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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식량 안보 초비상]곡물 수출 소수 국가 집중, 한 곳 공급 차질 땐 세계시장 흔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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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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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흑해 해상에서 우크라이나산 콩 2만6000t을 실은 선박이 우크라이나 남부 오데사항을 출발해 레바논으로 향하는 모습을 취재기자가 지켜보고 있다. 흑해 항로를 통한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은 유엔과 튀르키예 등의 중재로 전쟁 5개월여 만에 이날 처음 재개됐다. [AP=연합뉴스]

지난 1일 흑해 해상에서 우크라이나산 콩 2만6000t을 실은 선박이 우크라이나 남부 오데사항을 출발해 레바논으로 향하는 모습을 취재기자가 지켜보고 있다. 흑해 항로를 통한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은 유엔과 튀르키예 등의 중재로 전쟁 5개월여 만에 이날 처음 재개됐다. [AP=연합뉴스]

세계 식량 가격 상승과 공급 불안 현상이 심상찮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최근 발표한 세계식량가격지수도 지난 3월 최고치인 159.7 포인트를 기록했다. 이후 소폭 하락하긴 했지만 여전히 2008년 글로벌 식량 위기 때보다 높은 수준이다. 지난 6월 세계식량가격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23.8% 증가했고 특히 곡물 가격은 같은 기간 34.0%나 올랐다.

국제 식량 가격이 크게 오른 주된 원인으론 우선 세계적인 기후변화로 인한 공급 부족을 꼽을 수 있다. 미국·유럽·호주·아르헨티나·중국 등 주요 식량 생산국 전역에서 대규모 산불과 폭염·홍수 등 극심한 자연재해가 잇따르면서 식량 생산이 줄어들었다. 반면 중국·인도 등 신흥 경제국의 경제 발전과 소득 증대로 식량 수요는 물론 축산물 생산을 위한 사료용 곡물 수요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 또 코로나 팬데믹의 지속으로 노동력을 많이 필요로 하는 식량 수확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원활한 운송과 물류 유통에도 차질이 생겼다.

여기에 밀·옥수수 등 주요 식량 작물 수출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도 식량 가격 상승을 부채질했다. 더욱이 식량 가격이 급등하면서 식량 자원 보호주의도 개도국을 중심으로 널리 확산되고 있다. 올해 들어서도 34개국이 자국민을 위한 식량 확보와 물가 안정을 명분으로 57개 식량 관련 품목에 수출 금지와 수출 제한, 수출세 부과 등의 조치를 시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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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엔 석유 등 에너지와 비료 등 농자재 가격까지 상승하는 등 식량 생산을 위한 환경이 악화일로에 있어 국제 식량 가격은 당분간 고공 행진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여러 요인이 겹치는 가운데 글로벌 식량 부족 가능성이 커지면서 식량 가격 상승이 전반적인 물가 상승을 견인하는 ‘애그플레이션(agflation·agriculture+inflation)’ 현상에 대한 우려도 현실화되고 있다.

경제이론상 국제무역은 자유로운 시장을 통해 상품과 원자재의 공급이 원활히 이뤄질 것이란 기대를 전제로 한다. 하지만 세계적 기상이변과 함께 발생한 코로나 팬데믹 사태,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식량 자원 민족주의 현상 등은 이 같은 기대를 무너뜨리고 국제 식량 시장과 공급망을 크게 교란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식량(특히 곡물) 교역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수출이 일부 국가에 집중돼 있는 반면 수입은 많은 국가로 분산되는 ‘공급 과점적 시장’이란 점이다. 글로벌 식량 시장에서 공급 과점 현상은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과 2000년대 들어 유행처럼 번진 국가 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후 더욱 심화되고 있다. 국제적으로 농산물 무역이 자유화되면서 식량 생산에 비교 우위를 가진 국가들로 생산이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상위 5개 수출국의 4대 곡물 수출 점유율은 쌀 79%, 밀 63%, 옥수수 88%에 콩은 97%에 달했다. 이렇듯 세계 곡물 공급이 소수 수출국에 집중돼 있다 보니 일부 수출국의 공급 불안정이 곧바로 국제시장의 불안정성으로 직결되는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는 것이다.

중장기적으로도 글로벌 식량 공급 패러다임은 잉여 시대에서 식량 부족 시대로 전환되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현재 약 70억 명인 세계 인구는 2050년엔 95억 명으로 증가할 것이고, 이런 인구 증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세계 식량 생산도 70% 정도 늘어야 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전 세계의 식량 여건은 기후변화와 농경지 감소, 물 부족 등 여러 제약으로 인해 생산을 획기적으로 늘리기 어려운 형편이다. 특히 최근 미국·캐나다·호주·브라질·아르헨티나 등 주요 식량 수출국에서 기상이변이 잇따르면서 지구촌 차원의 식량 위기감이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글로벌 식량 위기 문제가 세계적인 화두로 떠오르면서 각국의 식량 안보 확보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식량은 공산품과 달리 국민의 생활과 생존에 필수적인 에너지와 영양을 공급하는 중요한 원천이다. 그런 만큼 국민에게 안정적으로 식량을 공급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정책 과제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식량 안보 확보는 국가이익과 생존 측면에서 매우 결정적이고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역사적으로도 식량 자급 능력이 충분하고 해외에서 효과적으로 식량을 조달할 능력이 있는 국가의 경우 식량 위기 때 적절한 대처가 가능했다. 반면 그렇지 못한 국가는 식량 위기에 봉착하면서 정치·경제·사회적으로 큰 혼란에 빠지곤 했다. 공산품은 공급이 부족하거나 가격이 급등할 때 소비를 잠시 미뤄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지만 식량은 국민의 생존과 직결되는 필수품으로 소비를 늦출 수 없는 특수성을 갖고 있다. 식량의 안정적 공급을 국가 안위와 직결되는 안보 문제로 간주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특히 한국은 세계 7위권의 식량 수입국이자 곡물 자급률이 20%에 불과한 만큼 더 늦기 전에 식량 안보 확보를 위한 체계적인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서울대 농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메릴랜드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위 위원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농업경제학회장과 서울대 그린바이오과학기술연구원장을 맡고 있다. 『농업경제학』(공저) 등 다수의 저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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