성락 작가는 지난 7월 향년 37세로 세상을 떠났다. 소속사는 지병으로 인한 사망이라 밝혔지만, 작가들 사이에선 “앉아서 하루 종일 그림만 그리던 사람인데, 과로 말고 다른 이유가 있겠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한 웹툰 작가가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사진 밀실팀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한 웹툰 작가가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사진 밀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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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작가 12명 중 10명은 지병 앓아 

 중앙일보가 웹툰 작가 12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 인터뷰 작가들 대부분(10명)은 연령 고하를 가리지 않고 지병을 앓고 있었다. 손목 통증, 불면증부터 생명을 위협하는 희귀병까지 종류는 다양했다. 늘어난 작업량과 과열된 인기 경쟁이 집단적 과로로 이어진 탓이다. 권창호 한국웹툰협회 사무국장은 “보통 극화체(사실적인 그림체) 기준, 컬러 70~80컷을 한 작가가 그리기 위해선 200시간 이상이 걸린다”고 말했다. “혼자서는 일주일만에 할 수 없는 양이지만 해내라는 압박을 받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작가들은 과로를 막기 위해 작가의 유급 휴재권을 보장해주고 1화당 컷수 축소 방안을 마련하고, 다양한 연재 주기를 제기해달라고 제작사와 플랫폼 측에 요구중이다. 그러나 플랫폼과 제작사는 아직 난색이다. 한 플랫폼 관계자는 “작가는 고용 관계가 아니고, 플랫폼이 유료 판매 수익이 기대되는 작가와 작품에 선투자해 판권을 확보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작가와 제작사 사이엔 판매 수익을 둘러싼 계약 분쟁도 늘고 있다.  지난해 데뷔작을 준비하며 한 제작사와 계약을 맺은 B작가는 “1화당 100만원 넘는 MG를 받는다. 남들이 보면 많다고 하겠지만 플랫폼과 제작사의 수수료를 떼면 전체 매출에서 10% 받을까 말까한 정도”라며 “재료비와 작업 보조 인건비도 작가 부담”이라고 말했다.

 ‘MG(Minimum Guarantee)’의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작가의 ‘최소수익’이다. 그러나 업계 주종인 ‘후차감 MG’의 뜻은 영 다른 의미다. 예를 들어 월 4회, 1화당 100만원 MG를 받고 플랫폼과 5:5로 수익을 분배하는 약정을 맺는다면 1화당 150만원이 수익이 날 때 작가의 몫은 75만원. 여기서 MG 100만원을 차감한다. 결과는 ‘-25만원’. 웹툰업계 관계자는 “네이버ㆍ카카오 같은 대형 플랫폼과 직계약 하는 작가는 원고료를 받고 추가 수익을 분배받기도 하지만 제작사(에이전시나 스튜디오)를 통해야 플랫폼에 닿을 수 있는 다수 작가는 울며 겨자먹기로 MG방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여건”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중앙일보가 만난 웹툰작가 12명 중 다수(9명)도 플랫폼ㆍ제작사와 계약 과정에서 불공정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현행 수익배분 구조와 정산 구조 비공개 관행, 저작권 전면 양도 계약 등에 문제를 제기했다. 이들 중 절반 이상(6명)은 창작자의 ‘몫’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4년 전 지적된 불공정 계약관행 여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 학생기획 프로보노 웹툰팀(프로보노팀)이 웹툰 작가가 플랫폼(5곳)이나 제작사(15곳)와 실제로 체결한 20개의 계약서(2016년~2022년)를 수집해 분석한 보고서에서도 불공정 계약 현실이 드러났다. 유통 채널 등에 대한 사측의 일방적 결정·변경 권한이 18개 계약서에서 발견됐고 작가에게 과도한 비밀유지 의무를 부여한 계약서도 14개였다. 업체 측의 자의적 연재 기간 연장 또는 단축(12개) 소지를 허용하고 2차적 저작물 권리까지 일괄 계약(10개)한 계약서도 있었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웹툰 업계 불공정 계약관행이 지적된 이후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2월 업계와 작가 단체, 법조계, 학계 인사들을 아울러 웹툰상생협의체를 띄웠다. 연내 상생 협약문을 체결하고 합의된 사항을 문체부가 고시하는 표준계약서(웹툰 연재계약서 포함 6종) 개정안을 마련하는 게 목표지만 지난달 23일까지 7차례 회의에서 유급휴재권이나 1화당 컷수 제한, 수익배분 방식 개선, 매출정보 공개 등을 요구하는 작가들과 제작사·플랫폼의 입장 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7월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저작권보호과 서울사무소 회의실에서 열린 웹툰업계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7월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저작권보호과 서울사무소 회의실에서 열린 웹툰업계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양적 경쟁 속 웹툰 장르 단편화 우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실시한 ‘2021 웹툰사업체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웹툰 산업 매출액은 1조538억원을 기록해 전년도(6400억원)대비 64.6% 급증했다. 그러나 웹툰 업계의 산업적 전망은 밝지만은 않다. 국내 웹툰 업계가 ‘컷수 늘리기’ 등 양적 경쟁에 치중하면서 스토리나 그림체의 독창성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웹툰 업계에선 “요새 뜨는 작품의 그림을 블라인드 처리하면 아무도 작가명을 못 맞출거다”라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온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돈 버는 데만 장르가 편중되면 산업이 단명한다”며 “정부나 대기업 플랫품은 소외된 장르에 대한 제작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작사들은 인수합병(M&A)이나 장르별 전문화를 통해서, 작가들은 연합해 스튜디오를 결성하는 방식 등으로 독자적인 생존 능력과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맞물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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