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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문화로 만나는 아시아 역사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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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3호 21면

동아시아 도시 이야기

동아시아 도시 이야기

동아시아 도시 이야기
도시사학회, 연구모임 공간담화 지음
서해문집

키워드 동남아
강희정·김종호 외 지음
한겨레출판

타이난은 타이완에서 수도 타이베이보다 역사가 오래 된 도시다. 17세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무력으로 점령해 사탕수수를 재배하는 등 유럽의 대항해시대가 일찌감치 영향을 미친 곳이다. 이후 중국의 명·청 교체기 정성공은 네덜란드 세력을 몰아내고 타이난을 반청운동의 새로운 거점으로 삼았다.

키워드 동남아

키워드 동남아

타이완의 중심이 타이베이로 옮겨간 것은 청일전쟁 이후 일본이 타이완을 할양받으면서. 19세기 후반 쌓은 성벽, 이를 헐고 20세기 초 만든 순환도로 등 타이베이의 도시구조에는 청과 일본의 영향이 중층적으로 남아있다.

이처럼 『동아시아 도시 이야기』는 도시를 통해 아시아의 역사, 특히 근대사와 문화를 풀어낸 책이다. 타이난과 타이베이를 포함해 책이 다루는 도시는 20여곳. 이를 ‘식민도시’ ‘문화유산도시’ ‘산업군사도시’ 등 3부로 나눠 실었는데, 이는 각 도시의 정체성에 대한 단정이라기보다는 도시를 바라보는 초점으로 이해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예컨대 ‘식민’도시로 분류된 군산에서 새로이 관광지로 떠오른 일제강점기 건축물은 ‘문화유산’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각 범주는 종종 겹쳐진다.  ‘산업군사’ 도시로 분류된 부평에 남아있는 미쓰비시 줄사택 역시 ‘문화유산’을 어떻게 규정하고 활용할지의 문제와 연관된다.

이런 일제강점기 흔적만 아니라 도시의 오래된 지역이 새롭게 관광 자원화되고 있는 현상도 양면성이 있다. ‘부산’편의 글쓴이는 관광객의 발길이 잦아진 감천마을과 수정동 일대 산복도로를 주목한다. 가난(poor)이 관광(tourism) 상품이 되는 푸어리즘, 관광객들이 도시를 변화시키는 투어리스티피케이션 등 여러 생각 거리를 던져준다.

책 『동아시아 도시 이야기』에 실려 있는 부산 감천마을 모습. [사진 서해문집]

책 『동아시아 도시 이야기』에 실려 있는 부산 감천마을 모습. [사진 서해문집]

역사학자를 비롯해 모두 15명의 연구자가 도시별로 쓴 글들은 초점도, 깊이도, 형식도 조금씩 다르다. ‘하얼빈’편은 격동기 다양한 인종과 국적이 모여들었던 이 도시의 역사와 흔적을 이효석의 『벽공무한』을 인용해 가까이 느끼게 한다. 하얼빈교향악단의 서울 공연 이후 1940년 발표된 이 소설은 하얼빈에서 만난 백계 러시아 여성과 사랑에 빠진 주인공을 통해 당시의 시각과 문물을 보여준다. 형식적으로 가장 색다른 시도라면 ‘흥남’편. 구술사를 포함한 사료를 바탕으로, 1930년부터 흥남의 일본기업 공장에서 일하다 패전 직후 돌아간 일본인들의 모습을 마치 한 가족의 삶을 다룬 한 편의 소설처럼 전개한다.

다루는 지역은 좀 다르지만 『키워드 동남아』 역시 인문학적인 랜선 여행, 아니 책을 통한 방구석 여행 욕망을 부추기는 책이다. 베트남 커피, 싱가포르의 호커센터, 인도네시아의 른당 같은 식문화를 비롯해 30개의 키워드를 내세워 동남아의 역사와 문화를 담아낸다. 일본이 패전 직전까지 발행했던 ‘바나나머니’, 영국의 식민 지배와 함께 계층별로 이주한 ‘인도인’ 등 역사적 이해에 초점 맞춘 항목도 여럿이지만, 다른 항목도 해당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충분히 드러나도록 입체적인 서술을 하는 점이 두드러진다. 저자 6명은 모두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들이다. 로힝아족 비극의 기원이나, 식민 지배를 겪지 않고 입헌군주제를 거쳐 지금에 이른 태국식 민주주의의 특징 등은 현재진행형  이슈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책에 따르면 ‘동남아’는 오래된 개념이 아니다. 1943년 미국이 일본군에 대항하기 위해 스리랑카에 설치한 연합군 사령부를 ‘동남아시아 사령부’로 부르면서 일반화된 용어다. 그저 ‘동남아’로 묶기에는 11개 나라와 지역마다 문화와 역사가 다르고 다양하다는 얘기다. 우리네와 닮은 듯 다른 식민 경험은 그 역사를 이해하는 데도 요긴하게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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