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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망가져도 방법 없다" 의사 대신 온라인서 '미프진' 찾는 여고생 [밀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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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몸 망가져도 미프진 사용해보려고요. 진짜 방법이 없는 것 같아서...” 
18세 여성이라고 밝힌 A씨가 지난 7일 ‘피임 실패’ 고민을 공유하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 올린 메시지입니다. ‘먹는 낙태약’으로 알려진 미프진(Mifegyne)은 아직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지 못한 불법 의약품입니다. 70여명이 모인 이 채팅방에서 익명의 참여자들은 A씨에게 “부모님에게 말하고 (임신중절) 수술을 받아라” 등 조언을 했습니다.

밀실 <제96화> #불법 임신중절약 찾는 10대

중앙일보 밀실팀은 10대 청소년의 임신과 출산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계획하지 않은 임신을 후회하며 임신중단을 고민하는 10대들의 현실과 마주했습니다. 제도적 사각지대에 속에서 고민조차 털어놓을 곳 없는 이들의 현주소와 우리 사회의 과제를 짚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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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청소년 성관계·임신 줄었다?…통계의 함정

지난 4월 트위터에 올라온 글. 트위터 캡처

지난 4월 트위터에 올라온 글. 트위터 캡처

지난 16일 밀실팀이 온라인에서 발견한 불법 미프진 판매글. 10대를 겨냥해 ″임신중절수술이 두렵고 낙태비용이 부담되시는 분들을 위해 이 글을 올립니다″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온라인 캡처

지난 16일 밀실팀이 온라인에서 발견한 불법 미프진 판매글. 10대를 겨냥해 ″임신중절수술이 두렵고 낙태비용이 부담되시는 분들을 위해 이 글을 올립니다″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온라인 캡처

통계청에 따르면 19세 미만 산모는 매년 꾸준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2016년 1922명에 달했지만 2020년엔 918명이었습니다. 피임 교육의 활성화나 청소년 성인식의 급격한 개선 때문일까요. 전문가의 진단은 달랐습니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실제 10대 임신 자체가 감소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가임기 청소년 인구가 감소한 것도 이유 중 하나이겠지만 사후피임약 처방 건수 증가, 불법 임신중절약 유통 증가 등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는 “최근 임신중절 수술을 받고자 병원을 찾는 10대는 줄었지만, 미프진 복용 후 불완전유산 등으로 오는 사례가 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임신중절약을 불법 판매하다 적발되면 5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집니다.

그러나 불법 임신중절약 거래 적발 건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습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관세청과 식약처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적발된 임신중절약 온라인 판매 건수는 2018년 2175건, 2019년 2368건이었습니다.

임신한 10대 청소년 유혹하는 검은 손   

판매와 구매가 불법이다 보니 임신중절약을 구입하는 10대 청소년에 대한 공식 통계는 없습니다. 다만, SNS 등엔 구매를 원하는 10대 청소년들의 문의가 꾸준히 올라오고 있습니다. SNS 등을 통한 개인 간 거래가 활발했고 10대들을 겨냥한 불법 광고도 버젓이 걸려있습니다.

지난 8~11일까지 밀실팀이 접촉한 다수의 개인 판매자들은 “정품 인증 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10만원대 중반~30만원대 후반의 가격을 제시했고, 만나서 직거래하자거나 선입금하면 택배로 보내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지난 11일 트위터로 접촉한 한 판매자는 “미성년자도 복용 가능한가”라고 묻자 “나이와 관련 없는 약이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중절 수술 경험이 없거나 자궁기형 등의 지병 없으면 부작용은 1% 미만이다”고 답했습니다.

자구책으로 해외 사이트를 이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네덜란드 비영리 시민단체 ‘위민온웹(women on web)’은 70~90유로(9만~약 12만원)의 기부금을 받고 임신중절이 불법인 국가의 여성에게 미프진을 보내주고 있습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이 사이트에 대한 국내 접속을 차단했지만 간단한 방법으로 접속 경로를 우회할 수 있어 실효성이 없는 실정입니다.

부작용 무릅쓰는 10대들…왜?

임신중절약은 심각한 부작용을 줄 수 있습니다. 이정아 약사는 “미프진을 먹었다고 100% 유산이 되는 것은 아니다. 복통과 출혈은 매우 흔한 부작용”이라며 “미 FDA는 임신 10주 차 이내일 때만 복용을 허용하고 있는데, 이 기간을 넘길 경우 자궁 수축 유도 과정에서 자궁 파열의 위험성이 증가해 대량 출혈 발생 및 자궁 적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지난 5월 트위터에 올라온 글. 트위터 캡처.

지난 5월 트위터에 올라온 글. 트위터 캡처.

지난해10월 트위터에 올라온 글. 트위터 캡처

지난해10월 트위터에 올라온 글. 트위터 캡처

“비용이 부담된다”“부모 동의를 얻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진료 이력이 남는 게 불안하다”는 등의 이유로 10대들 부작용을 감수하며 불법 임신중절약을 찾고 있었습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최근 5년(2016~2021년)간 19~44세 여성 중 임신중단 경험자 602명을 상대로 벌인 조사에서, 수술적 방법을 택한 477명 중엔 수술비용으로 ‘80~100만원’(21.2%)을 지불했다고 밝힌 사람이 가장 많았습니다. 임신중절약을 불법으로 구하는데 10만~40만원이 드는 것에 비해 부담되는 금액입니다.

형법상 낙태죄 조항은 2019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2021년 1월 1일자로 효력을 상실했습니다. 그러나 임신중단을 어떤 범위에서 어떤 방식으로 허용할지에 대한 보완 입법이 아직 이뤄지지 않아 임신중단에 대한 낙인과 차별이 계속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임신중절약을 찾는 10대들은 병원 기록이 남을 것을 두려워한다. 신분을 밝히지 않고도 임신중절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신중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여성계에선 “임신중단이 비범죄화된 만큼 보편적 의료 서비스로 제공돼야 한다”(김제이 한국여성민우회 팀장)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김 팀장은 “임신을 중단하고 싶어도 비용 부담, 병원의 거절 등 장벽이 많은 청소년들을 위한 지원책도 필요하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한편에선 “낙태죄 폐지 후 규범 형성을 위한 사회적 논의는 아직 초기 단계인 만큼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된 청소년들을 보호하는 장치가 우선적으로 마련돼야 한다”(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의견도 나옵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10대 임신 고민, 털어놓을 곳 없다

2021년 질병관리청과 교육부가 전국 중1~고3 재학생 5만4848명을 상대로 한 청소년건강행태조사 통계에 따르면 성관계 경험률은 5.4%였고, 이들이 첫 성관계를 맺은 평균 연령은 14.1세였습니다. 그러나 성관계 경험자의 피임 실천율은 남학생 64.6%, 여학생 67%에 불과했습니다. 10년 전인 2012년(남학생 43.7%, 여학생 40.6)에 비하면 크게 향상됐지만 여전히 청소년들이 원치 않는 임신을 막기엔 부족해 보입니다.

하지만, 성관계를 한 뒤 임신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는 10대들이 고민과 대처방안을 상담할 창구는 마땅치 않았습니다. 이현숙 아동청소년성폭력상담소 탁틴내일 대표는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성 관련 상담센터는 많지만, 청소년이 임신 관련 고민을 털어놓을 곳은 많지 않다”며 “10대가 계획하지 않은 임신을 했을 경우, 임신주수를 파악하고 출산 여부를 결정하는 신속한 대처가 필요하지만 정보 부족으로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 대표는 “현재로선 청소년사이버상담센터인 1388 핫라인이나 미혼모 단체 등의 도움을 받는 것도 방법”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성교육 방식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도 여전했습니다. 함경진 시립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 부장은 “매년 1000명 안팎의 10대 산모가 생기는 상황에서 ‘10대 성관계와 임신은 절대 안 된다’는 식의 접근은 교육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않다”며 “계획하지 않은 임신 자체를 막거나, 임신을 했을 때의 대처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피임 교육이 청소년들에게 성적 행위를 부추긴다’는 민원을 제기하는 학부모들의 인식도 여전히 문제”라며 “성교육 뿐 아니라 사회 인식, 문화, 법·제도가 맞물려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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