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건' 톰크루즈처럼…비행에 미친 63세 러 최고 조종사 최후[이철재의 밀담]

중앙일보

입력 2022.07.03 05:00

업데이트 2022.07.03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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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탑건: 매버릭’이 박스오피스를 맹렬한 속도로 날고 있다. 2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이 영화는 1일 현재 22만 5699명의 관객을 끌어모았다. 흥행 1위이며, 누적 관객수는 240만 9564명이다.

'탑건: 매버릭' 파라마운트 픽처스

'탑건: 매버릭' 파라마운트 픽처스

‘탑건: 매버릭’은 1986년 개봉한 ‘탑건’의 후속편이다. ‘탑건’의 주연을 맡아 단숨에 스타의 대열에 오른 톰 크루즈가 36년 만에 콜사인(무전 호출부호) 매버릭으로 돌아왔다.

강산이 3번 바뀐 뒤에서야 후속편이 나왔지만, ‘탑건: 매버릭’의 흥행은 ‘탑건’의 수준을 넘어설 전망이다. 특히 장르물이 죽 쑤는 한국에서도 인기가 대단하다.

주연한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한국을 찾아 ‘톰형’이나 ‘톰 아저씨’로 불리는 톰 크루즈 특유의 넉살이 한몫했다. 하늘 위에서 전투기가 춤을 추듯 비행하며 벌이는 공중전 장면이 관객을 압도한다. 피트 매버릭(maverickㆍ개성이 강한 사람) 미첼 미국 해군 대령(톰 크루즈)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서사 구조에 빠진 관객도 제법 있다.

 '탑건: 매버릭'의 장면. 톰 크루즈는 실제 전투기를 타고 이 장면을 찍었다. 파라마운트 픽처스

'탑건: 매버릭'의 장면. 톰 크루즈는 실제 전투기를 타고 이 장면을 찍었다. 파라마운트 픽처스

제작진은 항공 신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려내기보다는 상당 부분을 배우가 직접 전투기에 타면서 찍었다. 아날로그 감성과 극도의 현실감을 이 영화의 매력으로 꼽는 의견도 많다.

최고의 조종사 탑건은 미 해군이 원조

‘탑건’과 ‘탑건: 매버릭’의 배경인 Top Gun은 ‘능력·계급·명성에서 최고의 사람’을 뜻한다. 미 공군과 미 해군(미 해군은 항공모함을 갖고 있다. 전 세계 공군 순위를 매길 때 1위가 미 공군, 2위가 미 해군이란 말도 나온다)에서 최고의 전투기 조종사를 탑건이라고 부른다.

1989년 탑건의 실제 모의 공중전 장면. 당시 미 해군의 주력 전투기인 F-14 톰캣(위)이 탑건의 교관이 모는 가상 적기인 F-16N 바이퍼(아래)와 도그파이트(근접전)을 벌이고 있다. 미 해군

1989년 탑건의 실제 모의 공중전 장면. 당시 미 해군의 주력 전투기인 F-14 톰캣(위)이 탑건의 교관이 모는 가상 적기인 F-16N 바이퍼(아래)와 도그파이트(근접전)을 벌이고 있다. 미 해군

어원은 미 해군의 학교에서 비롯됐다. 미 해군은 최고의 전투기 조종사를 양성하는 미 해군 해상공격ㆍ공중전투 학교(NSAWS)를 네바다주 팰런 해군 항공 기지에 운영하고 있다. 이 학교는 미 해군 전투기 조종사에게 전투ㆍ공격 전술과 기술을 가르치는 곳이다. NSAWS를 나온 전투기 조종사는 원소속 부대로 돌아가 자기가 배운 전술ㆍ기술을 동료에게 전파한다.

NSAWS의 조종사 교육과정을 미 해군 전투기 전술 교관(SFTI) 프로그램이라 부른다. 속칭 ‘탑건’으로 더 잘 알려졌다.

1969년 창설 당시 미 해군 전투기 병기 학교 모습. '탑건'이란 표시ㅏ 보인다. 미 해군

1969년 창설 당시 미 해군 전투기 병기 학교 모습. '탑건'이란 표시ㅏ 보인다. 미 해군

NSAWS의 시작은 1969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 해군과 공군은 약세로 깔봤던 북베트남 공군에게 호되게 당했다. 미 해ㆍ공군은 공대공 미사일을 끝판왕으로 생각했고, 그래서 그 무렵 최강 전투기인 F-4 팬텀Ⅱ는 기관포를 달지 않았다. 그런데 당시 미사일은 성능이 시원찮았다. 미사일을 피한 북베트남 공군 전투기가 미 해ㆍ공군의 전투기 꼬리를 문 뒤 기관포로 격추하는 사례가 많았다.

그래서 부랴부랴 F-4 팬텀Ⅱ에 기관포를 추가하고, 레이더의 성능을 높이면서, 미사일의 문제를 해결하는 노력이 이어졌다. 그리고 미 해군은 전투기 조종사의 도그파이트(근접전) 기량을 키우는 과정을 만들었는데, 그게 바로 탑건이다.

탑건을 마친 뒤 받는 패치. 1996년까지 탑건은 '미 해군 전투기 무기 학교'의 과정이었다. 이후 '미 해군 해상공격ㆍ공중전투 학교'로 바뀌었다.

탑건을 마친 뒤 받는 패치. 1996년까지 탑건은 '미 해군 전투기 무기 학교'의 과정이었다. 이후 '미 해군 해상공격ㆍ공중전투 학교'로 바뀌었다.

미 해군은 최고의 전투기 조종사를 탑건의 교관으로 선발했다. 이들은 북베트남 공군의 주력기인 미그-17과 미그-21의 비행 특성을 따라 하면서 소련이 북베트남에 가르친 전술대로 학생 전투기 조종사와 모의 교전을 벌였다.

탑건의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미 해군 군용기와 북베트남 군용기간 격추 비율은 미 공군보다 훨씬 우세해졌다.

한국 공군에도 탑건 학교가 있다. 청주 기지의 제29전술개발훈련비행전대(29전대)다. 이곳의 베테랑 교관 조종사는 공중전술을 개발하며, 가상 적군 역할을 담당한다.

2021년 올해의 탑건으로 뽑힌 제8전투비행단 최준상 대위. 공군

2021년 올해의 탑건으로 뽑힌 제8전투비행단 최준상 대위. 공군

공군은 또 보라매 공중사격대회를 통해 ‘올해의 탑건’을 뽑는다. 지난 1960년 ‘공군사격대회’를 시작으로 62년째 내려온 보라매 공중사격대회는 공중기동기 부문과 전투기 부문으로 나뉜다. 지난해 탑건의 영예는 1000점 만점에 955점을 얻은 제8전투비행단 소속 국산 경공격기 FA-50 조종사인 최준상 대위가 받았다.

환갑이 넘어도 전투기를 몬 현실의 매버릭  

주인공 피트 매버릭 미첼은 전투기 조종사로 남기 위해 진급을 사양했다. ‘탑건: 매버릭’에서 상관인 체스터 해머 케인(에드 해리스) 제독(해군 소장)은 미첼을 보고 “자넨, 여태까지 별 안 달고 뭐했나”라고 물을 정도다.

영화 '탑건'에서 마이크 바이퍼 멧캐프 미국 해군 중령(톰 스커릿ㆍ오른쪽). 파라마운트 픽처스

영화 '탑건'에서 마이크 바이퍼 멧캐프 미국 해군 중령(톰 스커릿ㆍ오른쪽). 파라마운트 픽처스

그런데 현실에서 현역 전투기 조종사로 활동하는 대령은 없다. 전 세계를 다 뒤져보지 않았으니, 정확히 말하면, 없다고 봐도 된다.

공군 관계자는 “중령이 비행대대장을 맡으며 전투기를 타는 경우가 있다”면서 “대령으로 진급하면 지휘관 임무만 맡는다”고 말했다. 미 해군에서도 잘 나가는 전투기 조종사 출신 대령은 핵추진 항공모함 함장을 맡는다.

베트남 전쟁 당시 피트 페티그루 미국 해군 예비역 소장. 미 해군

베트남 전쟁 당시 피트 페티그루 미국 해군 예비역 소장. 미 해군

‘탑건’과 ‘탑건: 매버릭’의 주인공 피트 매버릭 미첼의 실제 모델인 피트 페티그루도 마지막 계급은 해군 소장이었다. 베트남에서 375번의 전투작전에 참가한 베테랑인 그는 1972년 5월 6일 그와 편대장이 모는 F-4 팬텀Ⅱ 2대로 북베트남 공군 미그-21 4대와 붙어 90초 만에 2대(1대 페티그루, 1대 편대장)를 떨군 기록이 있다. 그리고 69~72년 탑건의 교관이었다.

그는 83년부터 86년까지 파라마운트에서 근무하며 ‘탑건’의 기술 고문으로 일했다. 그리고 ‘탑건’에서도 카메오로 출연했다. 주인공 매버릭이 여자친구인 찰리와 술집에서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찰리와 대화를 나누는 백발의 중년 남자가 페티그루다.

영화 '탑건'에서 카메로(왼쪽)으로 나온 피트 페티그루 미국 해군 예비역 소장. 파라마운트 픽처스

영화 '탑건'에서 카메로(왼쪽)으로 나온 피트 페티그루 미국 해군 예비역 소장. 파라마운트 픽처스

현역 시절 페티그루의 콜사인 ‘바이퍼’는 ‘탑건’에서 탑건의 교장인 마이크 멧캐프 중령(톰 스커릿)이 물려받았다. 그래서 페티그루의 영화 속 분신이 주인공 매버릭보다는 조연 바이퍼에 더 가깝다는 평가가 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있었다. 별을 달았지만, 전쟁에서 전투기를 몰고 다니는 경우가 나타난 것이다. 지난 5월 22일 우크라이나의 격전지인 루한스크 포파스나 상공에서 우크라이나군 휴대용 대공 미사일에 맞아 추락한 러시아군 Su-25의 조종사 카나마트 보타셰프 얘기다.

올해 63세인 그는 계급이 무려 공군 소장이다. 물론 현역은 아니고 예비역이다. 보타셰프 예비역 소장은 ‘스나이퍼’ 견장을 가졌다. 최고 기량을 갖춘 러시아 조종사 만이 받는 견장이다.

그는 영화 ‘탑건: 매버릭’의 매버릭처럼 비행에 미쳐 사고를 치다 군에서 쫓겨났다. 2012년 자신의 기종도 아닌 Su-27UB를 타고 무리한 공중기동을 시도하다 지상에 추락했다. 2011년에도 무단으로 Su-34를 조종한 적이 있었다.

카나마트 보타셰프 러시아 공군 예비역 소장. 위키피디아

카나마트 보타셰프 러시아 공군 예비역 소장. 위키피디아

민간인으로 지내다 이번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고전하고 있는 러시아가 전투기 조종사를 급구하자, 보타셰프 예비역 소장은 잽싸게 손을 들고 참전했다. 그러나 말로는 좋지 않았다.

앙숙인 파키스탄과 인도의 서로 다른 '탑건'

여기 개성이 강한 전투기 조종사가 있다. 그는 임무 도중 간신히 살아남았다. 상관은 그를 비행 학교로 보냈다. 거기서 실력을 갈고닦은 조종사는 실전에서 맹활약한 뒤 영웅으로 부대에 복귀했다.

파키스탄 영화 '쉐르딜'의 포스터. imdb

파키스탄 영화 '쉐르딜'의 포스터. imdb

‘탑건’의 요약이 아니다. 2019년 개봉해 그해 파키스탄 영화 흥행 5위에 오른 ‘쉐르 딜(Sher Dil)’의 줄거리다.  개봉 당시 아랍 언론은 이 영화를 대놓고 ‘파키스탄판 탑건’이라고 불렀다.

물론 파키스탄의 양념이 쳐졌다. 영화 속 전투기는 중국제 JF-17이다. 파키스탄 영화지만 발리우드(인도 영화)처럼 춤추고 노래하는 장면도 있다.

86년 ‘탑건’이 나온 뒤 ‘쉐르 딜’과 같은 탑건 스타일의 영화가 여러 나라에서 만들어졌다. 한국의 ‘R2B: 리턴 투 베이스’(2012년)를 금방 떠올린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들 영화의 공통점이 있다. ‘탑건’의 서사 구조를 따라 한다는 점이다. 주인공은 스피드를 좋아하고, 꼭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 그리고 마케팅을 할 때 ‘탑건’이란 단어를 꼭 쓴다.

인도 영화 '마우삼'에서 남자 주인공이 오토바이를 타는 장면. 유튜브 캡처

인도 영화 '마우삼'에서 남자 주인공이 오토바이를 타는 장면. 유튜브 캡처

파키스탄의 ‘쉐르 딜’에서 적으로 나온 인도에선 ‘마우삼(Mausam)’(2011년)이 있다. 다만 이 영화는 공중전보다는 로맨스에 더 방점을 찍혔다.

일본의 ‘베스토가이(Best Guy)’(1990년)은 영화 ‘탑건’ 스토리와 거의 비슷하다. 당시 일본 항공자위대 최강의 전투기인 F-15J가 등장했다. 그러나 흥행은 실패했다.

프랑스에선 2005년작 ‘마하 2.6: 풀스피드(Les Chevaliers du ciel)’이 있다. 감독이 스피드광으로 유명한 덕분인지, 영화 속 미라지 2000은 풀스피드로 날아다닌다.

'스카이 파이터'에서 오토바이 장면. '탑건'을 그대로 따라했다. 영화 캡처

'스카이 파이터'에서 오토바이 장면. '탑건'을 그대로 따라했다. 영화 캡처

중국이 빠질 순 없다. ‘스카이 파이터(殲十出擊)’(2011년)와  ‘스카이 헌터(空天獵)’(2017년) 등 두 편이나 만든 중국이다. ‘스카이 파이터’에선 유명한 오토바이 신이 그대로 나온다. 매버릭이 비행장 활주로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전투기와 경주를 하듯 달리는 장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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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이자 뮤지션으로 활동하고 있는 원종우씨(필명 파토)는 “‘탑건’은 전쟁 영화의 형식을 빌었지만, 수컷의 로망을 다룬 작품”이라며 “영화의 테마라 할 수 있는 스피드ㆍ레이싱ㆍ경쟁ㆍ성장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런 테마들은 미국만의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영화 ‘탑건’이 이런 테마들을 전쟁 영화에서 적절히 잘 섞는 방법을 보여줬고, 다른 나라에서 ‘탑건’을 자신들만의 맥락으로 재해석한 영화들을 내놓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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