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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식량 안보 초비상]우크라 전쟁 이후 27개국 45건 식량·비료 수출 빗장 걸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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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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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오하이오의 한 농장에서 콤바인이 콩을 수확하고 있다. 미국은 글로벌 식량 위기를 맞아 스마트팜 활성화 대책을 내놨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오하이오의 한 농장에서 콤바인이 콩을 수확하고 있다. 미국은 글로벌 식량 위기를 맞아 스마트팜 활성화 대책을 내놨다. [로이터=연합뉴스]

전 세계가 식량 수급 위기에 봉착하면서 각 나라들도 자국의 식량 안보를 지키기 위한 총력전에 나섰다. 당장 식량 대외 의존도가 높고 수출입 교역이 활발한 국가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식량 공급량 확보는 물론 수입원 다각화와 자국 내 식량 생산량 증대 방안 등도 잇따라 강구하고 나섰다.

이에 맞서 주요 곡물 수출국도 식량 안보 사수를 위해 빗장을 걸어 잠그기 시작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에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여파로 곡물 대란 우려까지 제기되자 식량의 해외 유출을 제한하는 등 식량보호주의를 강화하며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정책을 속속 도입하고 있다. 글로벌 식량 수급을 둘러싼 치열한 ‘곡물 외교’ 경쟁에 지구촌의 이목이 집중되는 모습이다.

세계 2위 밀 생산국인 인도는 식량 위기가 확산되자 지난달 중순 밀 수출을 제한하기로 결정했다. 구체적인 제한 물량은 밝히지 않았지만 인도가 밀 수출 규제를 통해 국내 밀 공급을 안정화하겠다고 밝히자 글로벌 곡물 시장도 크게 출렁였다. 이미 인도는 지난 5월 설탕의 연간 수출량도 1000만t 안팎으로 제한하기로 한 바 있다. 세계 2위 설탕 수출국이지만 글로벌 식량 위기에 따른 국내 충격파를 최소화하기 위해 국제 교역 대신 내수용 설탕 비축을 선택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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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핵심 식량 품목인 육류에 대한 수출 통제도 잇따르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지난 6월 국제 가금류 수급이 원활해질 때까지 닭고기 수출을 전면 금지하겠다고 선언했다. 닭고기는 말레이시아인이 가장 많이 소비하는 육류이자 주요 식량 수출 품목 중 하나다. 지난해 말레이시아는 닭고기 수출로만 1963만 달러의 무역 수익을 벌어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당장 국내 소비량을 확보하는 게 더 시급한 현안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번 조치로 비상이 걸린 국가는 싱가포르다. 전체 닭고기 수입량의 3분의 1을 이웃 국가인 말레이시아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에 따르면 올해 도입된 식량·비료의 수출 금지 및 제한 조치는 34개국에서 57건에 달한다. 이 중 27개국 45건(79%)이 지난 2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내려졌다. 밀 등 주요 곡물 외에도 식용유·육류·유제품 등 음식 재료가 되는 식료품이 다수 포함됐다. 이 같은 금지·제한 조치로 영향을 받게 된 식량과 비료가 전 세계 수출량의 17%를 차지할 정도다.

이번 식량 위기를 계기로 국제사회가 안정적인 식량 안보를 위해 중장기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종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글로벌 식량보호주의 확산은 당장의 식량 확보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장기적으론 오히려 국제 식량 물가를 상승시키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임시방편일 수밖에 없다”며 “식량 안보에 대한 문제의식이 고조된 지금이야말로 제2, 제3의 식량 위기에 대비한 글로벌 차원의 대책을 논의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31일 발표한 ‘글로벌 식량보호주의의 경제적 영향 및 향후 리스크 요인’ 보고서에 따르면 식량보호주의 정책을 도입하는 나라가 1%포인트 늘어날 때마다 국제 밀 가격은 2.2%포인트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식량 주권을 지키기 위해 먹거리 백년대계를 선제적으로 고민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카타르는 최근 전략적 식량 자급자족 프로젝트를 도입해 모든 식량을 자체 생산하겠다고 선언했다. 카타르는 2017년 사우디아라비아 등 이웃 국가들의 식량 봉쇄 조치로 극심한 식량난을 경험한 뒤 식량 안보의 중요성을 그 어느 나라보다 깊이 체득했다. 이후 농업과 식품 산업에 수조원을 투자했고, 그 결과 현재 우유·치즈 등 유제품을 100% 자급자족하고 있다. 이 같은 시스템을 다른 식량에도 확대 적용해 향후 식량 위기에 대비하겠다는 복안이다.

지난해 세계식량안보지수(GFSI) 조사 결과 카타르는 24위에 올라 걸프 국가 중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식량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었던 사우디아라비아(44위)보다도 높았다. 카타르 정부는 이번 글로벌 식량 위기를 계기 삼아 앞서 경험한 위기 극복 모델을 국가 식량 전반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생산 기지를 찾아 해외로 눈을 돌리는 국가들도 있다. 중국은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협력해 두바이 현지에서 사막 토양에서 작물을 재배하는 공동 연구에 나섰다. 잇단 기상이변과 고온 현상에 따른 지구촌 사막화 확산에 대비하려는 움직임이다. 미국도 자국 내 스마트팜 활성화에 앞장서는 한편 사우디아라비아에도 8200㎡ 규모의 스마트팜을 조성 중이다. 미국의 기술력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자본력을 더해 비료 없는 농작물 생산에 몰두하겠다는 취지다.

원활한 식량 수급을 위한 중견국 정상들의 곡물 외교전도 주목거리다. 최근 인도네시아의 줄타기 외교가 대표적이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지난 6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초청국 정상 자격으로 참석한 뒤 우크라이나 키이우와 러시아 모스크바를 잇따라 방문해 양국 정상과 조우했다. 휴전 촉구가 대외적 명분이었지만 실은 밀 수입선을 확보하려는 전략의 일환이었다. 밀이 주식인 인도네시아는 대부분의 밀을 우크라이나에서 들여오는데 전쟁 여파로 수입에 차질이 빚어지고 가격도 급등하자 국내 불만 여론이 커지는 상황이었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1세기 세계화 시대에 국내 농업 생산력 증대만으로는 식량 안보를 굳건히 유지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농산물 비축 여력 확대는 물론 급격한 물가 상승 시기에도 식량을 확보할 수 있는 자본력과 외교력 등이 골고루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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