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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곡물선 159일 만에 첫 출항…흑해 수출에 식량난 숨통

중앙일보

입력

러시아군의 흑해 장악으로 막혔던 우크라이나산 곡물 해상 수출이 마침내 재개됐다. 튀르키예(터키) 국방부는 우크라이나산 곡물을 실은 첫 수출 선박이 1일 오전 9시15분쯤(현지시간, 한국시간으론 1일 오후 3시15분) 남부 오데사항에서 출항했다고 발표했다.

시에라리온 국적의 화물선 라조니호가 1일 우크라이나 곡물을 싣고 오데사 항구를 떠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시에라리온 국적의 화물선 라조니호가 1일 우크라이나 곡물을 싣고 오데사 항구를 떠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튀르키예 "오데사항에서 첫 화물선 떠나" 

관영 아나돌루 통신에 따르면 튀르키예 국방부는 이날 오전 "우크라이나산 옥수수를 실은 시에라리온 국적의 화물선 '라조니'호가 오데사항을 떠나 레바논에 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군이 통제하고 있는 흑해 남부 오데사항에서 우크라이산 곡물 선박이 출항한 건, 지난 2월 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159일 만에 처음이다. ‘흑해 문지기’인 튀르키예와 유엔의 중재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지난달 22일 곡물 수출 재개 협정서에 사인한 후 열흘 만에 첫 배가 떠났다.

우크라이나산 옥수수 2만6000t을 실은 라조니호는 2일 오전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도착해 공동조정센터(JCC) 관계자들에게 선박 검사를 받은 후, 이날 밤 레바논의 트리폴리 항구에 도착할 것으로 보인다고 AP 통신이 전했다. 안전한 운송을 위해 호송선이 라조니호를 따랐고, JCC에서는 무인항공기와 위성영상을 면밀히 모니터링했다.

밀·옥수수 등 곡물 가격 안정세

지난달 31일 러시아군이 점령한 도네츠크주 마리우폴 외곽에서 밀을 수확하고 있는 콤바인. AFP=연합뉴스

지난달 31일 러시아군이 점령한 도네츠크주 마리우폴 외곽에서 밀을 수확하고 있는 콤바인. AFP=연합뉴스

이로써 세계 식량 위기 해결에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측은 "오데사의 3개 항구에 16척의 선박이 정박해 있으며 58만t의 우크라이나산 곡물을 실었다"고 밝혔다. 올렉산드르 쿠브라코프 우크라이나 인프라부 장관은 "앞으로 몇 주 안에 농산물 환적의 한 달 전체 용량에 도달할 것"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흑해 항로가 열리면 매달 500만t 분량의 곡물을 실어나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밀·옥수수 등 곡물 가격도 안정세를 찾았다. 1일 시카고상품거래소(CBOT) 밀 선물 9월 인도분 가격은 부셸당 8.07달러다. 밀 선물 가격은 최근 8달러 선으로 떨어지면서 우크라이나 전쟁 직전 가격 수준으로 하락했다. 밀 선물 가격은 전쟁이 발발하면서 3월 초와 5월 중순에 부셸당 13달러 선을 위협했지만, 7월 들어 튀르키예와 유엔 중재가 본격화되면서 가격이 안정됐다. 1일 CBOT 옥수수 선물 가격도 부셸당 6.1225달러로 지난 2월 초 수준으로 하락했다.

그래도 세계 식량 위기 우려는 여전히 남아있다. 우크라이나의 올해 곡물 수확량이 평년의 절반가량으로 예상되고, 세계 밀 시장에 다른 문제들이 산적해 있어 흑해 수출길을 여는 것만으로는 식량 위기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일 전했다. JP모건 체이스의 농산물 전략가인 트레이시 앨런은 "에너지와 비료 가격의 상승과 기후 변화 등이 전 세계 식량 가격을 결정하는데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전했다.

러 폭격에 우크라 ‘곡물 재벌’ 사망

우크라이나 최대 농업기업 중 하나인 '니뷸론'의 창업자 겸 소유주인 '곡물 재벌' 올렉시 바다투르스키. 니뷸론 홈페이지

우크라이나 최대 농업기업 중 하나인 '니뷸론'의 창업자 겸 소유주인 '곡물 재벌' 올렉시 바다투르스키. 니뷸론 홈페이지

한편 우크라이나의 ‘곡물 재벌’ 올렉시 바다투르스키 부부가 지난달 31일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남부 미콜라이우의 저택에서 사망했다고 로이터·가디언 등 외신이 전했다. 바다투르스키는 우크라이나 최대 농업기업 중 하나인 ‘니뷸론’의 창업자 겸 소유주였다. 미콜라이우에 본사를 둔 니뷸론은 밀·보리·옥수수를 전문적으로 생산·수출하는 기업으로, 우크라이나에서는 유일하게 자체 선단과 조선소를 갖춰 곡물 수출에서도 영향력이 컸다.

니뷸론은 연매출 20억달러(약 2조6000억원)를 오르내리며 ‘커넬‘과 함께 우크라이나 농업기업 매출 1, 2위를 다퉜다. 2020년 포브스에 따르면 바다투르스키의 재산은 4억5000만달러(약 5900억원)로 추정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바다투르스키는 환적 터미널과 엘리베이터 네트워크를 포함한 현대적 곡물 시장을 만드는 중이었다"며 "그의 사망은 모든 우크라이나인에게 있어 큰 손실"이라고 했다. 미하일로 포돌야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보좌관은 "바다투르스키는 러시아가 노린 표적이었다"며 "사고가 아니라 잘 계획된 살인"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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