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정상화 더 미룰 명분없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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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여권이 내각제개헌을 포기하고 함평­영광 보선이 끝난 이상 국회는 이제 지체없이 정당화돼야 한다.
우선 내각제개헌 포기 등 4개 조건을 내걸고 장외투쟁에 나섰던 평민당은 여권으로부터 내각제 포기를 얻어냈고 보선에서도 압승하는 등 유리한 국면이 조성된 점을 감안한다면 야권이 더이상 장외에서 단 하루라도 남아 미적거릴 어떤 명분도 없다고 본다.
평민당의 김대중 총재도 등원 4개 조건 중 기초자치단체의 정당 후보공천 문제만 장애로 남아 있다고 판단하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물론 평민당으로선 여권이 지자제실시 일정에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듯한 움직임이 또다른 장애요인으로 대두했다고 말할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평민당이 진정으로 국리민복을 위하는 책임있는 수권 대체세력으로 자임한다면 일단 국회를 즉각 정상화시켜야 한다고 우리는 믿는다.
그런 연후 평민당은 여권이 원래 약속대로 지자제를 실시해야 할 당위성을 철저히 따지고 설득 또는 협상해 소기의 목적을 관철하는 길을 여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그렇게 할 경우 국민들은 평민당에 더 많은 지지와 성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고 그것이 평민당의 대여 투쟁에 도움이 될 것임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이치가 이러함에도 평민당이 지자제문제를 새 쟁점으로 부각시켜 계속 국회를 거부한다면 정치불신이 극에 달한 국민들의 노기의 표적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물론 국회정상화를 가로막은 주요인이 여권에 있었고 또 지자제실시 문제라는 새 쟁점을 만드는 여권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는 점을 묵과하려는 것은 아니다.
국정운영의 1차적 책임이 있는 여권이 국가 중대사를 다룸에 있어 주견도 없이 갈팡질팡하면서 국민과의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하는 작태는 반드시 시정돼야 한다고 믿는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야당측과 대체로 공감대를 형성했던 자자제 실시시기 문제가 새로운 돌발적 상황의 전개가 전혀 없음에도 여권이 새삼 재고의 대상으로 삼는 까닭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이는 노 정권이 모든 국사를 다룸에 있어 냉철하고 엄밀한 정황의 분석과 검토를 거치지 않은 가운데 즉흥적으로 처리하고 있다는 방증이라 아니할 수 없다.
바로 이런 측면에서 야권이 국회에 즉각 등원해야 할 이유와 명분이 절실한 것이다. 집권 대체세력으로 야권이 국회에서 정부와 여당의 이같은 무정견에 대해 견제와 균형의 기능을 발휘해 국정이 그나마 제방향으로 굴러가게 할 중대한 책무를 국민으로부터 위임받고 있지 않은가.
당장 눈앞의 예로 안면도사태도 국회가 민의수렴의 제기능을 했더라면 휠씬 더 원만하게 처리될 수 있었을 것이다.
여권의 국정수행에 문제가 많을수록 건전한 야당이 국회에서 해야 할 일은 많고 그것이 결국 대체정권을 자임하고 나선 야당이 마땅히 해야 할 책무이다. 평민당은 즉각 등원으로 국회가 정상화되게 결단을 내릴 것을 우리는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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