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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때 '日기업 땅' 이제 누구 것? 농어촌공사 소송전 결론은 [그법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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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법알 사건번호 78] 미쓰비시 창업자 이름 딴 회사의 한국 땅, 소유권은

광주 광산구 일대 저수지의 제방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 땅이 기록으로 등장한 것은 일제강점 10년째였던 1920년입니다. 당시 토지대장에 이 땅의 소유권이 일본 법인인 동산농사 주식회사로 이전됐다고 기재됐습니다. 이 회사의 주식은 일본 기관 또는 일본인 소유였고, 본점은 일본 동경에 있었죠.

동산농사는 일본 전범 기업인 미쓰비시 기업 창업자의 장남 이와사키 하시야(岩崎久彌)가 아버지 이와사키 야타로(岩崎弥太郎)의 호인 ‘동산(東山)’을 따 1907년 창립한 회사입니다.

법원 자료사진. 뉴스1

법원 자료사진. 뉴스1

35년의 일제강점기 동안 많은 일본인과 일본 회사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자리를 잡았죠. 해방 후 그들이 남겨두고 간 재산 중 일부는 우리 정부에 양도됐지만, 또 그 나머지는 국유화되지 못한 채로 국토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일종의 국가 자산 관리 사각지대에 놓이게 됐었던 셈입니다.

그런데 농어촌공사는 국가가 해당 토지에 대해 소유권을 공사로 이전해줄 의무가 있다는 입장을 내세우며 소유권이전 등기를 청구했습니다. 토지대장상 일본법인 소유로 등재된 토지의 소유권이 대한민국에 귀속되었음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반면 국가는 토지대장상 소유권이 동산농사 주식회사에 있다며 소유권을 취득했는지가 확인되지 않는다고 맞섰습니다.

관련 법률은

귀속재산은 일제강점기 일본인 및 일본법인이 소유했다가 일제가 패망하면서 남겨두고 간 재산입니다. 대부분이 1948년 한미 협정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에 이양됐다지만 광복 후 7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일부가 남아 있습니다. 해방 후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일부 귀속재산이 국유화되지 못하고 국토 곳곳에 상흔처럼 남은 것입니다.

이러한 혼란을 정리하는 법적 기준 중 하나인 귀속재산처리법의 제2조 3항은 ‘1945년 8월 9일 이전에 한국 내에서 설립되어 그 주식 또는 지분이 일본기관, 그 국민 또는 그 단체에 소속되었던 영리법인 또는 조합기타에 대하여서는 그 주식 또는 지분이 귀속된 것으로 간주한다’고 돼 있습니다. 이 법에 대해 본이 일제강점기 한국 내에 설립한 법인이 소유한 주식 또는 지분은 귀속재산이 되지만, 해당법인이 소유하던 재산은 귀속재산에서 제외된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습니다.

왜 이런 법과 판례가 생겼을까요. 일본인들이 조선에 들어와서 법인을 만든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주식회사 조선상회(가칭)의 주식은 100% 일본인의 소유고, 조선상회는 청담동 땅 1000평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해방된 대한민국은 선택을 내려야합니다. 조선상회 재산 중 무엇을 귀속시킬지요. 조선상회의 주식도, 땅도 모조리 ‘대한민국 것’으로 돌려놓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재산이라는 동일한 실체를 여러번 빼앗는 것(귀속)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재산이 아니라 주식이나 지분을 확보하게 된 것입니다. 주식이나 지분을 확보하면, 사실상 국내에 있는 재산 역시 확보하는 결과를 낳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

또 이런 의미도 있습니다. 한국이 아니라 일본에 설립한 법인이라면 남의 나라 법인 주식을 우리가 귀속시킬 방법은 없습니다. 그런데 귀속재산처리법의 제2조 3항에서는 한국 내에서 설립한 일본 법인의 재산을 귀속재산에서 제외한 것이니 바꿔 말해 일본에서 설립한 법인이 한국에서 소유하던 재산은 귀속재산에서 제외되지 않는 것으로 볼 여지가 생깁니다.

법원 판단은

1‧2심은 농어촌공사가 패소했습니다. 원심은 “주식 또는 지분만이 귀속되고 그 법인이 소유하던 재산은 귀속재산에서 제외된다고 할 것”이라는 대법원 판례를 언급하면서 패소판결을 내렸죠.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대법원 3부(주심 대법관 이흥구)는 24일 사건의 심리가 미진했다며 사건을 원심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대법원은 “이 사건 토지가 귀속재산에서 제외된다고 보기 위해서는 동산농사 주식회사가 ‘국내에 주된 사무소 또는 본점을 두고 설립된 영리법인’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심리·판단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토지대장상 소유명의자가 일본 법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귀속재산에서 제외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주식회사의 본점 또는 주된 사무소가 일본 내에 있었는지 한국 내에 있었는지 등을 따져봐야 한다는 점을 다시 짚어준 것입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 판결은 귀속재산처리법 제2조 제3항의 해석에 관한 법리를 설시함으로써, 해방 전부터 일본 법인이 소유하였던 국내 소재 재산이 귀속재산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을 처음으로 명확히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일본인 명의 귀속재산 국유화 현황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조달청]

일본인 명의 귀속재산 국유화 현황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조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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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법’을 콕 집어 알려드립니다. 어려워서 다가가기 힘든 법률 세상을 우리 생활 주변의 사건 이야기로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함께 고민해 볼만한 법적 쟁점과 사회 변화로 달라지는 새로운 법률 해석도 발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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