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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의 연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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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도버해저터널이 최근 드디어 개통됐다는 기사를 읽었다. 거의 3년에 걸친 공사 끝에 관통하는 순간을 맞게됐다고 한다.
93년에는 고속철도가 운행하게 된다고 하니 정말 현대공학의 큰 힘에 경탄할 뿐이다. 이로써 영국도 유럽대륙에 결국 연결되는 것인가. 15년도 훨씬 넘은 오래 전 프랑스의 칼레에서 도버해협을 건너 캔터베리를 거쳐 런던에 닿느라고 고생 고생하던 생각이 났기 때문에 더욱 관심이 가는 것 같다.
우리가 영국이라고 부르는 지역은 실은 잉글랜드만을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
넓은 의미의 영국, 즉 UK는 스코틀랜드·웨일스·아일랜드 등으로 구성돼 있다.
아일랜드 섬은 영국에 속한 북 아일랜드와 에이레 공화국으로 갈라져 있다.
북 아일랜드는 아일랜드(에이레) 공화국이 영국에 강제로 빼앗긴 땅. 아일랜드의 헌법에는 섬 전체가 공화국 국토라고 되어있다. 북 아일랜드 지역은 현재 영국영토지만 원래는 아일랜드 것이고, 또 언젠가는 아일랜드의 영토가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헌법에 그렇게 명기해 놓았다고 한다. 대서양의 분단국가라고나 할까.
아일랜드의 수호성인은 성패트릭이다. 매년 3월 17일이면 성패트릭 축제가 열린다.
이날은 온통 초록색의 물결이다. 모자·셔츠·바지 모두 초록색이다. 성패트릭의 색깔이 초록색이기 때문이다. 신록이 움트는 계절에 초록의 물결이 화려하게 거리를 장식한 광경이 눈이 부실 듯 했던 것이 생각난다. 하여튼 아일랜드의 초록색이 그렇게도 선명하고 화려했다.
색깔은 연상을 수반한다. 그 연상이 지역적으로 공통성을 지니고, 또 전통과 결부되면 어떤 관습이 만들어 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보라색은 많은 나라에서 고귀한 색으로 여기고 있으나 브라질이나 인도에서는 슬픔과 비탄을 뜻한다. 녹색은 많은 나라에서 평화와 젊음으로 상징되고 있다. 그렇지만 미국 동부지방에서는 장의를 뜻한다. 장의사집은 언제나 녹색차양을 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 색깔에 대해서든지 외관적인 연상, 일반적인 연상 이외에도 직접적·객관적·주관적 연상을 갖게 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빨강에 대한 직접적인 연상은 위험·축제이며, 객관적으로는 정열과 적극적인 대담함을 연상할 수 있고, 또 주관적으로는 분노와 강렬함을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초록은 직접적으로 선명한 느낌을 주며 객관적으로는 신선한 자연을 느끼게 해준다는 것이다. 반면 초록에 대한 주관적인 연상은 공노와 범죄라는 것이다.
이렇듯 연상에 따라 전달해주는 메시지가 다르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린벨트가 회색의 도시에서 신선한 자연을 느끼게 해줄 수도 있지만 사리사욕을 위한 온상, 투기와 범죄의 대상이라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는 논리다. 요즘 그린벨트규제 완화에 대한논란이 사뭇 많은 것 같다. 【백남옥<성악가·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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