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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를 보내는 온도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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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혜란 기자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
강혜란 국제팀장

강혜란 국제팀장

엊그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금세기 들어 손에 꼽히는 정치 지도자가 이렇게 생을 마감한 것은 허망한 일이다. 일본 최장수 재임 총리일 뿐 아니라 일본의 대내외적 변화를 적극 추동한 정치가를 보내며 전 세계에서 추념이 쏟아졌다. 일본 측에 따르면 12일까지 259개 국가·지역에서 1700건 이상의 조의 메시지가 쇄도했다고 한다. 현직도 아닌 전직 아시아 국가 원수에 대해 이례적인 열기다. “다시금 아베 전 총리가 외교에서 남긴 큰 족적을 느끼고 있다”는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의 말이 과언이 아니다.

족적 중에 대표로 꼽히는 게 미국·일본·인도·호주 간 안보협의체 ‘쿼드’ 설립과 인도·태평양 개념의 정립이다. 그의 사후에 매슈 포틴저 전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이 월스트리트저널 기고에서 설명했다시피 아베는 아시아 태평양을 바라보는 프레임을 ‘줌 아웃’해서 더 큰 개념으로 보길 원했다.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면서 지역 안보 질서에 ‘자유민주주의 세력’ 연대를 끌어들이는 구상이다. “무력이나 강요로부터 자유롭고, 자유·법치주의·시장경제를 중시하고 번영하는”(2016년 아베 발언) 지역을 인·태 프레임으로 묶자는 발상은 워싱턴으로 하여금 아시아의 지정학을 달리 보게 했다.

지난 8일 선거 유세 도중 총격으로 사망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사진이 도쿄의 한 추모소에 놓여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8일 선거 유세 도중 총격으로 사망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사진이 도쿄의 한 추모소에 놓여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한국에서도 최근 쿼드 및 나토 협력이라는 외교 현안 속에 이 같은 프레임 이해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그럼에도 아베에 대한 한국인 일반의 평가는 박한 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아베 분향소에 조문하며 “아시아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고 남긴 추모글조차 일각에선 손가락질을 받는다. 지난한 한·일 역사 관계를 차치하고라도 아베 그 자신이 야스쿠니 참배, 위안부 인식, 역사교과서 개정 등에서 주변국과 긴장 관계를 자아낸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인·태이든 쿼드든, 아베의 구상은 일본의 지리적 숙명을 출발점으로 하는데도 말이다.

“아시아에 머물고 싶어하는 미국의 바람보다 미국이 아시아에서 떠나기를 원하는 중국의 바람이 훨씬 더 강하다.” 현대 일본의 형성에 대한 제3자적 통찰을 보이는 책 『일본의 굴레』에서 미국 학자 태가트 머피가 진단한 ‘아베식 안보 외교’의 딜레마다. 미국은 필요에 따라 중동을 들락거리듯 언젠가 아시아 주둔 미군을 철수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지역 초강국 지위 회복을 염원하는 중국은 이사 가지 않을 것이며 한국은 일본의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남을 것이란 지적이다. 한국 등 주변국에서 아베를 보내는 미묘한 온도 차이를 ‘포스트 아베’ 일본이 면밀히 되새기길 바란다. 마찬가지로 한국 역시 그가 남긴 안보 프레임의 위력을 균형 있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