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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자료미비"…日사도광산 세계문화유산 심사 퇴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조선인 강제 노역 현장인 일본 사도광산의 내년도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불가능해졌다. 유네스코가 일본이 제출한 자료가 불충분하다고 지적하며 심사를 보류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당초 계획보다 1년 늦은 2024년 등재를 위해 추천서를 다시 내겠다고 밝혔다.

사도광산을 대표하는 아이카와 금은산에서 메이지시대 이후 건설된 갱도. 이영희 특파원

사도광산을 대표하는 아이카와 금은산에서 메이지시대 이후 건설된 갱도. 이영희 특파원

스에마쓰 신스케(末松信介) 문부과학상은 28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유네스코 사무국에서 심사 결과 (사도광산) 추천서 일부에 불충분한 점이 있다는 판단이 제시됐다"고 밝혔다.

문부과학성은 유네스코 사무국에 판단을 재고해 달라고 요청했고, 오드레 아줄레 유네스코 사무총장에게 서한을 보냄과 동시에 문부과학성 사무차관을 파리로 파견하기도 했다.

스에마쓰 장관은 "하지만 유네스코 사무국의 판단이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 어젯밤 늦게 확인됐다. 이 이상 논의를 계속하더라도 심사가 진전하지 않는 상황"이라며 사실상 내년 등재가 어려울 것이라고 인정했다.

유네스코, 한·일 갈등 재연 우려  

유네스코가 지적한 사항은 "자료 미비"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유네스코는 사도광산의 범위를 표시하는 자료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며 미비점을 지적했고, 추천서를 자문기관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에 보내지 않았다.

에도 시대에 일하던 노동자들의 모습을 재현해놓은.사도광산 유적 내부. 이영희 특파원

에도 시대에 일하던 노동자들의 모습을 재현해놓은.사도광산 유적 내부. 이영희 특파원

유네스코가 3월 1일까지 이코모스에 추천서를 보내야 이코모스가 현지 조사를 시작할 수 있는데, 그 기한을 넘긴 것이다. 세계문화유산 등재 여부를 결정하는 세계유산위원회는 올해 러시아가 의장국이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여파로 무기한 연기됐다. 2023년 이후도 개최가 불투명하다.

유네스코는 또 역사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갈등이 세계유산위원회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 데 대해 일본 측에 우려를 표했다고 교도통신은 전했다. 군함도 등 근대산업시설에 이어 사도광산의 문화유산 등재 과정에서 다시 유네스코가 한·일 역사 갈등의 무대가 되는 상황에 불편함을 표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일본은 2015년 군함도 등 근대산업시설을 세계유산으로 추천하면서 기간을 1850년에서 1910년으로 한정해 조선인 강제 노역 사실을 가리려 했다. 한국은 이에 지속해서 반발했고 유네스코는 지난해 7월 조선인 강제 노역에 대해 설명하는 추가 조치를 취하라고 일본 정부에 경고했다.

이번 사도광산 역시 기간을 금광으로 유명했던 '에도 시대'로 제한해 태평양 전쟁 당시 이 광산이 구리와 철, 아연 등의 전쟁 물자를 생산하는 곳이었다는 사실을 감췄다. 당시 이 광산에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의 규모는 1200~2000명으로 추정된다.

아베 전 총리 '압박'으로 등재 추진

일본 정부는 추천서를 보완해 다시 내겠다는 입장이다. 스에마쓰 문부상은 "추천서를 수정해 내년 2월 1일까지 다시 제출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도 유감이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인정하고 가능한 한 빨리 세계유산으로 확실히 등록되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라고 지시했다.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는 지난 8일 총격으로 숨진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적극 밀어붙인 사안이기도 하다. 일본 정부는 당초 한국의 반대가 계속될 경우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신뢰가 떨어질 수 있다며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 신청을 보류하려 했다. 그러나 아베 전 총리 등 자민당 강경파들이 "한국 반발에 지면 안 된다"고 압박해 결국 추진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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