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 한 판 값이면 구한다…이러니 대한민국 '마약왕국' 됐다 [뉴스원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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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민 사회2팀 기자의 픽: 마약에 취한 대한민국 

 마약 청정국(Drug Free Country). 인구 10만명당 마약류 사범이 20명 미만일 때 UN의 청정국 지정 기준입니다. 마약 청정국이라 자부했던 한국은 이제 마약 소비국 신세가 됐습니다. 2016년 이 기준(5000만명당 1만명 미만)을 넘어섰기 때문이죠.

 대검찰청이 발간한 2021년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2016년 1만 4214명이 국내 수사기관에 의해 마약류 사범으로 적발됐습니다. 2017년 1만 4123명, 2018년 1만 2613명, 2019년 1만 6044명의 마약류 사범이 붙잡혔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기승을 부렸던 2020년과 지난해엔 각각 1만 8050명, 1만 6153명이 마약류 사범으로 전락했습니다. 올 상반기 검거된 국내 마약류 사범은 8575명입니다. 하루 평균 30명꼴로 마약 범죄 전과자가 생겨나는 셈입니다. 하루가 멀다고 마약 관련 뉴스가 쏟아지는 이유입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마약 범죄 전과자 하루 평균 30명…마약 소비국 전락

 수요가 늘어나니 국내 유통되는 마약의 양도 급증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28일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를 받는 9명을 검거했는데, 이 과정에서 97억원 상당의 필로폰 2.9㎏을 압수했습니다. 이는 9만 7000명이 동시 투약할 수 있는 분량입니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지난 한 해 동안 서울경찰청 마약수사대 1계가 압수한 양과 비슷한 수준”이라며 “유통량이 해마다 늘어나는 게 체감된다”고 혀를 내둘렀습니다.

 경찰은 지난달 26일 저녁 강남의 한 호텔에서 마약류관리법을 위반한 혐의를 받는 작곡가 겸 가수 돈 스파이크(45ㆍ본명 김민수)를 검거할 때 그가 소지하고 있던 필로폰 30g도 압수했습니다. 필로폰 1회 투약량이 0.03g인 점을 고려하면 약 1000회 투약분에 달합니다. 개인이 소지하기엔 엄청난 양이죠.

필로폰 투약 혐의를 받는 작곡가 겸 가수 돈 스파이크(45?본명 김민수)가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도봉구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경찰은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돈 스파이크를 체포했다. 뉴스1

필로폰 투약 혐의를 받는 작곡가 겸 가수 돈 스파이크(45?본명 김민수)가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도봉구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경찰은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돈 스파이크를 체포했다. 뉴스1

마약에 취한 대한민국…비대면 거래 타고 활성화

 대한민국이 마약에 취해 휘청휘청합니다. 마약은 우리 사회 곳곳을 소리소문없이 파고들고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과거에 비해 손쉽게 마약을 구할 수 있고 구매 단가도 낮아졌지만, 추적은 어려워졌기 때문이죠.

 판매상들은 수사기관의 눈을 피하기 위해 해외에 서버를 둔 텔레그램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다크웹(특정 프로그램으로만 접속 가능한 웹사이트)을 활용해 구매자를 모읍니다. 국제우편이나 특송화물로 마약을 배송받은 뒤 가상화폐로 돈을 받습니다. 이후 미리 약속한 곳에 마약을 두고 찾아가는 ‘던지기’식으로 거래합니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과거엔 제조자와 판매자, 투약자들이 만나 마약 거래를 했다면 이젠 비대면이 대세”라며 “직구로 마약을 들여와 택배나 퀵으로 거래하니 배달 과정에서 체포 리스크가 줄었고, 통관 과정에서도 절반 정도만 안 걸리고 국내로 반입하면 엄청난 이익을 볼 수 있는 구조”라고 설명했습니다.

경찰이 압수한 필로폰. 사진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

경찰이 압수한 필로폰. 사진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

 대량 직구가 대세가 되면서 가격도 내렸습니다. 경찰 등에 따르면 10년 전 10만원 내외였던 필로폰 1회 투약분(0.03g)은 현재 2만 5000원~3만원 수준으로 낮아졌습니다. 피자 한 판 가격 정도면 마약을 살 수 있는 셈입니다. 마약수사를 담당하는 일선 경찰관은 “유통 과정에서 체포·적발 리스크가 적은 방법으로 밀반입 방식이 바뀌면서 박리다매 양상을 띄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젊은 마약사범 급증…"마약 예방 교육 부재"

 그 결과 마약사범의 연령이 급격히 낮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우려스러운 건 10대 마약사범 증가 추이입니다. 지난해 검거된 전체 마약류 사범 가운데 19세 이하 미성년자는 총 450명(2.8%)으로 10년 전인 2011년(41명ㆍ0.4%)에 비해 11배나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 20대 마약류 사범은 750명(8.2%)에서 5077명(31.4%)이 검거됐습니다. 마약 수사 경험이 있는 수사관들은 “국내에서 주로 소비되는 필로폰은 중독성이 강해 한번 접하면 끊지 못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경찰은 마약과의 전면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지난 8월 새 경찰 수장으로 임명된 윤희근 경찰청창이 취임 일성으로 “강남지역에 마약 경보를 발령한다”며 “마약사범은 개인뿐 아니라 사회를 병들게 하는 고질적 병리 현상”이라며 총력 대응 분위기를 조성한 뒤부터입니다. 윤 청장은 검거 기여자들에 대한 특진을 약속하며 연일 드라이브를 걸고 있습니다.

 윤 청장은 최근 “마약범죄는 사회의 암세포”라는 얘기를 입버릇처럼 한다고 합니다. “몸에 발생한 암세포는 초기에 발견하면 상대적으로 쉽게 완치가 가능하지만, 시기를 놓쳐 전이가 이뤄지면 생명이 위협받는다”며 “마약범죄도 적기에 차단하지 못하고 사회에 뿌리내리면 국가도 손 쓰기 어려운 지경이 된다”면서요.

윤희근 신임 경찰청장이 지난 8월 10일 강남경찰서들을 찾아 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경찰청 제공]

윤희근 신임 경찰청장이 지난 8월 10일 강남경찰서들을 찾아 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경찰청 제공]

마약 전면전 선포한 경찰청장…일선은 업무 부담 호소도

 마약에 대한 집착과도 같은 윤 청장의 의지는 지난 7월 발생한 ‘강남 유흥업소 마약 사망사건’이 트리거가 됐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예전 버닝썬 사건의 학습효과도 있었고, 코로나19 해제 시점과 강남 유흥주점 사건이 맞물리면서 취임 전부터 선제적 대응 방침을 계획했다”면서 “경찰은 수사기관이니 교육이나 예방, 치료나 재활은 다른 기관에 맡기고 일단 잡아들이는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경찰청장이 마약과의 전쟁에 나서면서 일선 경찰서에선 곡소리가 들립니다. 강력팀이 마약 수사에 투입되고, 기존 강력팀 업무를 넘겨받은 다른 과에선 업무 과중이나 마비를 호소하기 때문이죠. 마약 척결로 현장 경찰의 부담이 커진 것 아니냐는 지적에 윤 청장은 “국민이 기대하는 역할을 위해서라면 현장의 부담은 안고 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경찰청은 기존 10월까지였던 마약류 사범 집중단속 기간을 12월까지 2개월 늘리기로 했습니다.

 집중단속이 길어지면서 마약 관련 뉴스는 더 잦아질 전망입니다. 경찰이 끊임없이 단속 성과를 내세울 게 분명하니까요. 실적이 딱 떨어지는 마약 단속이 보여주기식 홍보는 아니냐는 질문에 한 경찰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마약 하면 반드시 잡히는구나 알리게 해야 합니다. 한번 잡히면 패가망신 당하는구나, 스스로도 죽는다는 걸 알아야 해요. 국민이 반드시 검거된다는 걸 알고 경각심 느낀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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