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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男 역차별? 2천년후에나 가능" 발끈…美여성학자가 내민 통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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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난해 12월, 서울 여의도에서 '여성 혐오 반대'와 '남성 혐오 반대'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사진에 잡힌 현장은 신남성연대가 주최한 '페미니즘 규탄' 집회. 뉴스1

지난해 12월, 서울 여의도에서 '여성 혐오 반대'와 '남성 혐오 반대'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사진에 잡힌 현장은 신남성연대가 주최한 '페미니즘 규탄' 집회. 뉴스1

“세상에, 남성이 역차별을 당한다고요? 2000년 후라면 모를까, 지금?”  

유엔에 젠더 경제 정책 및 통계 자문을 하는 저명한 페미니스트이자 국제학자, 조니 시거 박사는 이렇게 발끈했다. 최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다. 한국의 일부 자칭 “안티 페미” 남성을 소개하는 뉴욕타임스(NYT) 기사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지금 내 표정을 보여줄 수 있다면 좋겠다”며 이같이 답했다. 시거 박사는 현재 미국 보스턴 벤틀리대학교에서 국제문제를 강의하며, 젠더 이슈에 입각한 다양한 저술 활동을 해왔다. 그중 하나가 최근 한국어로도 번역된 『지금, 여성』(청아출판사)다. 그는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는 이들은 ‘페미니스트들은 항상 화를 낸다’고 오해한다”며 “솔직히, 화가 나는 일 천지인 게 맞는 것이 지난 10년간 많은 나라에서 여성이 마주한 현실이 나빠졌기 때문”이라고도 썼다.

조니 시거 박사. 본인 제공

조니 시거 박사. 본인 제공

이 책의 주인공은 글이 아니라 지도와 그래픽이다. 세계 각국의 젠더 관련 숫자와 통계를 모아 성 평등에 관한 현실을 담담히 그러나 선명히 보여준다. 각국 및 지역의 유방암 발생 차이부터 성별 임금 격차, 경제력과 결혼의 상관관계 등, 피부에 와 닿는 주제를 추려낸 저자의 안목이 돋보인다. 성 평등뿐 아니라 빈곤과 온라인 괴롭힘까지, 생각할 거리를 다양하게 던진다. 워싱턴포스트(WP)는 “혁신적인 지도책으로, 남녀 불문 모두의 필독서”라고, 전설적 페미니스트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눈에 보이지 않던 여성의 현실을 통계와 도표로 생생하게 표현했다”고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이 책을 발굴해 직접 번역, 소개한 지리학자 김이재 경인교육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갈등을 악화시키는 소모적인 말싸움을 벗어나 최신 통계에 기반한 지도를 통해 세계 각국 여성이 처한 현실을 직시할 수 있다”며 “『말을 듣지 않는 남자, 지도를 읽지 못하는 여자』라는 책도 있지만, 여성이야말로 지도를 더 잘 읽어야 생존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다음은 시거 교수와의 일문일답 요지.

여성가족부 폐지부터 역차별 논란 등 한국은 젠더 관련 이슈로 뜨겁다.
“역차별을 당한다는 생각은 우스꽝스러운 두려움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일부 남성들은 어서 정신을 차릴 필요가 있다. 평등이라는 개념을 억압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 자체가, 남성이 지금까지 누려왔던 특권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특권을 갖기 위해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지난 수백 년 동안 남성이 누려온 특권을 이해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역차별이라니, 2~3000년 정도 후에라면 모를까. 게다가 성 평등은 남성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 점을 꼭 이해해주길 바란다. 수많은 연구 결과와, 일부 선진국 사례가 실제로 입증하는 팩트다.”
조니 시거 박사의 책 일부. 유럽에서조차 성별 임금 격차는 여전히 심각하다. 사진 청아출판사

조니 시거 박사의 책 일부. 유럽에서조차 성별 임금 격차는 여전히 심각하다. 사진 청아출판사

책의 통계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 등 주요 7개국(G7) 소속 선진국들조차 젠더 이슈에서 인상적인 진전이 없는데.  
“진전은 한 걸음씩 천천히 이루어가는 것임을 우리는 배웠다. 오늘날은 아주 작아 보이는 것을 쟁취했다고 해도, 앞으로 계속 커져나갈 것이다. 어디든 평등을 향한 길은 직선이 아닌 곡선이다.”  
미인대회 관련 논란에 대해 일부에선 “그럼 미남대회도 만들어라”는 식의 반응도 나오는데.
“그런 건 하향 평준화다. 남성이건 여성이건 어떤 이를 그가 타고난 외모로 평가하는 것은 잘못이니까. 남성 역시 ‘남자 몸은 이래야 한다’는 기준으로 스트레스를 받지만 여성이 겪는 부담과 압박에 비할 바가 못 되는 건 상식이고.”
책을 제작하면서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 지도와 통계를 꼽아본다면.  
“여성이 매일 폭력과 살해 위협에 노출된 것을 나타내는 통계는 무서울 정도다.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여성은 경제적 정치적 가정적 사회적으로 스스로를 제약하게 된다. 또한 남녀간 임금 격차 역시 고질적인 문제다. 비교적 진전을 이룬 국가들도 있지만 생각외로 그렇지 않은 국가들이 아직도 대다수다. 동일 노동 비동일 임금은 전 세계 여성을 모든 분야에서 압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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