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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글로벌 아이

저급홍·고급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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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박성훈 베이징특파원

박성훈 베이징특파원

몇해 전 베이징에 있는 중국 관영 CCTV 본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 국제뉴스 담당PD가 방송 전 큐시트를 중앙선전부에 보낸다는 얘기를 듣고 ‘뜨악’했다. 순서가 바뀌거나 뉴스가 빠지는 일도 심심찮단다. 우리나라에선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이 PD는 놀라는 나를 보고 되레 신기해했다.

최근 중국에서 ‘선전’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어 흥미롭다. 중국 저장성 당선전부는 5일 ‘6가지 유형의 저급홍(低級紅) 및 고급흑(高級黑) 문제를 검토한다’는 글을 게재했다. 저급홍은 극단적 태도로 당 정책의 올바름을 과장하는 것이다. 고급흑은 다른 쪽을 비판한 듯 하지만 결과적으로 당의 대의를 손상시킨 행위라고 한다. 둘다 대중을 혼란시키고 기만해 높은 수준의 경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경, 28일 연속 옷도 갈아 입지 못하고 야근했다’는 선전 기사. 당 선전부는 이를 ‘저급홍’ 사례로 거론했다. [바이두 캡처]

‘여경, 28일 연속 옷도 갈아 입지 못하고 야근했다’는 선전 기사. 당 선전부는 이를 ‘저급홍’ 사례로 거론했다. [바이두 캡처]

많은 사례가 등장한다. 한 경찰이 무술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결혼식 참석을 포기했다. 언론은 그를 경찰의 모범이라 보도했고 혼자 결혼식에 참석한 신부의 사진도 올렸다. 결과는 반대였다. 시민들은 비정상이라고 비난했다. ‘부시장이 자비로 월병을 사먹었다’, ‘빈곤 구호 간부들이 가난한 여성 가정과 결혼했다’, ‘여성 공무원이 28일 연속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야근했다’…당 선전부는 “근면과 청렴을 부각하려는 전통적이고 과장된 선전 스타일이며 서툰 자기 미화는 여론의 경멸만 불러왔다”고 일갈했다.

일반 직원, 지방 간부, 중앙 간부, 국장급이 출근할 때 입는 복장을 비교해 ‘옷차림의 미학’이라고 분석한 한 매체의 기사를 언급하며 “칭찬인 듯 보이지만 조롱”이라고도 평했다. ‘중국은 반드시 이긴다’와 같은 매체의 선동은 당 정책을 냉소적 담론으로 이끌 수 있다는 지적도 했다.

그러면서 선전부는 이렇게 제안한다. “점점 복잡해지는 여론 환경 속에 뉴스와 선전은 예술이란 걸 깊이 이해해야 한다. 진실과 단순을 견지하고 합리성을 주장해야 하급홍과 고급흑을 종식시킬 수 있다.” 선전과 사실의 경계는 더 흐릿해지고 교묘해질 모양이다.

그런데 여론의 향배가 날카롭다. 지난 2일 푸화(傅華) 중국 신화통신사 사장이 잡지 ‘중국왕신’에 ‘3개의 1분’이란 글을 발표했다. “1분도 당의 대열 밖에 서지 않고, 1분도 시진핑 주석이 이끄는 방향을 벗어나지 않으며, 1분도 당 중앙의 시야를 떠나지 않는다.”

20차 당 대회를 앞둔 상황에서 시 주석의 방침을 관영 매체가 앞장서서 실천할 것이란 공개 서약에 다름 아니었다. 일각에서 이런 얘기가 나온다. “그가 제안한 ‘3개의 1분’은 저급홍인가 고급흑인가. 아니면 새로운 방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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