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대통령의 한국계 최측근 여성외교관, '페미 외교'를 외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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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핀 오 세계평등포럼 사무총장이 14일 서울 삼성동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 호텔에서 중앙일보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델핀 오 세계평등포럼 사무총장이 14일 서울 삼성동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 호텔에서 중앙일보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신뢰하는 최측근 중엔 ‘오씨 남매’가 있다. 한국계 프랑스 남매인 델핀 오(36ㆍ사진) 유엔 세대평등포럼 사무총장과 세드리크 오(39) 디지털부 장관이다. 여동생 델핀은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한 라 레퓌블리크 앙 마르슈 소속으로 파리 16구에서 하원의원으로 2017년 당선해 약 2년의 임기를 마쳤다. 현재는 마크롱 대통령의 주요 외교 기조인 성평등 및 세대 간 평등을 위해 활약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젊은 세대 육성을 위해 출범한 오바마 재단이 선정한 유럽의 젊은 리더이기도 하다. 원래 그는 이란 등 국제관계 전문가로, 북한도 두 차례 방문했다.

그런 그가 14일 모던 한복 차림으로 서울을 찾았다.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CICIㆍ이사장 최정화)이 매년 한국의 이미지를 외국에 알린 인물을 선발해 수여하는 한국이미지상을 받기 위해서다. 한국과 프랑스의 가교가 되어줬다는 의미에서 ‘한국 이미지 징검다리상’으로 선정됐다.

최정화 CICI 이사장과 델핀 오, 아버지 오영석 전 KAIST 초빙교수. 전수진 기자

최정화 CICI 이사장과 델핀 오, 아버지 오영석 전 KAIST 초빙교수. 전수진 기자

오 사무총장은 이날 샛노란 원피스에 반짝이는 검은색 저고리를 받쳐 입고, 강렬한 레오타드 패턴 스타킹을 매치한 차림으로 등장했다. “한복에서 영감을 받은 차림을 평소 프랑스에서도 즐겨 입는다”고 덧붙이면서다. 오영석 전 KAIST 초빙교수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의 뿌리를 항상 마음에 둔다고 했다.

어린시절 한복 차림으로 포즈를 취한 델핀 오, 세드리크 오 남매. [델핀 오 제공]

어린시절 한복 차림으로 포즈를 취한 델핀 오, 세드리크 오 남매. [델핀 오 제공]

동시에 그가 쓰고 온 마스크엔 ‘힘(Power)’라는 영어 문구가 선명했다. 여성과 젊은 세대가 공평하게 권력을 나누는 세상을 위해 힘쓰겠다는 의지가 읽히는 선택이다. 그는 오는 6월 파리에서 개최 예정인 여성인권 국제정상회의 역시 책임지고 있다. 그가 이날 인터뷰에서 수차례 강조한 것은 ‘페미니스트 외교’였다. 마크롱 대통령의 전폭적 지지를 얻으며 프랑스가 최근 주요 외교 기조로 삼은 모토다.

CICI 행사장에서 만난 그에게 먼저 물었다. 여성이 참정권을 1946년 획득했고 『제2의 성(性)』을 쓴 시몬느 드 보부아르(1908~1986)의 나라인 프랑스에도 성 평등이 아직 미완성 과제인지. 오 사무총장의 답은 단호한 “예스”였다.

한국에서도 이젠 남성 역차별 주장까지 나오는 상황인데.  
안타깝지만 한국뿐 아니라 서구 전체에서 그런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내가 하원의원으로 일하던 시절, 사람들은 항상 (남성인) 내 보좌관에게 ‘의원님’하고 말을 걸더라. 젊은 여성인 내가 의원일 리가 없다고 은연중에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의원은 저인데요’라고 말하면 의원 배지 등 증거자료를 요구하더라. 여성 차별의 역사는 수천년으로 그 뿌리가 깊다. 우리는 남성을 적으로 돌리려는 게 아니라, 이 세상의 훌륭한 남성과 함께 침묵의 성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행동을 하자는 것이다. 팬데믹에서 남녀평등은 퇴보했다. 여성이 같은 일을 해도 받는 급여가 적기에 결국 육아를 위해 경력이 단절되는 것은 여성이기 때문이다. 일을 그만두지 않더라도 팬데믹에서 육아와 일을 함께 해야 하는 부담은 여성에게 가중됐고, 가정 폭력도 심화했다. 남녀평등의 퇴보를 두고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로 ‘그림자 팬데믹(shadow pandemic)’이란 말도 나오고 있다.
‘페미니스트 외교(feminist diplomacy)’란 용어는 생소한데.  
2014년 스웨덴에서 제일 먼저 주창했고 이후 캐나다ㆍ프랑스ㆍ멕시코에서 도입한 개념이다. 성 평등을 중시하는 기조를 특정 분야뿐 아니라 모든 분야의 정책 수립 및 실행에 있어서 필수화하는 것이다. 일례로 주한 프랑스대사관은 이 ‘페미니스트 외교’를 위해 한국 외교부와 어떻게 협의하고 어떤 행사를 통해 성 평등 의식을 고취할지 로드맵을 제출해야 한다.

오 사무총장의 오빠 세드리크 오 장관은 이전 한 언론 인터뷰에서 “델핀이 항상 더 성적을 잘 받아와서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면 긴장하곤 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오 사무총장은 이에 대해 웃으며 “부모님은 아들과 딸을 전혀 차별하지 않으셨고, 항상 성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며 “특히 전쟁 와중에 이혼 및 사별 등으로 홀로 되신 친가와 외가 할머니들의 강인함을 배우며 자랐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여성은 여전히 남성보다 몇 배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 보여야 같은 지위를 획득할 수 있다”며 “그렇기에 부모님들은 아들보단 딸에게 더 자신감을 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외교 아닌 정계에 머물며 입법 등을 통해 가시적 성과를 내고 싶진 않았을까. 단임으로만 하원 의원직을 수행한 데 대해 오 사무총장은 “정계에 있는 특권을 너무 오래 누리게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내가 아닌 남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게 부모님의 가르침이셨고, 그를 지키기 위해 단임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델핀 오가 참석한 오바마 재단 행사. [델핀 오 트위터]

델핀 오가 참석한 오바마 재단 행사. [델핀 오 트위터]

사실 그의 전문분야는 중동 핵 문제다. 프랑스 고등사범학교 졸업 후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을 졸업했다. 이후 이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다 현지에 ‘페르시안 레터스’라는 매체를 설립한 적도 있다. 최근 이란 정부가 한국 선박을 나포한 것과 관련해 그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이란 정책은 실패했고, 조 바이든 정부가 새로 들어서면 긍정적 변화가 생길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두 번의 방북 경험에 대해서 그는 신중히 말을 고르다 이렇게 답했다. “같은 민족이고 같은 언어를 쓰며 같은 음식을 공유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니 슬프고도 비현실적이었다.”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에도 한ㆍ프랑스 의원 교류 차원에서 참석했다. 당시 참석했던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에 대해 오 사무총장은 “개인적으론 잘 모르지만 여성이라고 해서 소프트할 것이라고 넘겨짚는 것은 오산일 것”이라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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