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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민관협의회와 재계회의, 한·일 관계 물꼬 트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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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열린 제29회 한일재계회의에서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 회장(앞줄 오른쪽 두 번째)과 도쿠라 마사카즈 일본 게이단렌 회장(앞줄 세 번째) 등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한일재계회의는 코로나 여파로 2년 연속 열리지 못하다 3년 만에 재개됐다. [연합뉴스]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열린 제29회 한일재계회의에서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 회장(앞줄 오른쪽 두 번째)과 도쿠라 마사카즈 일본 게이단렌 회장(앞줄 세 번째) 등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한일재계회의는 코로나 여파로 2년 연속 열리지 못하다 3년 만에 재개됐다. [연합뉴스]

국론 모을 초당적 ‘현인 회의’로 진화 필요

전경련·게이단렌 “DJ-오부치 선언 2.0 노력”

한·일 관계 최대 현안인 강제징용 배상과 관련해 해법을 모색하는 ‘민관협의회’가 어제 출범했다. 2018년 한국 대법원의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에 대한 징용 배상 판결, 이를 통해 압류한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 현금화 절차로 한·일 관계는 수년째 교착 상태다. 법원의 현금화 강제집행 최종 결정에 앞서 정부가 “피해자와 각계각층의 의견을 경청하고 국민이 납득할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박진 외교부 장관) 만든 게 ‘민간협의회’다.

대법원 판결이 한·일 국교 수립의 전제, 그리고 역대 정부의 일관된 입장에 반한 것이어서 우리 정부가 “조약과 국제법 준수”를 주장하는 일본을 상대하기가 쉽진 않다. 특히 한·일 이슈는 국민 정서상 매우 민감하다. 민관협의회 활동으로 물꼬를 튼 뒤 ‘현인(賢人)회의’ 같은 초당적 기구를 가동할 필요성이 큰 이유다. 보수·진보를 망라해 신망이 두터운 인사들이 현인 회의에서 치열한 논의 끝에 내놓는 결과물이라면 국익의 관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겠나 하는 기대가 있다. 국론도 통합하면서 지속가능하고 건강한 한·일 관계를 위해 절실한 일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지난해 신년 회견에서 그간의 입장을 바꿔 “강제집행 방식의 현금화는 바람직하지 않다. 외교적 해법을 찾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초당적 지혜가 도출될 여지가 충분하다.

어제 서울에서 열린 한·일 재계회의도 주목된다. 코로나 사태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과 도쿠라 마사카즈 일본 게이단렌(경제단체연합회) 회장이 서둘러 만났다. 3년 만의 만남에서 두 단체는 ‘한·일 공동선언-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파트너십’(일명 김대중-오부치 선언) 2.0 시대를 열자며 이를 위해 양국 경제인들이 한·일 관계 개선과 경제협력의 확대·발전에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8개 항의 공동선언문엔 비자 면제 프로그램 부활, 한·일의 양호한 관계 유지·발전이 양국 발전과 동북아 평화·안정에 기여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도쿠라 회장은 윤석열 대통령을 예방했다. 윤 대통령은 “경제안보 시대에 협력 외연이 확대되도록 양국 기업인들이 계속 소통해 달라”고 당부했고, 도쿠라 회장은 “경제 분야 우호 관계가 유지·발전되도록 계속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

어제 회의는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공급망 위기가 심화하는 가운데 한·일 경제계가 관계개선을 얼마나 절실하게 바라는지를 보여준 자리였다. 경제계의 우호 분위기는 향후 강제징용 현안 해결에도 큰 힘이 돼 줄 게 확실하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의 ‘경전’(經典)으로 꼽힌다. 이 선언의 정신만 잘 새긴다면 불안정한 국제질서 속에서 양국이 공존과 평화 번영을 위한 지혜를 모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