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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안내방송 그때 "차 포기하자"…지하주차장 참사 피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제11호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경북 포항시 남구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빠르게 빗물이 차올라 7명이 실종된 가운데 과감하게 차량을 포기한 순간 판단도 눈길을 끌었다.

실종 사고가 발생한 포항시 남구 인덕동 한 아파트 단지에서 부녀회장을 맡은 A 씨는 6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우리 가족도 아침에 관리사무실에서 하는 방송을 들었다”고 했다.

6일 태풍으로 침수된 포항 남구 인덕동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를 빼러 갔던 7명이 실종됐다는 신고가 들어와 소방당국이 배수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6일 태풍으로 침수된 포항 남구 인덕동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를 빼러 갔던 7명이 실종됐다는 신고가 들어와 소방당국이 배수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해당 아파트 관리사무실은 오전 6시부터 수차례에 걸쳐 지하 주차장 출차 관련 안내 방송을 했다. 아파트 1단지 방송에서는 처음에는 “지하 주차장 차량을 뺄 필요가 없다”고 했다가 오전 6시 30분쯤에는 “지하 주차장에 물이 차고 있으니 차를 옮겨야 한다”는 내용으로 방송했다. 실종 주민들도 이 방송에 따라 지하 주차장에 들어갔다가 빠져나오지 못했다.

A씨는 “창밖을 보니 이미 지상에도 인근 하천이 범람해 상당히 침수돼 있는 상황이었다”며 “우리 가족도 지하 주차장에 차량을 주차해 뒀지만 내가 남편에게 ‘차를 포기하자’고 했다”고 전했다.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 상황이라는 판단에서였다.

태풍이 지나가고 오후가 되자 하늘은 화창하게 갰지만, 이날 이 아파트는 전기와 물이 끊겼다. 아파트 단지 전체가 침수되면서 온통 흙탕물로 덮이게 된 것은 물론 지하 주차장에서 실종된 주민들도 아직 찾지 못해 이웃들이 슬픔에 빠졌다.

A씨는 “당장 전기와 물 없이 집에 머무르게 됐지만, 이 상황보다 지하 주차장에서 주민들을 찾는 수색 작업을 보고 있는 것이 더욱 마음 아프다”고 말했다. A씨는 “정전·단수 상황이 지속하면 장기전을 대비해 마땅한 숙소를 찾아 가족과 함께 거처를 옮겨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6일 제11호 태풍 '힌남노'로 침수 피해가 난 경북 포항시 남구 인덕동 한 아파트 단지 바닥이 흙탕물로 뒤덮여 있다. 김민주 기자

6일 제11호 태풍 '힌남노'로 침수 피해가 난 경북 포항시 남구 인덕동 한 아파트 단지 바닥이 흙탕물로 뒤덮여 있다. 김민주 기자

순간의 판단으로 지하 주차장에 세워둔 차량을 포기하기로 한 A씨. 지하 주차장이 예상보다 빠르게 침수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A씨는 ‘운명을 가른 판단’을 한 셈이다.

지하 주차장은 지상 건축물과 달리 출입구가 한정적이고, 배수 장비가 있더라도 배수량보다 많은 비가 내릴 경우 침수를 막을 수 없다. 또한 지하 주차장은 침수가 될 때 유속이 굉장히 빨라져 대피가 쉽지 않다. 방재관리연구센터에 따르면, 지상의 침수 높이가 60㎝인 상황에서 지하 공간은 5분 40초 만에 수위가 75~9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해당 아파트는 인근에 하천인 냉천이 집중 호우로 범람, 지하 주차장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더욱 빠른 속도로 침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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