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 Review] ‘신자유주의’ 종주국 영국의 착각…감세·규제완화 방정식 안 통했다

중앙일보

입력 2022.10.05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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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영국이 유턴했다. 영국 쿼지 콰텡 재무장관은 3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소득세 최고세율 45% 철폐를 추진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감세 정책 철회다. 영국 밖 외환시장에서 파운드 가치는 미 달러와 견줘 1.13달러 선까지 뛰었다. 파운드 투매가 발생한 지 거의 열흘 만이다. 당시 콰텡 재무장관은 ‘성장계획’이란 이름표를 붙여 감세 계획을 발표했다. 직후 파운드 가치가 1.07달러 선까지 추락했다. 시장의 뜻밖의 반응이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영국 집권 보수당은 감세와 규제 완화로 이뤄진 신자유주의 교리를 1970년대 말에 세계 최초로 정책화했다. 이번 성장 계획은 영국 보수당의 오랜 성공 방정식의 재활용인 셈이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시장은 과거와 다르게 반응했다. 예전에는 감세를 환호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과 미국과 기준금리 차이 등에 민감해진 요즘 시장은 감세를 악재로 인식했다. 콰텡 재무는 트위터에서 “우리는 (시장에) 귀 기울였다(we have listened)”고 했다. 내용과 과정은 전혀 딴판이지만 1991년 조지 소로스 파운드 공격 이후 영국 정부 굴복을 떠올리게 한다.

영국 정부의 정책 철회로 일단락됐지만, 파운드 투매는 미 연방준비제도(Fed)를 제외한 중앙은행들에 압박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런던의 경제분석회사인 옥스퍼드이코노믹스는 파운드 투매 직후 연 온라인 컨퍼런스에서 “Fed와 주요 중앙은행의 정책 금리차이가 아직 상당하다”며 “파운드 투매는 인플레이션 압박이 상당하고 정책 금리 차이가 큰 상황에서 통상적인 정책이 통화 투매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라고 진단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실제 영란은행(BOE)의 기준금리는 10월 3일 현재 2.25%다. 미 Fed의 3.25%보다 1%포인트(100bp) 낮다. 유럽중앙은행(ECB)와 Fed의 기준금리 차이는 2%포인트(200bp)다. 두 곳 모두 Fed보다 긴축에 늦게 나선 결과다. 옥스퍼드이코노믹스 제비어 코로나미나스 거시전략 이사는 컨퍼런스에서 “파운드 사태를 계기로 영란은행과 ECB 내부자들이 더욱 매파적으로 바뀔 수 있다”며 “그 결과 내년 상반기 안에 Fed와 주요 중앙은행 기준금리 차이(spread)가 사실상 제거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정책금리 차이가 사라지면, “달러 가치 급등 흐름이 변곡점을 맞을 수 있다”고 코로나미나스 이사는 전망했다. 이는 강달러 때문에 힘겨워하는 한국 등에는 일단 희소식이다. 그러나 금융위기 역사는 Fed-주요 중앙은행 기준금리 차이가 사라졌을 때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크레디트스위스(CS)의 이코노미스트인 타오동(陶冬) 부회장은 몇 년 전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Fed가 1994년 기습적으로 긴축을 시작했다. 그런데 아시아 지역 머니 센터를 관할한 일본은행(BOJ)이 1996년 긴축하기 전까지 한국·태국 등은 위기를 맞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타오동에 따르면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는 세계 중앙은행 핵심인 Fed의 긴축에다 아시아 지역의 메이저 중앙은행인 BOJ가 돈줄을 좼을 때 시작됐다. 이는 ‘양적 완화(QE) 아버지’인 리하르트 베르너 교수 등이 제기한 ‘글로벌 중앙은행 위계 서열’을 떠올리게 한다.

베르너는 논문과 인터뷰 등에서 글로벌 중앙은행 배열은 코어(core)인 Fed를 중심으로 5~6개의 메이저 중앙은행이 돌고 있는 행성 시스템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 외곽에 한국은행(BOK) 등 기타 중앙은행들이 포진하고 있다. 베르너는 지난해 말 기자와 통화에서 “코어인 Fed가 긴축하지만 지역 거점 중앙은행이 돈을 풀고 있거나 완만하게 긴축하는 시기에는 신흥국이 위기에 빠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물론 역사가 그대로 되풀이되는 경우는 드물다. 다만, 인플레이션이 심화하면서 Fed뿐 아니라 영란은행과 ECB 등 지역 거점 중앙은행의 긴축 차이가 빠르게 사라질 전망이다. 돈줄이 빠르게 마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날 블룸버그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세계 각국 정부와 기업이 이미 발행한 채권이 56조 달러(약 8경1200조원) 정도인데, 새로 돈을 빌려 상환할 때 부담해야 할 금리가 급등하고 있다. 평균 1.56%포인트 정도나 된다. 그 바람에 지금까지 긴축만으로 각국 정부와 기업이 추가로 부담할 이자가 1조 달러 이상이다. 여기에다 ECB 등의 긴축이 빨라지면 어디서 사달이 나도 이상할 것 없다. 다만, 아시아 지역의 일본은행과 중국 인민은행(PBOC)의 긴축 속도는 ECB 등보다 더 느릴 전망이다. 아시아 지역 돈줄이 마르는 속도가 상대적으로 더딜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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