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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고발한 연대생…"시끄러 공부 못했다" 업무방해죄 되나 [그법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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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법알 사건번호 50] "집회 시끄럽다" 노조 상대 소송전 나선 대학생, 과거 판례는?

최근 연세대학교에서는 학생과 노조 사이 법적 다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발단은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지난 3월 말부터 임금 인상과 샤워실 마련 등을 요구하며 시작한 집회입니다. 집회는 학생회관 앞에서 매일 오전 11시 30분부터 1시간 가량, 3~40명 규모로 진행된다고 합니다. 이를 두고 일부 학생들이 "시끄러워서 공부를 못 하겠다"며 민·형사 소송에 나선 겁니다.

지난 5월 재학생 A씨는 상급단체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를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습니다. 또 노조가 미신고 집회를 열었다며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도 고발했죠.

지난 17일에는 A씨 등 3명이 노조를 상대로 민사 소송도 냈습니다. “강의실까지 시위 소리가 들려 수업이 방해받고 학습권을 침해당했다”"총 638만6000여원을 지급하라"고 했는데요. 등록금을 수업 일수로 나누고, 정신적 피해보상금 100만원을 더한 액수입니다.

[커뮤니티 캡처]

[커뮤니티 캡처]

관련 법령은!

먼저 형법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형법 제314조는 '위력 등으로 타인의 업무를 방해하는 것'을 처벌하고 있습니다.

노조법도 좀 볼까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1조는 헌법이 정한 근로자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언급합니다. 다만 제37조에서는 쟁의행위가 법령이나 사회질서에 위반되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죠.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도 보겠습니다. 집회와 시위를 열기 위해서는 관할 경찰서에 신고해야 하고, 확성기 등의 소음 기준도 대통령령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여기서 질문!

'학업'도 업무방해죄의 '업무'가 되나요?
노동자들이 사업장 안에서 한 집회도 처벌되나요?

법조계 판단은?

먼저 업무방해 혐의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노동조합의 단체행동에 대해 회사가 업무방해로 고소했다는 기사는 많이 보셨죠. 이 사건에서 학교가 아닌 학생들이 "학업을 방해받았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 대법원 판례는 업무방해죄의 '업무'를 '직업이나 지위에 의해 계속적으로 행하는 사무'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이 매일 학교에 나가 수업을 듣는 건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일인 만큼, 업무방해죄 고소 주체로 볼 수 있는 거죠.

다만 실제로 업무가 방해됐는지, 즉 학습권이 침해됐는지 살펴보려면 좀 더 따져봐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집회가 집시법에서 규정한 소음 기준을 지켰는지, 혹은 위법성이 있었는지 등을 살펴봐야 하는 건데요. 김기윤 변호사(김기윤 법률사무소)는 "특정 데시벨을 넘었다고 하더라도 학습권이 침해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소한 학생이 그 자리에 있었는지, 소음이 얼마나 지속됐는지 등도 세밀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판례를 하나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2020년 동아대학교에서도 유사한 일이 있었는데요. 청소 노동자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현수막을 내거는 등 단체 행동에 나서자, 학교가 "노조 출입과 업무방해를 금지해 달라"며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습니다. 당시 재판부는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재판부는 시위 소음에 대해 "집시법 등에서 정한 기준을 초과하는 소음이 있었는지, 사회통념상 참을 한도를 초과하는 소음이 있었는지 소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습니다. "노조가 유인물을 붙이거나 현수막을 걸지 못하게 해달라"는 학교 측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시급히 금지할 필요성이 소명되지 않았다"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당시 재판부는 "조합원들이 대학 내 청소 미화업무를 수행하고 있고, 이들의 사용자인 위탁업체도 대학 내에 있다""캠퍼스는 조합원들이 노조 활동을 하는 장소가 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대목은 "연세대 노동자들의 시위가 '미신고 집회'라서 처벌 대상인가"하는 쟁점으로 연결됩니다. 동아대 사건에서 노조를 대리한 김두현 변호사(법무법인 여는)는 "노조가 조합원들이 일하는 사업장 내 공터 등에서 집회하는 것은 집회시위 신고 대상으로 해석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노조법에는 정당한 쟁의행위에 대해서는 민·형사상 책임을 면책하는 조항이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제3조와 제4조에 따르면, 노동조합이 근로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목적 등을 갖고 단체교섭을 하거나 쟁의행위 등을 했다면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거든요.

물론 여기서도 '정도'는 따져봐야 합니다. 최근 대법원은 한국수자원공사 하청업체 직원들의 쟁의행위가 업무방해가 아니라고 판단하면서, '통상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을 썼는지'나 '비교적 길지 않은 시간에 평화로운 방식으로 이뤄졌는지' 등을 고려하기도 했는데요.

[공공운수노조 페이스북]

[공공운수노조 페이스북]

노조 측은 "학생회관 앞은 공간이 넓어 통행에 방해되지 않고, 강의실도 비교적 밀집해 있지 않다"고 설명합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1시간가량 집회가 벌어진 점도 고려 대상이겠죠. 또 "집시법상 소음 기준치인 75㏈을 넘지 않았고, 학생들의 요구로 65㏈로 줄이기도 했다"는 입장입니다.

이 집회가 집시법상 기준을 넘어 업무방해죄가 인정될 만한 집회인지, 노조의 정당한 쟁의행위가 아닌 미신고 집회인지 여부는 위법성을 판가름할 잣대가 되겠죠. 불법 집회인지에 대한 판단은 학생들이 청구한 손해배상 소송의 결론에도 영향을 줄 전망입니다.

그법알

 ‘그 법’을 콕 집어 알려드립니다. 어려워서 다가가기 힘든 법률 세상을 우리 생활 주변의 사건 이야기로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함께 고민해 볼만한 법적 쟁점과 사회 변화로 달라지는 새로운 법률 해석도 발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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