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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류보다 나물ㆍ생선이 주류(북녘의 문화ㆍ예술: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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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화학조미료 거의 안써 산뜻한 뒷맛/수육ㆍ무침 등 단고기요리 10여가지/술은 대부분 40도 넘어… 들쭉ㆍ녹용ㆍ인삼ㆍ뱀술 등 약주가 많아
지난달 17일 평양 광복거리의 교예(서커스) 극장에서 공연을 보고 돌아온 서울전통음악연주단 일행중 몇명은 『평양에서 처음으로 뚱보를 보았다』고 입을 모았다. 세계적으로 소문난 평양교예단의 「주체적인 교예」중에서도 발판을 구르고 솟구쳐 올라 자유자재로 재주넘고 나서 다른사람들의 어깨에 층층이 올라 앉는 무동서기 등의 솜씨를 자랑한 널뛰기 종목에서 공훈배우 류춘길씨 등이 균형을 잃지 않도록 옆에서 붙잡아주던 한사람만은 평양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거구였던 것이다.
○비만증 걱정 안해
북한의 식탁에 오르는 음식들을 보면 전체적으로 「비만증 걱정이 없는 사회」가 된 까닭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범민족통일음악회에 참가했던 서울전통음악연주단 일행은 10박11일동안 융숭한 대접을 받았으므로 그간 접해본 음식들이 북한 주민들의 일반적인 식생활을 반영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제아무리 화려한 잔칫상에도 육류를 주재료로 사용한 음식이 드물고 다양한 나물과 생선요리가 대부분이라든가,많은 사람들이 김일성의 생일과 같은 「특별한 날」에 돼지고기 5백g을 지급받는다고 자랑하는 사실에 비춰볼 때 일반 주민들의 평소 식탁에는 고기반찬이 자주 오르지는 않는 듯 싶었다. 또 어느 안내원은 북한이 인도에서 산 채로 소를 수입한다며 『대체로 고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고 했다.
그러나 쇠고기나 돼지고기음식 전문식당 간판은 안보여도 「단고기(개고기)」 전문식당은 종종 눈에 띄었다. 단고기집에 다녀왔다는 해외동포들은 『그 종류만 해도 국ㆍ수육ㆍ무침 등 10여가지나 되는데 맛 또한 일품』이라고 칭찬. 육개장처럼 끊인 단고기국(개장국)은 뼈를 완전히 발라내고 고기는 가닥가닥 잘게 찢어넣었는데 뒷맛이 아주 개운해서 깻잎과 함께 먹지 않아도 전혀 비위가 상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잉어회ㆍ잣죽 별미
지난달 14일 개성에서 평양으로 향하는 특별열차의 식당차에는 생선ㆍ해삼탕ㆍ오징어ㆍ대추 등을 넣어 버무린 보쌈김치,닭고깃국,청포채(청포묵무침),도라지나물 등 수많은 음식들이 쉴새없이 날라져 들어왔는데 육류를 주재료로 만든 유일한 음식은 불고기였다. 전체적으로 자급자족이 어려운 육류 대신 북한에 풍부한 생선류나 채소류를 다각도로 활용해 맛과 영양을 최대로 살리고자 애쓴 듯 했다.
이날 저녁 범민족통일음악회 북측준비위원회가 평양 옥류관에서 베푼 환영만찬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것은 대동강에서 낚았다는 60∼70㎝ 크기의 싱싱한 갈색 잉어회와 잣죽. 18일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범민족통일음악회 개막 만찬의 차림표를 보면 ▲과줄(산자) ▲닭구이편육 ▲청포채 ▲쉬움떡ㆍ약설기떡 ▲남새합성(모듬채소) ▲게살종합량묵(각종 어묵) ▲김치 ▲생선타래초찜 ▲소갈비중탕 ▲만두국 ▲밥 ▲과일 ▲인삼차로 돼 있었다.
20일 금강산 호텔에서 차려낸 점심상에도 육류요리는 해삼을 곁들인 소발통(우족)탕 정도. 금강산에서 캔 도라지 무침이며 작은 냄비 크기의 밥조개껍질을 개인용 버너에 올려 놓고 잘게 썬 조갯살ㆍ두부ㆍ야채 등을 맑은 장국에 끓여먹도록 하는 「밥조개신선로」가 특이했다. 후식으로는 금강산에서 따온 다래를 내놓아 지역특산물을 최대로 활용한 상차림이 돋보였다.
개성∼평양사이의 특별열차나 북한에서 방문한 공연장이며 문화예술기관 어디서나 한결같이 내놓는 음료수는 신덕샘물ㆍ배사이다ㆍ배단물(주스)ㆍ오미자단물,그리고 얼마전까지만 해도 볼 수 없었다는 「룡성콜라」였다. 금강산에 갔던 하룻밤을 빼고는 서울전통음악연주단 일행이 계속 묵었던 평양 고려호텔의 방에는 냉장고에 넣어둔 룡성맥주나 배단물ㆍ강서약수 등의 음료수 말고도 록용인삼술ㆍ고려인삼술ㆍ백로술ㆍ인풍술(포도주) 등 7∼8가지의 술병이 갖춰져 있었다. 거의가 40도를 넘는 독한 술. 북한에서 본 술은 거의가 곡주로 그중에서도 인삼ㆍ녹용ㆍ들쭉ㆍ뱀 등을 넣어 만든 약주종류가 대부분이었다.
○뱀술은 60도 이상
혜산 들쭉가공공장에서 만들었다는 「백두산 들쭉술」은 그 맛이 일품이어서 북한을 방문했던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부인도 평양을 떠날 때 두 상자나 가져갔다고 자랑했다.
20일 금강산으로 향하는 길에 평양과 원산 사이의 중간쯤 되는 황해북도 신평휴게소에서는 이지역 특산품이라는 황구렁이술(60도)을 서울 전통음악연주단 일행에게 한잔씩 따라 내놓았다. 이 휴게소의 책임자 김형섭씨(67)는 나이보다 10세 이상 젊고 건강한 모습이었는데 『이 좋은 산수에서 사는 황구렁이로 담근 술 덕분』이라며 다른 지역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다고 적극 권했다.
김씨의 설명에 따르면 우선 황구렁이를 잡아 1주일간 굶겨 구렁이 뱃속에 있던 음식들을 완전히 배설시킨다. 구렁이를 알콜로 깨끗이 씻어내고 옥수수나 감자로 담근 40도짜리 곡주를 먹여 취하게 한뒤 독에 넣고 90도 식료알콜을 부어 봉인한다. 최소 6개월 이상 저장했다 병에 넣어 보관,오래 묵은 병부터 꺼내 판다. 알콜도수가 60도가 넘어야 사충이 죽고,65도가 넘으면 구렁이의 영양분이 우러나지 않으므로 60∼65도로 유지시키는데,특히 하지 무렵의 황구렁이가 최고라고 했다. 「수령님 은덕」으로 9남매나 되는 자녀들이 모두 대학을 졸업했다는 김씨는 『위대하신 수령님의 만수무강을 위해 수령님께는 물론 특별히 최상품을 올린다』면서 『이 술을 맛본 5대양 6대주의 남녀노소가 모두 좋아하더라』고 입심좋게 자랑을 늘어놓았다.
○약밥에는 꿀 사용
한편 북한에는 어느 상에나 거의 빠짐없이 오르는 절편ㆍ계피떡ㆍ송편ㆍ설기 등 떡종류가 매우 다양하고 맛도 좋다.
남에서 흔히 기주떡으로 통하는 증편을 「쉬움떡」이라 부르며,흑설탕 대신 꿀로 단맛을 낸 약밥은 떡처럼 잘게 썰어내지 않고 접대원이 놋사발에 담아 들고 다니며 숟가락으로 개인접시에 덜어주는 것이 특이했다.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은 산뜻한 맛도 북한음식의 장점. 옥류관 냉면의 소문난 맛도 순메밀로 만든 면발의 감촉 및 꿩고기완자와 더불어 화학조미료를 넣지 않고 끓여낸 육수가 한데 어우러진 탓이 아닌가 싶었다.<평양=김경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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