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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덮친 ‘절망사’, 한국도 위험수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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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손해용 기자 중앙일보 경제부장
손해용 경제정책팀장

손해용 경제정책팀장

자살과 약물·알코올 중독에 따른 사망을 뜻하는 ‘절망사’(絶望死·Deaths of Despair)는 2015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앵거스 디턴이 제기한 사회문제다. 그는 빈부격차가 커지면서 미국 저소득·저학력 백인 노동자 계층이 국가 공동체에서 소외되고, 절망사의 절벽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19일 방송통신대 강상준 교수 등이 수행한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연구용역 보고서 ‘한국의 절망사 연구:원인 분석과 대안 제시’에 따르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장기간 유지하고 있다. 자살은 10대·20대·30대의 사망 원인 1위, 40·50대에서는 2위다. 주로 관계의 어려움과 경제적 문제에 따라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알코올성 간질환, 알코올성 심장근육벽증 같은 알코올 관련 사망도 심각해지고 있다. 2020년 알코올 관련 사망자는 5155명으로 2000년(2698명)과 비교하면 거의 두 배다. 2020년 기준 알코올 중독 추정 환자 수는 약 152만 명에 이르며, 특히 여성과 20~30대 젊은 계층에서 관련 진료가 증가하고 있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마약·약물 중독과 관련해서도 한국은 더는 ‘안전지대’가 아니다. 인구 10만 명당 마약사범의 적발 수를 일컫는 ‘마약범죄계수’가 20을 넘으면 ‘마약 확산’ 위험이 크다고 보는데, 지난해에는 이 수치가 31.2에 달했다. 연구진은 “사회계층 이동에 대한 기대치가 낮고, 사회적 고립감이 높아지는 추세”라며 “한국 사회가 절망사의 위험에서 이미 자유롭지 못함을 의미한다”고 했다.

실제 ‘본인의 계층 이동 가능성’에 대해 2011년에는 응답자의 32.8%가 긍정적으로 봤지만 2021년에는 26.7%로 줄었다. 부정적으로 본다는 응답은 같은 기간 54.0%에서 58.0%로 늘었다. ‘사회적 고립을 느낀다’고 응답한 비율은 2017년 53.4%에서 계속 올라 2021년 56.6%를 기록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특히 10대~30대 자살자와 알코올 중독자가 계속 증가하고 있고, 온라인 마약 유통이 활성화되면서 젊은 층이 마약·약물에 노출되는 사례가 늘고 있는 점이 걱정스럽다. 취업, 내집 마련 등에서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는 점이 미국 백인 노동자의 절망사와 맞닿아 있어서다. 차승은 수원대 아동가족복지학과 교수의 진단이 새겨들을 만하다.

“가장 왕성한 꿈을 갖고 생산해야 할 때 절망사한다는 것은 청년층의 사회 여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미래를 이끌어 갈 청년층의 경제적·사회적 안전망 확보를 중심으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효율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