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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영희의 나우 인 재팬

아이유 마신 녹색병 찾아다닌다…일본인 몰린 '칸비니' 정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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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영희 기자 중앙일보 특파원
이영희 도쿄특파원

이영희 도쿄특파원

‘칸비니(韓ビニ).’

일본 트위터 등에서 뜨거운 이 단어는 한국의 ‘한(韓)’과 일본어로 편의점을 뜻하는 ‘콘비니’(convenience store)의 합성어다. 내부는 한국 과자ㆍ라면ㆍ음료ㆍ냉동식품ㆍ조미료에 잡화까지 들어차 있는 서울 시내 여느 편의점과 비슷하다. 칸비니는 지난 2020년 12월 일본 사이타마(埼玉)현 가와구치(川口)시에 1호점이 문을 연 후 2년이 채 안 돼 일본 수도권을 중심으로 16개 점포로 늘어났다.

지난 17일 일본 사이타마현 가와구치시에 있는 한국식 편의점 '칸비니'에서 손님들이 물건을 고르고 있다. 이영희 특파원

지난 17일 일본 사이타마현 가와구치시에 있는 한국식 편의점 '칸비니'에서 손님들이 물건을 고르고 있다. 이영희 특파원

지난 17일, 칸비니 가와구치점을 찾았다. 가와구치역에서 10분, 주택가 한가운데 자리 잡은 작은 편의점이다. 낮 시간이라 매장엔 손님이 많지 않았다. 인근 초등학교 5학년이라는 학생은 “학교에서 한국 젤리가 맛있다고 소문이 났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자주 들른다”고 했다.

칸비니 운영자인 서정웅 대표는 도쿄 인근 도시 가와구치에 오래 살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이후 한국 여행이 어려워지면서 주변에 한국 식료품이나 화장품 등을 구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한국 식료품을 사려면 도쿄(東京)의 코리아타운인 신오쿠보(新大久保)까지 가야 했다. “인구가 많은 지역은 아니지만 충분히 한국 슈퍼에 대한 수요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젊은이들이 부담 없이 찾아올 수 있도록 편의점 형식을 취했죠.”

일본 사이타마현 가와구치시에 있는 한국식 편의점 '칸비니' 가와구치 본점. 이영희 특파원

일본 사이타마현 가와구치시에 있는 한국식 편의점 '칸비니' 가와구치 본점. 이영희 특파원

아이디어는 통했다. 일본TV나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칸비니가 알려지면서 인근 지역뿐 아니라 지방에서 구경 오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도쿄 인근인 지바(千葉)현, 도치기(栃木)현 등에 차례차례 칸비니가 오픈하자 ‘순례’를 다니는 사람들까지 등장했다. 손님의 90% 이상은 일본인이고 1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찾는다. 마음먹고 오는 손님이 많은 만큼 1인당 평균 구입 금액이 약 1500엔(약 1만4600원) 정도로 보통 일본 편의점의 2배 가까이에 이른다.

“인스턴트 라면은 한국 게 맛있다”

수년 전만 해도 일본 내에서 한국 식료품을 사려면 도쿄 등 대도시의 한국 전문 식품점에 가거나 인터넷 쇼핑을 이용해야 했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도쿄 신바시(新橋)에 있는 대형 슈퍼마켓에는 다섯 종류가 넘는 한국 김치와 10여 종의 소주ㆍ막걸리 등 한국산 술이 진열대 한쪽 면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 2~3년 사이 일본인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편의점에서도 한국 라면과 만두ㆍ소주 등을 쉽게 살 수 있다.

한국농수산물유통공사(aT)에 따르면 한국 라면의 일본 수출액은 2019년 3375만 달러(약 450억원)에서 2021년에는 6528만 달러(약 872억 원)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음료 수출도 817만 달러(약 116억 원)에서 1475만 달러(약 197억 원)로 크게 성장했다. 고추장 수출액도 2019년 441만 달러(약 59억 원)에서 2021년에는 595만 달러(약 79억 원)까지 증가했다.

aT 도쿄지사 장서경 본부장은 “코로나19 전 한해 약 300만 명의 일본인이 한국을 찾았는데, 여행을 못 가고 ‘집콕’ 문화가 생기며 집에서 한국 음식을 해 먹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넷플릭스 등을 통해 한국 드라마를 접한 젊은 층의 수요도 급증하자 유통업체들이 한국 식료품을 매장에 적극 들여놓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17일 일본 도쿄 시부야에 있는 대형 잡화점 '메가동키'에서 한국 식품을 고르고 있는 젊은이들. 이영희 특파원

지난 17일 일본 도쿄 시부야에 있는 대형 잡화점 '메가동키'에서 한국 식품을 고르고 있는 젊은이들. 이영희 특파원

도쿄 시부야(渋谷)에 있는 대형 잡화점 ‘메가동키’ 2층 해외식품 코너는 사실상 한국 식료품 매장이 됐다. 꼬북칩ㆍ허니버터칩 등 수십 종이 넘는 과자에 신라면ㆍ진라면ㆍ 짜파게티ㆍ비빔면 등 한국 슈퍼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라면이 진열돼 있다. 이곳을 찾은 20대 여성은 “친구들이 인스턴트 라면은 한국 게 훨씬 맛있다고 해서 라면을 사러 자주 온다”고 했다. 농심재팬의 이범수 부장은 “라면의 경우 드라마ㆍ영화 등 문화콘텐트의 영향이 크다. 얼마 전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 감독의 영화 ‘브로커’에 배두나씨가 컵라면을 먹는 장면이 나오자 컵라면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저 녹색병은 무엇?" 소주에 몰린 관심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한 장면. 사진 '나의 아저씨' 홈페이지 캡처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한 장면. 사진 '나의 아저씨' 홈페이지 캡처

특히 한국 소주의 인기는 일본 매체들도 집중 조명할 정도다. 아사히신문은 지난 8일 “최악의 한ㆍ일 관계 속에서도 한국 소주가 일본 젊은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일본에서 크게 히트한 ‘이태원 클라쓰’ ‘나의 아저씨’ 등의 드라마에서 등장인물들이 소주를 마시는 장면이 자주 등장해 “저 녹색 병은 무엇일까”라는 호기심을 가진 시청자들이 소주를 찾게 됐다는 해석이다.

지난 16일 일본 신바시 인근에 있는 한 대형슈퍼에 한국 소주가 진열돼 있다. 이영희 특파원

지난 16일 일본 신바시 인근에 있는 한 대형슈퍼에 한국 소주가 진열돼 있다. 이영희 특파원

진로의 참이슬은 현재 일본의 3대 편의점을 비롯한 대부분의 대형 마트에 입점해 있다. 박상필 진로재팬 마케팅부문장은 “코로나19 이전인 2018년과 비교하면 일본 내 참이슬 판매량이 약 10배까지 늘었다”면서 “한류의 인기도 있지만, 진로가 지난 40년 간 현지화 된 영업망을 기반으로 2020년부터 참이슬 도입 확대에 총력을 기울인 효과도 컸다”고 말했다.

일본 식품업계들도 한식 가정간편식(HMR)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생활용품 브랜드 무인양품은 한국식 냉동 김밥을 3년 전 출시했고, 현재는 순두부찌개ㆍ육개장ㆍ삼계탕을 간편식 형태로 판매 중이다. 편의점 브랜드 로손도 순두부찌개ㆍ김치찌개 등의 간편식을 내놓았다. 제품에 적힌 음식 이름도 한국어 발음 그대로다. 우동ㆍ돈가스와 같은 일본 음식이 이미 한국인들의 일상 메뉴로 자리 잡았듯, 한국의 음식 문화가 일본인의 생활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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