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가리면 구별 못한다" 이런 말까지 나온 요즘 웹툰, 왜 [밀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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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기 웹툰 ‘나 혼자만 레벨업’(나혼렙)의 그림 작가 장성락 씨가 37세의 나이로 사망한 것을 두고 웹툰 업계의 고강도 근로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앙일보 [밀실]팀은 K웹툰의 창작 현실을 점검하고 웹툰 당사자 간 문제 해결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3회에 걸쳐 ‘웹툰공장 2022’를 싣는다.

[웹툰공장 2022 ③]

 지난달 23일 서울 중구에서 열린 웹툰상생협의체 7차 회의. 지난 2월 문화체육관광부가 업계(제작사와 플랫폼)와 작가 단체를 아울러 꾸린 이 협의체는 6차 회의에서 평행선을 달린 ‘유급휴재권’을 다시 테이블에 올렸다.

 작가들은 “현재 통용되는 계약서 상에는 건강상 문제가 생겨도 사전에 제작사가 합의해 줄 경우에만 휴재를 할 수 있다는 등의 조건이 걸려 있다”며 “작가의 유급 휴재권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거듭했다. 제작사와 플랫폼 측은 “프리랜서 계약인데 근로자처럼 사실상 유급휴가를 주는 것은 힘들다”며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논의를 대화를 지켜보던 법조계 측은 “프리랜서라도 원할 때 자유롭게 휴재할 수 있는 권한은 필요하지 않느냐”는 입장을 내놨다고 한다.

한준호 더불어민주당 빅테크 갑질대책 TF 팀장이 지난 8월 1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카카오엔터테인먼트 합정오피스에서 열린 민생우선실천단 빅테크 갑질대책 TF '웹툰 정산정보제공 시연 및 플랫폼·창작자 상생간담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뉴스1

한준호 더불어민주당 빅테크 갑질대책 TF 팀장이 지난 8월 1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카카오엔터테인먼트 합정오피스에서 열린 민생우선실천단 빅테크 갑질대책 TF '웹툰 정산정보제공 시연 및 플랫폼·창작자 상생간담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뉴스1

업계·법조계·학계·관계부처 머리 맞댔지만… 

 웹툰상생협의체는 연내 상생 협약문을 체결하고 합의된 사항을 문체부가 고시하는 표준계약서(웹툰 연재계약서 포함 6종) 개정안에도 반영하는 게 목표다. 그러나 유급휴재권이나 1화당 컷수 제한같은 창작자 복지뿐만 아니라 수익배분 방식 개선, 매출정보 공개 등에서도 작가와 사업체의 입장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는 게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실시한 ‘2021 웹툰사업체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웹툰 산업 매출액은 1조538억원을 기록해 전년도(6400억원)대비 64.6% 급증했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연재했거나 연재중인 국산 웹툰은 약 1만 7000여 편으로 추산된다. 산업이 성장하면서 시장 참여자의 역할은 분화됐고 그에 따라 계약의 형태도 다양해지면 이해관계 조율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내 몫이 우선”…플랫폼·제작사·작가의 동상이몽 

 특히 수익 배분을 둘러싼 동상이몽(同床異夢)이 뚜렷하다.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2022 웹툰산업불공정실태조사 중간보고서’에 따르면 7월 4월~8월 22일 웹툰 사업체 103개사와 웹툰 작가 849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드러난 이상적 수익배분 구조에 대한 업체측과 작가들의 입장은 판이했다. 작가들 응답의 평균은 ‘19.8%(플랫폼):18.2%(제작사):62%(작가)’였지만 제작사측은 ‘23.6%(플랫폼):35.5%(제작사):41.1%(작가)’, 플랫폼 측은 ‘34%(플랫폼):16%(제작사):50%(작가)’라고 응답했다.

 유급휴재권 도입이나 1화당 컷수 제한을 둘러싼 갈등은 웹툰 작가의 사실적 지위에 대한 인식에서 작가들과 제작사 또는 플랫폼의 격차가 현격하다는 데서 비롯된다. 한 대형 플랫폼 관계자는 “프리랜서로서 저작권을 인정받으면서 기업에 소속된 근로자처럼 유급휴재를 요구하는 것은 애초에 맞지 않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외주 작가와 보조 작가를 거쳐 연재 작가로 활동 중인 A(31)씨는 “휴재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플랫폼 입맛에 맞게 작품을 고치라는 압력에도 노출된다”며 “사실상 플랫폼 노동자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플랫폼이 마감을 못지키면 내야하는 ‘지각비’를 계약서에 명시하고 거둬가는 경우도 있는 등 종속된 노동을 제공하는 작가가 대다수라는 주장이다.

2021년 만화 수출 39.7% 성장에도 “외화내빈” 지적

 계약 공정성과 파이 분배를 둘러싼 웹툰 업계 내부 갈등이 첨예해진 사이 일각에선 웹툰 업계의 미래에 부정적 전망도 나오고 있다. ‘외화내빈(外華內貧)’이라는 것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1년 하반기 및 연간 콘텐츠 산업 동향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웹툰을 포함한 만화 수출액은 8760만 달러(1250억원)로 전년(6271만달러ㆍ894억8000만원) 대비 39.7% 라는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네이버와 카카오 계열 웹툰 플랫폼의 해외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해외 이용자 수가 늘어난 영향이다. 수출은 주로 국내 인기 장르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 한 중소 제작사 관계자는 “수출은 대형 플랫폼이 판권을 쥔 인기작에 국한된 이야기”라며 “장르의 다양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성장세가 지속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작가들은 국내 웹툰 업계가 ‘컷수 늘리기’ 등 양적 경쟁에 치중하는 양상을 걱정하고 있다. 그 결과 스토리나 그림체의 독창성이 사라지면서 웹툰 업계에선 “요새 뜨는 작품의 그림을 블라인드 처리하면 아무도 작가명을 못 맞출거다”라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온다. 인기 웹소설을 웹툰화한 ‘노블 코믹스(Novel Comics)’나 ‘로판(로맨스 판타지)’, ‘회빙환(회귀ㆍ빙의ㆍ환생)’ 등 장르도 몇 가지에 집중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연재 7년차 B(29)작가는 “플랫폼이나 제작사가 당장 돈 되는 것에만 투자하니 작가들도 돈 되는 것만 하는 악순환이 진행된다”며 “오리지날(original) 작품이 갈수록 적어지는 게 그 결과”라고 말했다.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7월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문화체육관광부 저작권보호과 서울사무소에서 열린 웹툰산업 업계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7월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문화체육관광부 저작권보호과 서울사무소에서 열린 웹툰산업 업계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젊은 세대의 동영상 선호 현상과 날로 커지는 불법 유통은 독창성을 죽이는 또다른 불안 요인이다.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에서 열린 ‘웹툰 생태계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국회 정책 토론회’에서 기조 발표에 나선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코로나가 종식되면서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는소비시간과 사용빈도가 늘어나는 추세지만 웹툰은 전체적 사용 시간이 정체되고 있다”며 “젊은 세대가 영상에 익숙해지면서 활자를 잘 안 보는 경향과 맞물려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20년 웹툰 불법유통으로 인한 피해 규모는 5488억 원으로 집계됐다.

“다양성 확보가 살길, 전제는 ‘공정’”

 전문가들은 K웹툰의 해외시장 진출이 계속 확대되고 영화나 게임 등의 원천 콘텐트(Intellectual Propertyㆍ지식재산권)로서 부가가치를 확대하는 데 관건은 다양성이라고 입을 모은다. 위정현 교수는 “돈 버는 데만 장르가 편중되면 산업이 단명한다”며 “정부나 대기업 플랫품은 소외된 장르에 대한 제작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작사들은 인수합병(M&A)이나 장르별 전문화를 통해서, 작가들은 연합해 스튜디오를 결성하는 방식 등으로 독자적인 생존 능력과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맞물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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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주(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수익 정산 절차와 방식 등 문제로 지적된 불공정 계약관행이 보다 작가 친화적으로 개선돼야 창작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며 “가장 기본인 계약서부터 작가들에게 종속의 근거가 아니라 권리보장의 수단이 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절차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한국애니메이션산업협회장 출신인 유정주 민주당 의원은 “웹툰 산업 내 불공정은 현재진행형”이라며 “우선 창작자, 제작사, 플랫폼, 부처 등이 참여한 웹툰상생협의체에서 공정생태계를 위한 유의미한 결과가 도출돼야 한다”고 말했다. 상생협의체를 끌고 있는 문체부 관계자는 “기존 6종의 만화분야 표준계약서 외에 작가-제작사 간 계약과 2차 저작물에 관한 계약 부문에 표준계약서를 도입하기 위해 검토중”이라며 “웹툰을 만화의 한 종류로 정의하는 ‘만화진흥에 관한법률’ 개정안 국회 통과를 추진해 정부 지원의 근거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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