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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척만척해서 北 관심끌기…평생 한반도 안보 다룬 美 정책 연구원의 회고록

중앙일보

입력

  미국 정책 연구원의 삶과 체험
  오공단 지음
  도서출판 이조

"실패는 공기처럼 늘 주변에 있다. 이를 어떻게 소화하느냐가 인간성을 풍부하게 만든다."
미국의 양대 국책 연구기관인 랜드(RAND)와 국방연구원(IDA)에서 34년간 정책 연구에 몰두했던 오공단 미국 IDA 동아시아 책임 연구원의 회고록이다. 유년 시절부터 써온 일기장과 각종 메모가 책의 토대다. 저자는 '기록하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왜곡되거나 다른 기억들과 얽혀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생을 한반도 안보 연구에 몰두해온 만큼 북측 인사와 관련한 에피소드도 있다. 저자는 2001년 초봄 미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의 비상임 선임연구원 자격으로 영국 윌턴 파크(Wilton Park)의 아시아회의에 발제자로 초청받았다. 회의에는 영국과 공식 수교를 막 시작한 북한 대사와 부관들이 참석했다.

주최 측의 배려로 이용호 당시 영국 주재 북한 대사의 옆방을 배정받았지만, 북측 인사들이 철두철미하게 외면하면서 그들과 말 한 마디도 나누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저자는 "별 볼 일 없는 물건이나 사람이라도 아주 희귀한 드문 물건이나 사람에 대해서는 호기심이 생긴다"면서 "이 심리를 가장 잘 이용하는 국가가 바로 북한"이라고 말한다. 외부 세계 사람들이 북한 지도층 간부를 보면 대화를 해보려고 안달하니 점점 더 버티는 모습을 보인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북한 사람들의 심리를 역으로 이용해 이용호 대사 일행을 본척만척하며 관심을 끄는 전략을 펼쳤다. 그리고 이런 전략은 맞아 들어갔다. 결국 세 명의 북한 관리들이 칵테일 타임에 먼저 말을 걸어온 것이다.

저자는 그들로부터 받은 많은 질문 중에 브루킹스 월급이 얼마인지 묻는 질문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회고했다. 이튿날 저자는 이용호 대사에게 "통일되면 부모님이 젊은 시절을 보낸 평양에서 같이 샴페인을 마실 기회가 있길 바랍니다"라는 서명이 담긴 본인의 저서 『거울을 통해 들여다 본 북한』을 전했다.

저자는 2017년 1월 유방암 선고를 받고 6개월간 수술과 치료를 받으며 "피부로 와닿는 죽음의 의미를 처음 직감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후학들에게 삶의 과정에서 자신이 배운 교훈을 남겨야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그는 젊은 세대를 향해 실패도 인간 삶의 요소 중 하나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실패는 공기처럼 늘 우리 주변이 있다"며 왜 실패가 있었는지 되새겨 보고, 다시 새 방향을 찾는 기회로 삼을 것을 주문한다. 실패를 통해 새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실패를 어떻게 소화했느냐가 인간성을 풍부하게 만들고, 이는 지혜의 원천이 된다는 설명이다.

또 "정의와 불의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하고, 정의가 불의 앞에서 시련 당하면 절대로 침묵을 지키지 말고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후학들에게 제언했다.

저자의 열정은 정책 연구에만 머물지 않았다. 책은 그가 1986년 버클리 한국학센터 학술 프로그램 담당으로 활동하던 시절, 버클리 동문인 조중건 대한항공 사장을 초청했던 기억과 1996년 코리아 클럽(Korea Club)을 창설했던 사례 등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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