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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방」 편성독립성에 의문/「태영」 선정을 보는 학계ㆍ언론계의 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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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서둘러 출범… 선거용 전략 우려/광고배정 등 자율성 해칠 위험
민방주인이 사실상 ㈜태영으로 낙차되며 말많던 「편성의 독립성」문제가 새삼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방송을 들먹일때면 으레 짚고 넘어가는 데다 정부의 입김여부를 놓고 늘 강한 의혹을 불러일으켜온 이같은 난제가 더하면 더했지 민방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성급한 결론일지 모르나 이건에 관한한 일반적인 견해는 지극히 부정적이다.
무엇보다 정부가 왜 이토록 서둘러 민방운영주체를 결정해야 했는지 도무지 납득이 안간다는게 학계ㆍ언론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지금처럼 바삐 움직여도 인근 채널과의 주파수조정,장시간이 소요되는 방송기자재 설치등으로 내년말에야 첫전파를 내보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다시말해 내각제개헌은 접어두고라도 총선ㆍ대통령선거로 이어지는 정치일정상 민방허가는 다분히 선거용 전략이라는 주장이 강한 설득력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시청자 입장에선 채널이 늘어나면 볼거리가 많아진다지만 순전히 광고수입에 매달리는 민방에 좋은 볼거리가 많을 것이란 것은 성급한 기대이다.
광고수입만을 겨냥,대중에 영합하는 흥미위주의 선정ㆍ오락물에 힘을 쏟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6ㆍ29선언이후 방송사 노조의 목소리가 커지며 정부와 여당의 입장이 유리하게 전달되지 않는 마당이어서 민방을 서둘러 출범시켜 최소한 「물타기 작전」을 해보려는 속셈이라는 분석도 있다.
더욱이 방송전문가들은 민방이 정식출범만 하면 현재 여건으로 미뤄 연간 1백50억원 이상의 흑자는 떼어놓은 당상인데 이처럼 엄청난 혜택을 그냥 주겠느냐는 논리를 편다.
정부는 반대급부를 기대하게 마련이고 특혜(?)를 받은 업체는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으며 굳이 정부비위를 건드려가면서 돈벌기는 어려운 만큼 이름만 민방이지 「친정부적 상업방송」이 안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불을 보듯 뻔한 상황에서 어떻게 편성의 독립성을 기대할 수 있느냐는 반문이다.
정부는 물론 시간있을때 마다 일률화된 현재의 공영방송체제에 민방을 허가,국민의 바람대로 상호경쟁을 통한 방송의 질을 높이는데 신경을 쓸 따름이지 방송장악 의도는 없다고 누누이 강조해왔다.
그러나 문제는 또 있다.
국회에서의 여당단독 날치기 통과로 사회를 온통 떠들썩하게 만들며 개정된 방송법내에 커다란 허점이 있음이 뒤늦게 밝혀졌다.
한국방송광고공사는 방송사의 광고영업권을 독점하고 광고물량을 임의로 조정하게 돼있다. 그뿐 아니라 재정난에 허덕이는 방송사에는 광고공사의 공익자금을 지원한다는 조항이 수정되지 않은채 민방에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이 방송학자들의 지적이다.
정당성은 차치하고 그간 KBSㆍMBC 양방송국 모두에 그랬듯 광고물량 배정문제 등은 민방에도 역시 아킬레스건으로 작용될 소지가 크다는 말이다.
공보처직속으로 행정기관이랄 수 있는 광고공사가 민방의 젖줄을 쥐고 마음이 내키지 않을 경우 얼마든지 우회적인 통제수단의 하나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민방의 독립성 운운은 구조적으로 힘든 상태다.
또다른 제약요소도 예견되고 있다. 이번 민방의 성격으로 보건대 소수인원운영이 불가피한 것으로 전망돼 노조구성은 물론 채용때 조건을 붙여 노조가입이나 결성을 원천봉쇄,경영진의 독주를 막아낼 자체기구가 생겨나기 힘들다는 점이다.
『일단 민방이 전파를 띄우면 정치분위기가 성숙되지 않은 우리의 현 풍토상 뾰족한 대안이 없습니다. 흔히들 「편성위원회」같은 독립기구가 필요하다지만 제도가지고는 안됩니다.』
방송의 자율성이 보장되는 사회여건이 됐을때 민방의 필요성이 재거론돼야 한다며 백지화를 주장하는 성균관대 방정배교수(46ㆍ신방과)의 말이다.
1백20여명의 관련 학자들이 정부책임자에게 시기상조임을 촉구하고 80여명은 공동서명 형식으로 초반부터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아무튼 영국 BBCㆍ일본 NHK등 외국에서 빛을 본 공영방송제도가 국내에선 파행을 거듭한 시실을 예로 들며 충분한 여론수렴없이 강행된 민방 역시 여건이 조성될때까지는 추진돼선 안된다는 게 학계의 일관되고도 지배적인 입장이다.<김기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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