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나도 예쁜게 좋다”는 英페미니스트, 韓젠더갈등 물었더니···

중앙일보

입력

영국의 MZ세대 페미니스트, 플로렌스 기븐. [출판사 '용감한 까치' 제공]

영국의 MZ세대 페미니스트, 플로렌스 기븐. [출판사 '용감한 까치' 제공]

한국에 『82년생 김지영』이 있다면 영국엔 『내가 왜 예뻐야 되냐고요』가 있다. 1998년생인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작가인 플로렌스 기븐이 지은 책으로 최근 번역본이 출판됐다. 흔한 페미니즘 책과는 다르다. 젠더 불평등 문제의 책임을 어느 한 성(性)에 돌리며 또 다른 혐오를 조장하지 않는다. 그는 책에서 “여성은 왜 머리가 길어야 할까”부터 “여성의 겨드랑이털은 왜 금기시되는 걸까” 등의 질문을 던진다. 패션지 코스모폴리탄이 2019년 ‘올해의 인플루언서’로 선정했던 기븐은 중앙일보와 최근 이메일 인터뷰에서 “나도 예뻐지는 게 좋다”면서도 “하지만 남에게 예쁨을 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예쁘고 싶다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여성스러운 페미니스트라는 건 성립 가능한가.  
“물론이다. 나도 거울을 볼 때 내 모습이 예쁘면 기분이 좋다. 주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것도 참 기쁜 일이다. 하지만 유독 여성에게만 외모가 중요하다는 건 이상하지 않은가. 한 여성이 ‘예쁘다’는 말을 듣는 게 남자들이 ‘성공했다’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는 건 문제가 있다. 외모를 꾸미는 건 기분 좋은 일이지만 그 행위로 인해 사회의 평가를 받게 되고, 그래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온통 정신이 쏠려야 한다면 잘못된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스스로를 몰아가고 있는 건 바로 여성이기도 하다.”  
한국에선 쇼트커트를 한 여성은 페미니스트라는 의식이 있는데.  
“(즉답을 피하며) 여성스러움을 포기해야만 여자로서의 권리를 되찾을 수 있진 않다. 머리카락 길이는 상관이 없다. 우리 (여성은) 스스로의 외모에 집착하도록 스스로를 세뇌해왔다. 그 결과 스스로를 무시하고, 상처 주고 벌을 준다. 외모에 신경을 쓰고 예뻐 보이는 것과, 일정한 방식으로 예뻐져야만 한다는 집착은 다르다.”  
여혐과 남혐은 한국 사회를 끊임없이 갈라놓는 이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서울에서의 한 집회. 뉴스1

여혐과 남혐은 한국 사회를 끊임없이 갈라놓는 이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서울에서의 한 집회. 뉴스1

책에서 성폭행당했던 경험도 털어놓았는데.  
“여성에게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싶었다. 스스로 변화를 일궈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모든 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게 지긋지긋했다. 불만을 갖고 뭔가 잘못됐다고 느끼는 게 나만이 아니라 또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페미니즘에 눈뜨게 된 계기는.  
“18세 무렵으로 기억하는데 클럽에서 놀고 있는데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춤을 추는 여성을 남성이 더듬는 방식이 정말 메스꺼웠다. 그 분노를 생산적인 방식으로 표출하고 싶었고, 그 메시지를 일러스트로 그리기 시작했다. 전 세계적으로 일러스트에 대한 반향이 일었고, 나도 용기를 얻고 활동 영역을 넓혔다. 이 책도 그 일환이다.”  

기븐의 메시지가 울림이 있는 이유는 남 탓, 남자 탓만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출판사인 용감한 까치의 표현을 빌리자면 “여성의 권리를 남녀 대립의 프레임에만 가두려 드는 우리 사회에 보기 좋게 사이다를 날려주는 Z세대 페미니즘”이자 “여성을 비롯한 모든 인간이 똑같이 존중받을 권리를 갖는다는 주장을 재미있게 펼친다”는 점이 주목을 받을만하다.

그렇다면 한국의 뾰족한 젠더 갈등에 대한 기븐의 생각은 어떨까. 기븐에게 이메일 인터뷰 질문지를 보내던 날은 마침 뉴욕타임스(NYT)에서 서울발로 일부 젊은 남성의 안티 페미니즘이 정치세력화했다는 기사를 냈던 날이다. 그와 함께 남혐 및 여혐에 관련된 영문 기사를 추려 보냈다. 기븐은 그러나 이에 대해 “내가 함부로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다”며 답을 피했다. 그만큼 한국의 젠더 갈등은 어려운 문제라는 뜻으로 읽혔다.

그의 책의 일부로 답을 대신한다.

“‘여성 혐오’는 남자들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린 질병이다. 여자이기 때문에, 그리고 남자이기 때문에 당해온 가스라이팅의 총체적 결과다. 우리가 저격해야 할 대상은 남자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