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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株 개발비 손실 폭탄 더 커진다·...‘개미 투자 주의보’

중앙일보

입력

사업화 단계에서 지출한 개발비는 국제회계기준이 정한 6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면, 재무제표 상 자산으로 반영할 수 있다. 셔터스톡

사업화 단계에서 지출한 개발비는 국제회계기준이 정한 6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면, 재무제표 상 자산으로 반영할 수 있다. 셔터스톡

셀트리온헬스케어는 지난해 말 코로나19 치료제 '렉키로나' 개발비 대부분을 손실 처리했다. 이 회사는 임상 3상 이후 관련 개발비를 자산으로 분류했는데, 오미크론 대응력을 입증하지 못하면서 시장성이 낮다고 생각해 200억원에 달하는 비용을 손실로 반영했다.

제약·바이오회사의 의약품 연구개발비는 통상 비용으로 처리하지만, 국제회계기준(K-IFRS)이 정한 6가지 요건을 모두 갖추면 공장이나 기계장치처럼 자산으로 분류할 수 있다. 다만 렉키로나처럼 시장성을 상실하거나, 임상 시험에 실패하면 곧바로 손실 폭탄으로 돌변한다. 박동흠 엔터밸류 대표 회계사는 "글로벌 제약회사들은 식약당국의 판매 승인 이후에 발생하는 개발비만 자산으로 인식한다"며 "국내처럼 개발 단계에서 무리하게 자산으로 분류하게 되면 손상 가능성도 큰 만큼 투자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산화 요건 완화한 새 제약·바이오 감독지침  

하지만 지난 23일 금융당국이 개발비 자산화 요건을 기존 지침보다 완화하는 내용의 '제약·바이오 산업 회계처리 감독지침'을 새롭게 발표하면서 회계 전문가의 우려를 낳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회계기준원은 임상 1상 승인 전에 지출한 개발비도 기술적 실현 가능성을 객관적으로 제시하면 자산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지침을 개정했다. 기존에는 신약은 임상 3상 이후, 바이오시밀러(복제약)는 임상 1상 이후부터 자산화할 수 있도록 했지만, 이 같은 기준을 완화한 것이다.

자산화 개발비 클수록 손실 '폭탄' 부메랑   

제약사는 사업화 단계에 올랐을 때 지출한 개발비를 IFRS 요건을 갖춘 경우 자산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렇게 분류한 금액을 수익화가 기대되는 기간으로 나눠 조금씩 비용으로 반영한다. 기계 매입 비용을 자산으로 기록한 뒤 기계의 예상 수명으로 나눠 비용으로 처리하는 감가상각과 비슷하다. 다만 임상시험 실패, 식약당국 불승인 등 개발에 실패하면 그동안 적립한 개발비 자산은 몽땅 손실로 전환(무형자산 손상차손)된다.

금감원에 따르면 신약은 임상 3상 이후 절반가량(50%), 바이오시밀러는 임상 1상 이후 60%가량이 식약당국의 최종 승인을 통과한다. 나머지는 모두 실패할 수 있다는 의미다. 새 감독지침대로 자산으로 분류할 수 있는 개발비 규모가 커지면 개발 실패에 따른 손실 부담도 그만큼 커진다.

제약·바이오 회사의 개발비 자산은, 의약품 개발에 실패할 경우 한꺼번에 손실 폭탄으로 돌변할 수 있다. 셔터스톡

제약·바이오 회사의 개발비 자산은, 의약품 개발에 실패할 경우 한꺼번에 손실 폭탄으로 돌변할 수 있다. 셔터스톡

새 지침은 또 이미 한 국가에 판매 중인 의약품을 다른 나라 식약당국에 추가로 판매 승인을 요청한 경우, 이때 지출하는 개발비는 자산으로 분류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 역시 다른 나라 식약당국이 승인을 해주지 않으면 손실처리 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의약품 원료 등 창고에 있는 재고자산도 다른 의약품 개발에 활용되면 재고자산 매입 비용 등을 개발비 자산으로 분류할 수 있도록 한 부분도 향후 투자자들이 눈여겨볼 대목이다. 재고자산은 생산 제품의 시장 가격이 하락하거나, 더 이상 팔리지 않게 되면 재고자산평가손실로 반영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손실을 반영하지 않고 다른 약품 개발에 쓰인다는 이유를 들어 다시 자산으로 분류하면 자산 규모가 부풀려질 수 있다.

지침 문구에 오해 유발 요소…당국 "추가 설명할 것"  

이 밖에 감독 지침 문구가 해석상 오해를 유발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금융당국은 '임상 1상 전 자산화' 가능한 의약품을 바이오시밀러로 한정한다는 입장이지만, 지침에는 이런 문구가 없다. 제약업계와 투자자 입장에선 복제약이 아닌 신약도 같은 지침이 적용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또 개발비를 자산으로 분류하려면 기술적 실현 가능성뿐만 아니라 IFRS에서 정한 6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하지만, 지침에는 '기술적 실현 가능성' 항목만 나와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임상 1상 전 자산화는 바이오시밀러에만 해당하고, IFRS의 6가지 요건을 모두 갖춰야만 개발비를 자산화할 수 있다"며 "오해를 해소할 수 있도록 추가 설명 자료를 배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금융당국은 제약업계가 분식회계 처벌 우려로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회계처리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업계가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안을 중심으로 새 감독지침을 마련했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이한상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그동안 국내 제약·바이오 회사들은 개발비를 자산으로 과도하게 인식해 투자자에 혼란을 주는 문제가 많았다"며 "정부가 기업의 애로 사항을 해결해 주겠다는 명분으로 지침을 개정한 건 이런 현실을 외면한 '탁상행정'일 수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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