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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에 맞짱 뜨고 '졌잘싸'…부통령의 딸, 이제 대통령 꿈꾸다 [뉴스원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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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 체니. 지난 16일 경선 패배 직후 승복연설을 하고 있습니다. AP=연합뉴스

리즈 체니. 지난 16일 경선 패배 직후 승복연설을 하고 있습니다. AP=연합뉴스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체니’라는 성(姓)을 가진 정치인을 이런 맥락에서 다루게 될 줄은 말이죠. 뉴욕타임스(NYT)도, 워싱턴포스트(WP)도 몰랐을 겁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실질적 2인자였던 딕 체니의 딸, 리즈 체니 얘기입니다. 1966년생 이 여성 정치인이 최근 미국 매체의 헤드라인을 지배했습니다. 이념 스펙트럼을 넘어, 좌로는 뉴욕타임스(NYT)부터 우로는 폭스뉴스까지, 체니의 행보에 주목했죠. 그가 16일(현지시간) 와이오밍주(州) 공화당 경선에서 패배하면서입니다. 이전 경선에선 73% 득표율의 압도적 승리로 상원에 가뿐히 진출했던 체니는 이번엔 28.9%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사실, 그의 패배는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그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표를 던진 단 10명의 공화당 소속 의원이었기 때문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그러나 체니는 졌지만 이겼습니다. 예비선거에선 패배했지만 보다 큰 존재감을 얻어냈죠. 공화당 진성 당원들에겐 미운털이 더욱 단단히 박혔지만, 이제 그는 2024년 대통령 선거 후보 하마평에도 이름을 올리게 됐습니다. ‘부통령의 딸’이라는 정치 금수저로 아버지의 후광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정치를 확실히 펼치게 된 것이죠. NYT는 이미 지난주 “리즈 체니는 질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정치를 그만둘 준비는 전혀 하지 않고 있다”는 칼럼을 실었죠.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18일 “체니 왕국(the Cheney Empire)이 잠시 동안은 사라지겠지만 2024년 대선 후보로서의 리즈 체니를 볼 가능성이 커졌다”고 전했습니다. 일보후퇴 백보 진전을 이룬 셈이네요.

그가 경선에서 패배한 뒤 한 연설 중 하이라이트를 그대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승리로 이르는) 길은 명확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트럼프 대통령의 2020년 대선 결과에 대한 거짓말에 동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저는 우리 민주주의 시스템을 갉아먹기 위해 그가 계속 하고 있는 일들에 힘을 보태는 셈이니까요. 그건 우리의 중요한 기본을 공격하는 행위입니다. 그 길은 제가 택할 수도, 택하지도 않을 길입니다. 제가 의원직을 잃은 것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키겠다고 맹세한 원칙이고, 그런 제 의무를 지키는 것에 대한 정치적 후과를 저는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우리 국가는 선거 결과를 명예롭게 받아들이는 후보들의 선의로 지탱이 됩니다. 그리고 오늘밤, 해리엇 해그먼 후보가 가장 많은 표를 이 경선에서 가져갔습니다. 그가 이겼습니다. 이미 전화를 걸어 승복의 뜻을 전했습니다. 이렇게 이 경선은 끝나지만, 여러분, 이건 진짜 우리가 해야할 일의 시작입니다.”  

체니의 승복 연설 후 그를 포옹하는 지지자들. 로이터=연합뉴스

체니의 승복 연설 후 그를 포옹하는 지지자들. 로이터=연합뉴스

체니가 말한 ‘진짜 해야할 일’이 2024년 대선을 의미한다는 것엔 이론에 여지가 없습니다. 그 역시 경선 패배 다음날인 17일 NBC의 ‘투데이 쇼’에 출연해 대선 출마에 대한 질문을 받고 “생각 중(thinking about)”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실제로 출마해서 승리한다면 미합중국 역사상 최초 여성 대통령이 되는 셈이겠죠. 힐러리 클린턴도 이루지 못한 꿈입니다.

그러나 앞길은 가시밭길입니다. 제아무리 리즈 체니라고 해도,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하긴 어려운 노릇입니다. 트럼프에는 반대하지만 그는 미국 민주당이 옹호하는 성소수자간 결혼 등엔 절대적으로 반대하는 뼛속까지 보수입니다. 그런 그가 공화당을 버리고 민주당행을 택할 확률은 0%에 가깝습니다. 무소속이란 선택지도 있긴 합니다만, 미국의 뿌리 깊은 양당제 정치 특성 상, 무소속 후보 당선 가능성 역시 0%입니다. 체니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승복연설을 하는 체니 뒤로 성조기가 나부낍니다. 미국은 어디로 가는 걸까요. AFP=연합뉴스

승복연설을 하는 체니 뒤로 성조기가 나부낍니다. 미국은 어디로 가는 걸까요. AFP=연합뉴스

외연 확장엔 성공했지만 집토끼와 이별한 체니가 대통령 선거를 바라보기 위해선 공화당 내에서의 입지가 더욱 중요하죠. 트럼프의 정치적 영향력은 여전합니다. 그의 탄핵에 찬성표를 던진 10명의 공화당 소속 의원 중에선 단 2명만이 의회에 남았죠. 체니를 포함한 4명은 경선에서 패배했고 4명은 NYT에 따르면 트럼프 극렬 지지자들에게 악플과 협박 등 공격을 받다가 은퇴했다고 합니다. NYT는 리즈 체니의 승복 연설을 두고 “(에이브러햄) 링컨을 떠올리게 하는 명연설”이라고 칭찬했지만, 적진의 응원을 받는 체니의 마음은 외려 더 무거울 겁니다. 그가 든 성배가 독배일지 아닐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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