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 '꿈의 직장'의 배신…어렵게 들어와 쉽게 짐싼다

중앙일보

입력 2022.09.21 02:00

업데이트 2022.09.21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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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젊은 층 사이에서 공무원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 업무부담과 권위적 공직문화 등이 복합되면서다. 사진은 정부 세종청사 모습. 프리랜서 김성태

젊은 층 사이에서 공무원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 업무부담과 권위적 공직문화 등이 복합되면서다. 사진은 정부 세종청사 모습. 프리랜서 김성태

서울시의 한 자치구 8급 공무원 A씨(30)는 야근이 잦다. 일주일에 3일 정도는 오후 10시까지 일한다. 주간 근무 시간에 민원인 응대와 팀장·과장 보고 등을 하느라 맡은 업무를 제때 처리하지 못해서다. A씨는 “서울에서 월세 내고 살 수 없는 월급으로 야근은 밥 먹듯이 하니 힘들다”고 말했다.

"지난해 임용 동기 10% 짐 쌌다" 

A씨는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 공무원을 선택했다. 2년을 준비한 끝에 지난해 붙었다. 하지만 합격의 기쁨은 순간이었다. 다닐수록 몸은 피곤하고 보람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박봉 문제는 둘째 치고 업무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그는 “벌써 임용 동기 70명 중 7명이 퇴직했다”며 “더는 ‘노량진’에서 꿈꾸고 바라던 직장이 아니다”라고 한숨을 쉬었다.

2030대 젊은 층에서 선망의 대상이던 ‘공무원’ 인기가 시들해졌다. 업무부담과 권위적·폐쇄적인 조직 문화에 노후 안전판으로 불리던 연금마저 불안해지자 매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9급 경쟁률 30년 만에 최저 

20일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올해 9급 공채 필기시험 경쟁률은 29.2 대 1로 1992년(19 대 1) 이후 30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하지만 어렵게 공부해 시험에 붙고도 일찌감치 짐을 싸는 분위기다. 재직기간 5년 미만 퇴직공무원 숫자는 지난해 1만693명으로 2017년(5181명)보다 2배 증가했다.

여러 지자체 노사문화 담당자 등에 따르면 2030 젊은 공무원은 상대적으로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을 중시하지만, 공직사회엔 조근과 야근을 ‘미덕’으로 여기는 문화가 여전히 뿌리 깊다고 한다. 과·팀별로 순번을 정해 상급자 식사를 챙기는 문화도 사라지지 않고 있는데 이에 따른 불만이 있다. ‘일을 가르쳐주는 것’이라며 업무를 몰아주고, 일이 잘되면 상급자 공으로 돌리려는 분위기도 있다.

익명을 요청한 9급 공무원은 “간단히 SNS로 보고해도 될 사안을 꼭 A4용지 한장에 맞춰 서면·대면 보고하라고 한다”며 “(다른 지자체엔) 통일된 양식이 없어 상급자가 원하는 글씨체·글자 크기·자간 등을 일일이 맞출 때도 있다더라”고 말했다.

지난해 극단선택한 대전시 공무원의 가족이 대전시청 앞에서 아들의 죽음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극단선택한 대전시 공무원의 가족이 대전시청 앞에서 아들의 죽음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9월 대전시에선 20대 9급 공무원이 극단선택을 하기도 했다. 유족과 변호인 측은 과중한 업무 부담과 부당한 지시·대우, 집단 따돌림(왕따) 등이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제11호 태풍 힌남노로 경북 포항에 큰 피해가 나자 9일 포항시 남구 대송면 한 공장에서 복구 지원에 나선 경북도 공무원들이 공장 안에 쌓인 토사를 치우고 있다. 연합뉴스

제11호 태풍 힌남노로 경북 포항에 큰 피해가 나자 9일 포항시 남구 대송면 한 공장에서 복구 지원에 나선 경북도 공무원들이 공장 안에 쌓인 토사를 치우고 있다. 연합뉴스

흔들리는 공무원연금 

연금제도 변화도 공직자 마음을 흔들고 있다. 2015년 공무원 연금 제도가 바뀌면서 2033년 이후 퇴직자는 연금 지급 연령이 65세로 미뤄진 상태다. 한국노총에 따르면 올해 퇴직 후 연금을 받지 못한 공직자(1700명)가 처음 발생했다. 이들은 내년부터 받는다. 하위직 공무원 사이에선 재정 고갈 등을 이유로 ‘많이 내고 적게 받는’ 건 물론 지급 연령도 더 늦춰질 수 있단 우려가 나온다.

A씨는 “30년 후 퇴직하고 연금을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차라리 선택할 수만 있다면, (20년 이상만 납입하면 되는) 국민연금을 택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 수령액을 단순 비교하긴 어렵다. 수급자 평균 가입 기간(공무원연금 26.1년·국민연금 17.4년), 낸 보험료(공무원연금 월 보수 18%·국민연금 월 소득 9%) 등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공무원 업무 강도 높은지 의문" 

반면 공무원 사회 이런 움직임에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봉급이나 처우 문제가 제기되면 ‘누가 공무원 하라고 등 떠밀었냐’는 취지의 댓글 등이 달린다. 민간기업 직장인 김모(35)씨는 “인허가나 복지업무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공무원의 업무 강도가 그리 세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앞으로 공무원 선호도가 다시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주식·비트코인 등 시장에서 투기성향이 강해짐에 따라 ‘파이어족 붐’이 일면서 안정적인 직종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진 측면이 있었다”며 “경기가 불안해짐에 따라 다시 안정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공무원 선호도도 다시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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