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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10명씩 여성 혐오 살해…7세 소녀까지 희생되자 멕시코 시위 불길

중앙일보

입력

실종 후 시신으로 돌아온 7세 파티마. 멕시코에선 여성 대상 범죄가 고질적 문제다. [AP=연합뉴스]

실종 후 시신으로 돌아온 7세 파티마. 멕시코에선 여성 대상 범죄가 고질적 문제다. [AP=연합뉴스]

멕시코에서 지난 11일(현지시간) 7세 소녀가 숨진 채 발견되면서 여성 대상 범죄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부에 대한 분노가 확산하고 있다. 앞서 지난 9일 40대 동거남에게 살해된 25세 여성 잉그리드 에스카미야의 시신 사진이 공개된 직후라 파장이 더욱 커지는 모양새다.

7세 소녀의 이름은 파티마 알드리게트. 수도 멕시코시티에 사는 파티마는 학교 수업이 끝난 뒤 실종됐다. 엄마가 데리러 갔지만 파티마를 찾을 수 없어 실종신고를 했고, 경찰이 수색 작전을 폈지만 헛수고였다. 파티마는 15일 동네 골목에서 검은색 쓰레기봉투에 담긴 시신으로 발견됐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신원이 확인됐을 정도로 시신이 심하게 훼손된 상태였다고 로이터통신 등은 전했다. 파티마의 가족들은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우리 말을 무시했기 때문에 파티마를 제때 찾을 수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파티마의 가족이 17일(현지시간) 시위에 참여하면서 오열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파티마의 가족이 17일(현지시간) 시위에 참여하면서 오열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앞서 살해된 에스카미야 사건을 두고도 이미 멕시코 여성들은 정부를 비판하는 시위를 벌여왔다. 밸런타인데이였던 지난 14일에도 대대적 시위가 진행됐다.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이 정례 기자회견을 여는 중이었다.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위해 일부러 이 시점을 골랐다고 한다. 14일 시위에 참여한 릴리아 게레로는 “나도 내 딸을 2017년 (살인으로) 잃었다”며 “정부의 무능에 분노한다”고 로이터에 전했다.

시위대가 17일 파티마를 추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시위대가 17일 파티마를 추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멕시코에서 여성 살해는 고질적 문제다. 멕시코 정부의 공식 집계에 따르면 하루 평균 10명의 여성이 살해된다고 한다. 지난해에만 3800여명의 여성이 살해됐는데 그 중 1000여명이 여성 혐오 살해인 페미사이드(femicide) 케이스였다. 여아 대상 범죄도 크게 늘었다. 지난 5년에 걸쳐 여아 살해 사건은 두 배 가까이 늘었다고 멕시코 현지 언론은 보도했다.

그러나 용의자 검거율과 기소율은 낮으며, 이는 당국이 단속 노력을 게을리하기 때문이라는 게 시위대의 주장이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여성 혐오 범죄에 대한 시민들의 비판을 자신에 대한 정치적 비난으로 받아들이는 발언을 수차례 했다. 그는 “언론이 조작한 게 많다”거나 “내 정책에 대한 관심을 돌리기 위한 의도가 숨어있는 게 아니냐”고 말하곤 했다. 지난주에도 여성 대상 범죄 해결을 위한 정부의 대책을 묻는 기자들에게 “처벌만이 해법은 아니다”라고 말해 공분을 샀다. 비난 여론이 일자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더 이상은 여성 살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분노를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로페즈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 [EPA=연합뉴스]

로페즈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 [EPA=연합뉴스]

유엔도 비판에 가세했다. 여성 이슈를 다루는 유엔 위민(UN Women)은 15일 “여성과 소녀들에 대한 폭력을 멈출 수 있는 전반적인 대책을 요구한다”고 트윗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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