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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갈등 손해볼 것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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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북한의 핵실험으로 북.중 관계가 전 같지 않다지만 중국의 변경도시 단둥을 통한 양국 간 교역에는 별 변화가 없다. 두 나라를 잇는 북.중 우의교 너머로 신의주가 보인다(上). 압록강 연안에 대한 중국 해경 순시선의 순찰 활동이 핵실험 이후 강화됐다(下). [중앙포토]

북한 핵실험 이후 북.중 관계가 전 같지 않다. 중국인들은 한국전쟁 이래 '가장 불편한 관계'라고 말한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 시리다(순망치한.脣亡齒寒)'던 북.중 관계는 옛말이 된 듯하다. 정말 그럴까. 현지 취재를 통해 북핵 사태를 보는 중국인들의 속내를 짚어봤다.

지난 한 주 동안 여러 중국인을 만나보고 기자는 예상만큼 중국인들이 북핵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에도 불구하고 단둥을 통한 북.중 교역은 핵실험 한 달 만에 정상으로 돌아왔다. "사실상 달라진 게 없다"고 북한과 거래하는 사람들은 말했다. 동북아 '핵 도미노'를 우려한 중국이 석유와 식량으로 북한을 압박하고, 심지어 정권 교체까지 고려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추측은 '순진한 상상'에 지나지 않는 듯했다. 단둥에서 만난 한 중국인은 "북핵 문제의 해결은 북.미 관계의 정상화를 의미하는 것이고, 이는 정치.경제적으로 중국의 국익에 배치된다는 게 중국 정부의 기본 인식"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동분서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한 제스처일 뿐 속마음은 다르다는 것이다.

◆ "북핵은 중국에 군사적 위협이 아니다"=옌쉐퉁(閻學通)칭화대 국제문제연구소장은 "북한의 핵무기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주도해온 '선군(先軍)정치'의 완성을 의미하는 정치적 상징물로, '대내용'의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보유 자체에 더 큰 목적이 있기 때문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서는 포기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견해였다.

최근 평양을 다녀온 한 중국인 사업가는 "김 위원장이 군 수뇌부 회의에서 이번 핵실험에 든 비용을 1억2000만 달러라고 공개하고, 핵무기 보유로 군사적 억지력이 확보된 만큼 앞으로는 주민들의 생활 개선에 예산을 돌릴 수 있게 됐다고 했다는 얘기가 있다"고 전했다. 중국식 개방.개혁 정책이 '선부론(先富論)'에 입각한 것이었다면, 김정일은 '선군론(先軍論)'을 택한 것이고 핵무기를 손에 넣은 만큼 북한식 개방.개혁에 착수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고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핵무기의 사용은 체제의 종말을 의미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핵무기를 절대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중국인들의 시각이다. 중국인들이 여유를 보이는 첫째 이유다.

◆ "일본은 핵무장 못한다"=북한의 핵무기 보유에 따른 동북아 핵 확산 우려에 대해 중국 학자들은 이론적으론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한 견해라는 의견을 보였다. 중국인들이 느긋한 둘째 이유다.

류장융(劉江永.국제관계학) 칭화대 교수는 "미.일 동맹이 깨지지 않는 한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단언했다. 류 교수는 "미국이 일본을 보호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약화되거나 민족주의와 군국주의 부활을 내세운 극우 보수세력이 일본에서 집권하는 두 가지 경우를 상정할 수 있지만 예측 가능한 장래에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중국국제문제연구소의 진린보(晉林波)교수는 "앞으로 5년 후에도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일본의 핵무장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미국과의 관계 때문에 실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전망했다.

중국 국무원 산하 세계발전연구소 한반도연구센터 주임인 리둔추(李敦球) 박사는 "장기적으로는 동북아 핵 도미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그렇더라도 위험에 빠지는 것은 중국이 아니라 일본이나 한국"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영토가 워낙 넓기 때문에 선제 핵 공격을 당하더라도 보복이 가능하지만 땅이 좁은 일본이나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 "중국의 국익은 현상유지다"=중국사회과학원 세계경제정치연구소 부소장을 맡고 있는 왕이저우(王逸舟)박사는 "북한 체제의 장래와 관련해 학계를 중심으로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시인했다. 북한과의 관계를 새로운 시각에서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61년 체결된 조.중 우호조약의 개정, 심지어 정권 교체론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중국 정부가 어떤 판단을 하느냐는 것"이라면서 "주변 상황의 안정이 국익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게 중국 정부의 판단"이라고 그는 전했다.

"중국이 미국과 손잡고 대북 압박에 나설 경우 북한은 반미감정 이상으로 반중감정을 갖게 될 것이고, 이는 북한에 대한 지렛대의 상실을 의미한다. 설사 정권 교체가 성공하더라도 북한에 들어설 정권이 친중 정권이 된다는 보장이 없는 데다 그 과정에서 발생할 난민 유입 등 각종 골치 아픈 문제를 고려하면 차라리 김정일 체제가 유지되는 게 중국의 국익에 부합한다고 중국 정부는 보고 있다."(류장융 교수)

◆ "6자회담 통한 해결 어렵다"=6자회담이 열려도 북한 정권을 '악(惡)'으로 보는 부시 행정부의 시각이 바뀌지 않는 한 북핵 문제의 해결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중국인들은 입을 모았다. 왕이저우 박사는 "민주당의 중간선거 압승으로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은 되레 혼란스러워질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미국 입장에서 북핵은 '위기'라기보다 '위기관리'의 문제이기 때문에 북핵의 외부 이전만 막으면서 문제를 중국에 떠넘기고 있다는 시각도 있었다.

베이징.단둥=배명복 논설위원 겸 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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