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판사 오판은 면책' 헌재 심판대 오른다…한 변호사의 6년 전쟁 [그법알]

중앙일보

입력

그법알

그법알’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판사가 쓴 판결문에 명백한 잘못이 있다면 어떨까요. 법원이 잘못된 판단을 했으니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할 수 있을까요? 만약 여러분이 이런 결심을 했을 때 입증해야 할 것들이 좀 있습니다. '위법·부당한 목적'이 있었는지, '기준을 현저하게 위반했는지' 등 따져야 할게 너무 많거든요.

법원 이미지 [연합뉴스]

법원 이미지 [연합뉴스]

[그법알 사건번호 51] 판사 오판 잘못 따지는 건 하늘의 별따기?

여기 이 모든 일을 겪은 한 변호사가 있습니다. 지난 2016년, 전상화 변호사(전상화 법률사무소)는 한 자영업자를 변호합니다. 이 자영업자는 건물주로부터 명도 소송을 당한 상태였는데요. 임대료가 두 달 넘는 기간 동안 밀렸다는 이유로 건물주가 나가라며 소송을 냈는데, 당시 개정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석 달 치 이상의 임대료가 연체된 경우에만 임대인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항은 양측의 계약서에도 적혀 있었고요. 전 변호사는 이를 근거로 소송에서 이길 수 있다고 자신의 의뢰인에게 자부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맡은 1심 판사는 법이 개정되기 전 기준을 잘못 적용한 뒤 "임대료를 두 달 치 이상 못 냈을 경우 계약 해지가 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잘못된 법을 적용해 전 변호사와 의뢰인이 소송에서 지게 된 거죠. 전 변호사는 성공보수를 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항소심 사건도 수임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전 변호사는 2019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냅니다. 1심 판사가 고의 또는 과실로 위법한 판결을 선고했으니, 국가가 배상하라는 겁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전 변호사는 또 졌습니다. 여기서부터 또 다른 싸움이 시작됩니다.

관련 법령은!

먼저 관련 법령을 좀 볼까요.

국가배상법 제2조 1항입니다. 공무원이나 공무를 위탁받은 사인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을 위반해 손해를 입혔다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손해를 배상해야 합니다.

민법 제750조도 있습니다.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입힌 사람은 배상할 책임이 있습니다.

1심 판사가 '고의 또는 과실'로 법을 위반했는지만 살피면 되는 것 아닌가? 하실 겁니다. 그런데 전 변호사의 손해배상 청구 소장을 받아든 법원은 대법원 판례를 하나 내밀었습니다.

법관의 재판에 대해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려면 어떤 요건이 필요한지 나열한 판결인데요. (2000다29905 등) 이에 따르면 법관의 재판에 법령 규정을 따르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하더라도, 바로 국가배상법이 정한 위법한 행위는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 해당 법관이 위법하거나 부당한 목적을 가지고 재판을 했는지 등 법관이 자신이 부여받은 권한의 취지에 명백하게 어긋나게 권한을 행사했다고 볼 특별한 상황이 있는지" 살펴보라고 합니다. 결국 법원은 전 변호사가 청구한 손해배상 사건에서는 이 요건이 충족되지 못했다고 본 거죠. 대법원까지 갔지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전 변호사는 이 사건의 항소심과 상고심 재판부가 잘못된 판단을 했다며 또다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가 건물 명도 소송의 판결이 잘못됐는지 판단도 하지 않았고, 법원이 줄곧 예시로 드는 기존 대법원 판결에도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전 변호사는 왜 판사의 불법 행위를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유독 더 많은 조건이 필요한 거냐고 질문합니다.

판사에게만 '면책특권'?

전 변호사는 두 번째로 낸 국가 상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헌법재판소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법원에 위헌법률심판을 신청한 건데요. 진행 중인 사건에 적용될 법률이 위헌인지 아닌지 헌법재판소에 법원이 물어봐 달라고 신청하는 제도입니다. 이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211단독 서영효 부장판사는 지난달 30일 전 변호사의 신청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국가배상법 2조 1항 중 '공무원이 고의 또는 과실로 법을 위반했는지' 부분에서, 법관의 경우 추가로 다른 요건을 포함하는 것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헌재가 살펴달라고 했습니다.

서 부장판사는 입법부나 행정부 소속의 다른 공무원들과는 달리 법관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가 적용된다고 판단했습니다. 법관의 직무상 재판행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려면, 유독 '위법·부당한 목적' 또는 '현저한 기준위반'과 같은 가중 요건이 요구된다는 거죠. "헌법과 국가배상법, 민법에는 법관의 재판에 대한 불법행위에 대해 면책하거나 제한하는 별도의 규정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서 부장판사는 결정문에 "가중 요건을 두고 국가배상책임을 제한하거나 배제하는 것은 법관에 대한 특전을 새롭게 창설하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적었습니다. "우리 헌법은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를 인정하지 않고, 어떤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고 하고 있다면서요. "만약 항소나 상고제도와 같은 불복 절차로 해결될 수 없는 손해가 생긴 경우에는 국가배상 이외의 방법으로는 권리를 회복할 수 없다"고도 했습니다.

사법 신뢰도 언급합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으로부터 사법과 재판에 대한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는, 법관의 특권적 지위를 과감하게 내려놓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는 겁니다. 서 부장판사의 결정으로 이른바 '판사 면책 특권'이 헌재 심판대에 서게 됐습니다. 전 변호사의 오랜 '송사'는 어떤 결론을 맞이하게 될까요.

그법알

 ‘그 법’을 콕 집어 알려드립니다. 어려워서 다가가기 힘든 법률 세상을 우리 생활 주변의 사건 이야기로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함께 고민해 볼만한 법적 쟁점과 사회 변화로 달라지는 새로운 법률 해석도 발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