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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살아야해""엄마, 키워주셔서 감사해요"…운명은 엇갈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7일 오후 2시쯤 경북 포항 북구의 경북포항의료원 장례식장에서 A군(15)의 친구들이 조문하고 있다. A군은 지난 6일 태풍 힌남노 영향으로 침수된 경북 포항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엄마와 함께 갔다 실종, 숨진 채 발견됐다. 안대훈 기자

7일 오후 2시쯤 경북 포항 북구의 경북포항의료원 장례식장에서 A군(15)의 친구들이 조문하고 있다. A군은 지난 6일 태풍 힌남노 영향으로 침수된 경북 포항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엄마와 함께 갔다 실종, 숨진 채 발견됐다. 안대훈 기자

“아들이 ‘엄마,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갔다고 하더라.”

지난 6일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실종됐다 숨진 채 발견된 중학생 A군(15)의 아버지는 아들의 마지막 말을 이렇게 전했다. A군은 당시 어머니 B씨(52)와 함께 지하주차장에 주차돼 있던 차를 빼기 위해 내려갔다 끝내 빠져나오지 못했다.

포항시 북구 경북포항의료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A군의 아버지는 “어깨와 몸이 좀 불편한 아내가 ‘나는 더 이상 안된다. 너라도 살아야 한다’고 아들을 먼저 보냈다더라”며 “아들이라도 나가면 살 가능성이 있다고 먼저 보낸 것 같은데 물이 쏟아져 들어오니 아들이 나가지 못하고 그렇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침수 상황에 대해 차량에 함께 탑승했던 아내와 아들은 차 밖으로 나가려 차문을 열려 했지만, 몸이 불편한 아내 쪽 차문이 차오른 물 때문에 열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아들이 먼저 밖으로 나가, 아내 쪽 차문을 열어 아내를 빼냈다고 한다.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지나간 6일 오후 소방당국이 경북 포항시 오천읍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수색 중 발견한 여성 생존자 1명을 추가로 구조해 나오고 있다. 뉴스1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지나간 6일 오후 소방당국이 경북 포항시 오천읍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수색 중 발견한 여성 생존자 1명을 추가로 구조해 나오고 있다. 뉴스1

A군은 엄마 B씨와 주차장에서 헤어지면서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고 한다. A군의 아버지는 “(아들을 살리려는) 시도는 좋았는데 결국 숨을 거뒀다”며 “아내가 살아남은 것도 천운이다. 당시 침수 상황을 봤다면 누구도 못 살아날 거라 생각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맨 처음 생존자가 나오고, 두 번째로 아내가 나오니까 아들도 살아있을 거란 희망이 생겼었다”며 “그 뒤부터 고인이 된 분들만 나오고, 우리 아이가 (1단지 지하주차장에서) 맨 마지막에 나왔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7일 경북소방본부 구조대원들이 포항시 남구 오천읍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실종자 수색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뉴스1

7일 경북소방본부 구조대원들이 포항시 남구 오천읍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실종자 수색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뉴스1

A군의 아버지가 지키고 있는 빈소에는 이날 낮부터 학교 친구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A군의 친구들은 입을 모아 “A군이 어머니를 잘 따랐던 친구”라고 얘기하며 눈물을 훔쳤다. A군이 하루 아침에 떠나버렸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듯 돌아오지 않는 답장을 기다리며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친구들도 있었다.

A군을 포함 7명이 숨진 포항 아파트 지하주차장 침수 사고 관련 수색작업도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박치민 포항남부소방서장은 7일 오후 “(추가 실종자 발견 가능성) 거의 없다”며 “주차장 곳곳을 여러 차례 수색했지만 추가 실종자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사고 당시 천장 가까이 물이 차올랐던 이 아파트 1단지 지하주차장은 현재 거의 물이 빠졌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 기준 배수율은 약 85%로 수심은 60㎝ 정도다.

소방당국은 A군을 포함한 사망자 대부분이 출입구와 가까운 통로에서 발견됐다고 밝혔다. 사고 당일인 지난 6일 오전 지하주차장으로 물이 한꺼번에 쓸려 오면서 출입구 막혀 탈출이 어려웠을 것으로 파악했다. 박 서장은 “물이 찰 때 엄청난 속도로 불어나게 되면, 출입구가 막히게 된다. (그러면) 더는 진행하는 게 쉽지 않다”며 “한정된 공간에서 탈출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생존자의 경우 주차장 내 차량 등을 발판 삼아 물이 차오르지 않은 공간, 이른바 에어포켓이 있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으로 판단했다. A군의 어머니 B씨는 천장에 가까운 배관에 올라, 구조되기까지 13시간 가까이 기다렸던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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