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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 Review] ‘전기차 대응’ 민관 원팀 꾸린다, EU 등과도 공조 추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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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25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미국 반도체·전기차 지원법 대비 업계 간담회에서 반도체·자동차·배터리 업계 대표들이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오른쪽 넷째)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25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미국 반도체·전기차 지원법 대비 업계 간담회에서 반도체·자동차·배터리 업계 대표들이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오른쪽 넷째)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자동차·배터리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치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정부와 산업계가 함께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전방위적인 대미 설득 작업에 나서는 한편, 한국처럼 전기차 수출이 많은 유럽 등과 공조를 추진한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5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반도체·자동차·배터리 업계 간담회를 열고 최근 미국에서 통과된 반도체 지원법과 IRA 관련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이창양 장관 “내달 미국 가 협상 검토”

IRA는 북미에서 최종 조립되는 전기차에만 보조금(세액공제)을 지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북미 내 최종조립, 미국·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산 배터리 광물 조달비율, 북미산 배터리 부품 조달비율 등 3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최대 7500달러(약 1000만원)를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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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기본 요건인 북미 내 조립은 올해 발효되면서 현지 생산 공장이 없으면 당분간 보조금 혜택을 받기 어렵게 됐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북미 지역 최종 조립 조건은 무조건 만족해야 하는 너무나 명확한 요건으로 미국이 유연성을 발휘할 여지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설상가상으로 북미에서 차량을 생산하더라도 내년부터 배터리 광물·부품 요건이 적용되면 해외 전기차들의 가격 경쟁력은 더 약화한다. 현재 리튬과 코발트, 흑연 등 핵심 광물을 중국에 의존하는 만큼 곧바로 기준을 맞추기 어려워서다. 다만 구체적인 관련 지침은 미 재무부가 올해 안에 추가 발표 예정이다. 정부가 광물·부품 관련 가이드라인만이라도 한국 기업에 유리하게 나오도록 전력을 다하는 이유다.

지난해 미국 내 수입 전기차 판매량(플러그인하이브리드·수소차 포함)은 일본 6만3000대, 독일 5만대, 한국 3만2000대, 스웨덴 2만3000대 등이다. 이창양 장관은 “IRA가 법안 공개 후 2주 만에 전격 통과됐는데 미국 국내 정치, 중국 디커플링(탈동조화) 모색, 자국 산업 육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외교부 당국자는 “(광물 및 부품 조달 비율 조건 적용의) 유예 기간이 길어질수록 우리에게 좋다”며 “2025년까지 미국에서 새로 지어지는 배터리 공장 13개 중 11개를 한국 업체가 짓기 때문에 당장은 어렵지만 2025년부터는 상대적으로 우리 배터리 업체들이 유리해지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우선 산업부는 미 행정부와 의회, 백악관 등에 적극적인 설득 작업을 펼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다음 주엔 안성일 신통상질서전략실장, 다음 달엔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이 연달아 방미한다. 정부는 또한 국내 배터리·자동차 기업들이 진출해 있는 주 정부들도 접촉, 설득할 예정이다. 이 장관은 이날 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나 다음 달 중에 직접 미국을 방문해 협상에 나서는 것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국내 기업들도 분주하게 움직인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 23일 미국으로 출국해 IRA 대응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배터리 업계는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핵심광물을 호주·칠레 등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로 다변화하는 걸 추진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6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기후변화 대응과 의료보장 확충, 대기업 증세 등을 담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6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기후변화 대응과 의료보장 확충, 대기업 증세 등을 담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한국과 비슷한 처지인 독일·스웨덴 등과 손잡고 미국을 압박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유럽 내 휴가 시즌이 끝나는 다음 달 초부터 유럽연합(EU) 등과 협의를 진행하는 등 공조 방안을 강구키로 했다. 업계도 주요국 자동차협회와 공조에 나설 예정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는 다음 달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와 공동 입장문을 발표하고 미국 측에 전달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송유철 동덕여대 국제경영학과 교수도 “한국만 고군분투할 게 아니라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타격을 받은 EU 등과 보조를 맞춰 공동 대응하는 게 현명하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업계가 총력 대응을 내세웠지만, 오는 11월 중간선거 등에 따라 ‘자국 우선’을 내세운 미국 정부 설득은 녹록지 않다. 정대진 산업부 통상차관보는 “미국 정치 일정상 법을 당장 개정하거나 완화할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IRA가 그대로 진행되면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통상 규범 위배 가능성도 면밀히 검토키로 했다. 이창양 장관이 지난 22일 국회에서 WTO 제소 여부를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런 카드를 당장 꺼내진 않을 예정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대화를 통한 해결이 선행돼야 한다. 그런 게 안 됐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 (제소 등의) 절차를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장관도 “일단 양자 협의를 통해 IRA 하위 규정에 우리 기업 의견을 반영하는 게 우선”이라고 밝혔다.

“미 의회 초고속 법안 통과에 대응 못해”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대통령실과 백악관을 잇는 ‘경제안보대화’ 채널을 신설하는 등 미국과 긴밀한 경제 안보 협력을 약속했지만, 사실상 미국으로부터 뒤통수를 맞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IRA의 전기차 세액 공제 관련 문안은 지난달 말 이미 공개됐다고 한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번엔 의회에서 열흘 만에 고속으로 법안이 통과되는 바람에 미리 로비할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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