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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기억해야" vs "8년 지났다" 전주 분향소 철거 갈등

중앙일보

입력

3일 낮 전북 전주시 전동 풍남문 광장에 설치된 세월호 분향소에서 관광객 2명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김준희 기자

3일 낮 전북 전주시 전동 풍남문 광장에 설치된 세월호 분향소에서 관광객 2명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김준희 기자

전주시, 강제 철거 예고…시민단체들 "유지" 반발

"전주시 정책상 세월호 분향소를 철거해야 한다면 시민 의견을 모아 대안 공간을 먼저 마련한 뒤 옮기는 게 맞다."(대구에서 온 30대 관광객)

"부모가 돌아가셔도 1년 지나면 산소도 잘 안 가는데 참사가 일어난 지 8년이 지나도록 분향소를 운영하는 게 말이 되나."(전주 남부시장 50대 상인)

3일 정오쯤 전북 전주시 전동 풍남문 광장. 낮 최고 기온이 32.2도를 기록할 정도로 더위가 기승을 부렸지만, 세월호 분향소에는 추모객의 발길이 듬성듬성 이어졌다. 가로·세로 각각 3m인 몽골텐트에는 2014년 4월 16일 일어난 세월호 참사 희생자 304명의 사진이 빼곡히 담긴 현수막이 붙어 있다. '이게 나라인가?' 등 문구가 적힌 손팻말과 노란 리본 배지, 세월호 침몰을 다룬 자료 등도 전시 중이다.

세월호 분향소가 차려진 풍남문 광장은 인근에 전주 남부시장이 있고, 조선 시대 전주 읍성의 남문인 풍남문(보물 308호)과 맞닿아 있다. 왕복 4차선 도로를 건너면 경기전·전동성당 등 명소가 즐비한 전주 한옥마을로 이어진다.

전주시 "상가 꾸준히 민원 제기…경관 훼손"  

전주시가 강제 철거를 예고한 풍남문 광장 세월호 분향소. 도로 맞은편에 전주 한옥마을이 있고, 오른쪽에 전동성당이 보인다. 김준희 기자

전주시가 강제 철거를 예고한 풍남문 광장 세월호 분향소. 도로 맞은편에 전주 한옥마을이 있고, 오른쪽에 전동성당이 보인다. 김준희 기자

전주시가 풍남문 광장에 설치된 세월호 분향소를 강제 철거하기로 하면서 시민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세월호 침몰 원인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날을 기억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공간마저 없앨 수는 없다'고 주장하는 반면 전주시는 '8년간 세월호 희생자의 명복을 빌고 희생자 유가족과 슬픔을 함께한다는 의미로 무단 점거를 용인했으나 시민과 주변 상가로부터 꾸준히 철거 민원이 제기돼 어쩔 수 없다"고 맞서는 모양새다.

전주시는 지난 6월 27일 세월호 분향소 측에 자진 철거를 구두로 요청한 뒤 사흘 만에 전기를 끊었다. 이후 지난달 세 차례에 걸쳐 '7월 말까지 자진 철거 및 원상 복구'를 촉구하는 계고장을 보내는 등 행정대집행을 예고했다. 전주시는 분향소 측이 이를 따르지 않으면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과 행정대집행법에 따라 변상금과 철거 비용 등을 청구할 예정이라고 했다.

찬반 엇갈려…"기억 공간 필요" "합법적 방법 모색해야" 

전주시가 지난달 세월호 분향소 측에 보낸 계고장. 사진 세월호 분향소 지킴이

전주시가 지난달 세월호 분향소 측에 보낸 계고장. 사진 세월호 분향소 지킴이

세월호 분향소는 2018년 4월 세월호 분향소 지킴이 등에 의해 설치된 뒤 시민단체 활동가 등이 돌아가면서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까지 지키고 있다. 앞서 2014년 8월 풍남문 광장에 민주노총 등이 설치한 세월호 농성장은 2017년 12월 자진 철거했다.

분향소 강제 철거를 두고 찬반양론이 엇갈린다. 이날 세종에서 왔다는 이모(32·여)씨는 "세월호 참사 이후 8년이 지났지만 아이들의 억울한 죽음이 완전히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분향소를 위해 공공 공간 일부를 사용하는 것 정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구에서 전주 한옥마을에 놀러온 김모(32)씨는 "(분향소에서) 행사를 하지 않는데 굳이 철거해야 하느냐"며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이를 기억하는 공간이 꼭 필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반면 전주에 사는 김모(20·여)씨는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건 중요하지만, (세월호 분향소가) 불법이라면 분향소를 운영하는 시민단체들도 합법적으로 희생자를 추모하는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상인 "관광객 '전주에 웬 세월호 분향소?' 물어"  

전주시 전동 풍남문 광장에 설치된 세월호 분향소 내부 모습. 김준희 기자

전주시 전동 풍남문 광장에 설치된 세월호 분향소 내부 모습. 김준희 기자

20년 넘게 남부시장에서 상점을 운영했다는 노모(54)씨는 "(세월호 참사) 초기에는 전국적으로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분위기여서 분향소에 대해 상인들도 대부분 공감했지만 8년이 지난 지금은 불편해하는 사람이 많다"며 "관광객들도 '전주가 세월호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곳도 아닌데 왜 분향소가 있냐'고 물어본다"고 했다.

이에 대해 20여 개 시민·사회단체는 이날 전주시청 앞 노송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적 참사이자 시대적 과제인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해 분향소는 유지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분향소를 공익을 해치는 대상으로 보는 전주시를 이해할 수 없다"며 "시장이 바뀐 뒤 갑자기 철거를 위한 행정 절차에 착수했고, 대화 요청도 거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분향소 지킴이 "우범기 시장, 대화 통해 대안 마련"  

3일 전주시청 앞 노송광장에서 시민·사회단체가 풍남문 광장에 설치된 세월호 분향소 강제 철거를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3일 전주시청 앞 노송광장에서 시민·사회단체가 풍남문 광장에 설치된 세월호 분향소 강제 철거를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병무(55) 세월호 분향소 지킴이는 "불법이냐, 합법이냐를 논하기 전에 세월호 분향소가 과연 공익적 가치가 없는지 등에 대한 의견 수렴도 없이 전주시가 일방적으로 강제 철거를 밀어붙이는 건 잘못"이라며 "이제라도 우범기 시장이 대화를 통해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전주시는 "세월호 참사 주기별로 임시 분향소를 운영해 희생자를 추모하는 건 찬성하나 지금처럼 기약 없이 운영하는 건 시민 불만과 적대감만 키울 수 있다"며 "풍남문 광장은 시민 휴식을 위한 열린 공간이자 관광객이 몰리는 곳인데 장기간 관리되지 못한 채 추모 기능만 유지하고 있는 분향소와 가로수에 무분별하게 설치한 현수막 등이 광장 경관을 해치고 시설물을 훼손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천막 형태의 세월호 분향소는 전국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며 "세월호 사고와 연관 있는 지역(진도·안산·제주)과 수도인 서울은 건물 내부에 기억관을 설치·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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