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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교포의 한탕주의(촛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동포들에게 죽을 죄를 졌습니다.』
7일오후 서울 소공동 남대문경찰서 형사강력반.
생아편을 국내에 들여와 팔려던 중국교포 안동화씨(29ㆍ유선방송국 수리부ㆍ중국 흑룡강성) 등 2명이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안씨가 자신보다 2개월 앞서 서울로 들어온 손위처남 이용철씨(30ㆍ극장 매표원ㆍ흑룡강성)로부터 편지를 받은 것은 10월초.
『가짜라는 소문이 나돌아 한약재는 잘 안팔리니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아편을 갖고 들어오기 바람.』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씨의 연락에 솔깃해진 안씨는 40대 중국인 남자로부터 밀경작 생아편을 사들여 여성용 보약인 「녹태고」포장에 담아 국내에 밀반입했다.
안씨가 갖고 들어온 생아편은 모두 6백75g. 헤로인으로 정제되었을 경우 소매가격이 13억5천만원어치쯤 된다는게 경찰의 계산이다.
안씨는 서울 수표동의 허름한 여관방을 전전하며 하루 두끼를 1천원짜리 밥으로 때우면서도 중국에서 받는 월급 90원(한화 1만2천원)의 수만배를 한꺼번에 벌 수 있다는 꿈속을 헤매고 있었다.
그러나 이같은 황당한 「코리언 드림」은 6일 4천만원 상당의 아편을 남창동의 한 다방에서 팔려다 경찰에 붙잡힘으로써 순식간에 허무하게 끝났고 신세까지 망치게 된 것.
『연변에 관광오는 한국인들이 돈을 물쓰듯 뿌리고 다니는데다 여자까지도 사려고 하는 등 도덕적으로도 타락한 모습을 많이 보여 아편을 손쉽게 팔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북경 아시안게임 때도 드러났던 한국인들의 과소비 등 부정적 이미지가 안씨의 「한탕주의」를 부추겼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덕수궁 앞길이 중국산 한약시장으로 변한채 「한국에 가면 손쉽게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중국 교포들의 「코리언 드림」이 마약밀수에까지 이르게 된 요즘 싸구려 가을양복에 겨울 스웨터를 받쳐입은 안씨와 이씨의 초췌한 모습에서 병들어가는 우리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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