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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제주문학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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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밀감의 황금빛 들판, 유난히 바람 많은 섬을 몸 전체로 울어대는 허연 억새들의 천지. 한라산 하나 바다로 흘러들며 생긴 화산섬 제주도의 가을은 봄·여름·겨울 다른 계절만큼이나 육지 사람들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수려한 경관과 이색적인 기후·풍속 등으로 「환상의 섬」 「이상향」 등 최상의 수식어를 동반하며 누구나 한번은 들르고 싶고 돈 많이 번 여생을 쉬고 싶은 제주도는 그러나 나름의 슬픈 역사도 고스란히 간직하고있다.
『놀라지 마라./더러는 움푹 패인 자죽을 보더라도/한라산 아흔 아홉 골을 돌아 온 흔적이니라./웃지마라, 웃지마라/얼굴가득 숭숭한 수두자국을 보더라도/우영 텃밭 지키며 살아온 세월이니라./누가 그러더냐/시름만 지천으로 깔려있다고/더 있음과 없음도 모르고 살던 우리이니라./속지 마라, 속지 마라, 속지 말지라/모진 바람 꺾어 들고/우리 사는 이 골목에 삼촌, 괸당이니라.』(김순남씨의 「한라산」전문)
신라시대부터 중앙과 연계를 맺기 시작한 제주는 고려시대 몽골 군에 끝까지 항전한 삼별초군 패망 후 몽골의 세계제패를 위한 말 목장이 됐고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부터는 유배와 망명지로, 그리고 말·귤·전복 등 공물을 마련해 바쳐야하는 본토의 식민지로 전락한다. 현대사로 들어오면 「4·3사건」이 있었고 최근 들어서는 개발 붐을 탄 외지인의 상륙(?)에 시달리고있는 제주도는 화산석의 숭숭 뚫린 퀭한 눈을 치뜨고 경계의 눈빛을 물지 못하고 있다.
문학평론가 정한용씨는 최근 제주시인 10명의 시를 분석한 결과 제주섬이 갖고 있는 집단무의식 속에는 고립감과 저항정신이 박혀있다고 했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지리적 환경이 고립무원의 정서를 키웠으며 끊임없는 중앙의 착취가 저항정신을 길렀다는 얘기다.
추사 김정희 등 조선시대 유배문학을 간직한 제주의 현대문단은 해방 직후인 1946년1월 종합지 『신생』이 출간되면서 열린다. 제주도의 젊은 문학동호인들에 의해 나왔으나 창간호가 종간호가 된 이 잡지에는 김이옥·최길두·김영·김병헌·이영구·김필규 등의 시가 실렸다.
이후 좌우 이데올로기의 격랑에 휩싸여 별다른 움직임이 없던 제주문단은 6·25로 인한 피난문인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열린다.
1950년대 제주도를 거쳐 간 문인으로는 계용묵·장수철을 비롯, 제주대학에 재직했던 김영삼·문덕수·박목월 등을 들 수 있다. 이 같은 피난문인들과 양중해·고영일·정하은 등 제주문인들은 1952년 종합지 『신문화』를 창간, 이듬해 3집까지 발간하며 피난지 제주문단을 열었다.
이밖에 50년대 제주에 거주하고 있던 문인들은 비록 1∼2호밖에 맥을 이어가진 못했으나『흑산호』 『비자림』 『문주난』 『시 작업』 등의 동인지를 내며 제주문학의 길을 닦아갔다.
이중 1959년 창간된 『시 작업』은 『중앙문단에는 「현대문학」연대, 「자유문학」대대, 「사상계」중대 같은 문단세력이 자가류의 스피커를 중앙작전 본부에 두고 맹렬히 상업경쟁을 벌이고있다』고 중앙문단 파벌과 상업성을 비판하며 전국시인을 규합, 기세를 떨쳤으나 2집으로 종간되고 말았다. 이러한 동인활동에 힘입어 50년대 중앙문단에 데뷔한 문인은 시에 있어서 김대현·김종원·양중해·김종훈, 소설에서는 최현식·강창수 등을 들 수 있다.
60년대 들어서는 피난문인들도 각기 제자리로 돌아가고 제주 출신들만으로 동인지 중심으로 제주의 향토성을 살린 문단을 연다.
60년대 활동한 주요동인들로서는 1961년 서귀포 문인들이 주축이 된 「절벽동인」, 1963년 소재와 주제에 있어서는 로컬리즘을, 에스프리에 있어서는 원색적 독창을 내세운 「아열대동인」, 국교 교사들로 구성된 아동문학동인 「동심공원동인」, 1966년 향토적 이미지 발굴과 제주문학의 순수성을 내건 「인동인」, 1968년 시인·사진작가들이 출범시킨 시·사진동인 「수레바퀴동인」, 1969년 매주 토요일 만나 낭독과 합평회를 가졌던 「토요구락부」 등을 들 수 있다.
60년대 중앙문단에 데뷔한 문인으로는 박철희 강금종 김광협 김용길 김영화 김시태 오성찬 등이 있다.
70년대 제주문단은 동인중심의 활동에서 차츰 개개인의 내실을 다져가는 시기로 전환, 1975년 출범한 「정방문학 동인회」와 1976년 출범한 「탱자 꽃 모임」정도가 활발한 동인활동을 폈다.
그러나 이 시기부터 현재까지 정인수 현기영 한기팔 김종두 송상일 김용해 송재찬 김진자 이용상 문충성 강통원 오용수 문해림 김병택 박동철 강정훈 전달문 한림화 김정옥 현길언 허영선 오승철 김수열 김공천 강방영 정태무 박재형 김영기 고시홍 고원정 장일홍 이인식 김승림 오영호 오경훈 나기철 김순택 김길호 이훈 고성기 고응삼 강용준 고정국 김석희 고영기 김광열 이석범 정순희 김명식 장영주 등 수많은 문인들이 중앙문단에 배출된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문학단체나 동인으로는 「제주 문인협회」 「서귀포 문학회」 「제주아동문학협회」 「제주시 조문학회」 「경작지대」 「풀잎 소리」 「초승 문학동인」 등이 있다.
이밖에 87년 젊은 문인들로 구성된 「제주 청년 문학회」가 제주도내 대학문학 동아리인「신세대」와 함께 민중문학을 지향하며 문학으로 「어멍아방(어머니 아버지)지켜온 땅 아들 딸이 지켜내자」는 구호와 함께 매년 민족문학제를 열어 오고 있다. <제주=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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