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공짜 팽이버섯 20t … 서양 입맛 바꿨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1면

박희주 사장이 버섯 출하장에서 미국·캐나다·유럽 등으로 수출할 팽이버섯을 들어 보이고 있다. 조문규 기자

"한국 농업도 이제 세계시장에서 먹혀드는 품목을 개발하고 수출해야 개방화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경북 청도군 이서면에 있는 버섯농장 '그린피스'의 박희주(53) 사장. 그의 꿈은 버섯 하나로 세계 시장을 장악하는 것이다. 고교를 졸업한 뒤 고향에서 농사를 짓다 1983년 중동 건설현장에서 번 300만원으로 버섯 재배를 시작한 그는 현재 연간 170억원(8000t 생산)의 매출을 올리는 버섯회사 CEO로 성장했다. 해외로 눈을 돌린 박 사장은 98년 미국.캐나다에 이어 지난해 말부터 네덜란드 등 유럽시장까지 진출했다. 수출 물량은 올 들어 10월 현재 12개국에 616t(135만 달러)이며, 계약분까지 합하면 연말까지 200만 달러어치 수출이 무난할 것으로 보고 있다.

◆ 세계 무대로 진출=박 사장은 지난해 말 네덜란드의 바이어에게 팽이버섯을 팔아 달라며 무작정 40t을 컨테이너 8개에 실어 보냈다. 미국.캐나다에 이어 5년 전부터 유럽시장을 두드렸으나 한국산 팽이버섯을 알아주는 곳이 없어 '출혈 수출'을 감행한 것이다. 이 바이어는 버섯을 다 팔지 못하고 20t을 창고에 쌓아 두고 있었다. 버섯을 썩힐 수 없었던 박 사장은 바이어에게 남은 버섯을 한인식당 등에 공짜로 나눠주도록 했다. 또 직원 한 명을 보내 '버섯샐러드' 등 요리법을 개발해 수시로 무료시식회를 열거나 음식박람회 등에 참여해 팽이버섯을 소개했다.

박씨의 '맛들이기'공세가 먹혀들면서 식당 등의 주문량이 점차 늘어났다. 자신감을 얻은 박씨는 올해 초 네덜란드에 사무실을 내고 직원 한 명을 상주시켜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가 수출에 눈을 돌린 것은 외환위기로 소비가 급격히 줄면서 내수로는 한계가 있다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천신만고 끝에 미주.유럽시장을 뚫었고 자신감을 얻은 올해 초 영어 능통자 세 명으로 회사에 무역부도 만들었다. 생산에서부터 수출까지 모두 자체 해결하려는 욕심에서다.

내년엔 500만 달러 수출이 목표다. 농산물유통공사에 따르면 한국의 버섯류 수출액이 2005년도 280만 달러, 올 9월 현재 267만 달러(167t)에 지나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액수다. 캐나다에 2700여 평 규모 버섯 농장을 건립하고 미국.러시아에 사무실도 낼 계획이다.

◆ 끊임없이 품질 향상=14일 오전 찾아간 그린피스 6농장. 2층 철제 건물(1500여 평)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기계음이 '윙윙'거린다. 한쪽엔 밀기울.목화씨 껍질 등을 담은 부대와 플라스틱 용기가 가득 쌓여 있다.

한 직원은 "버섯의 영양소인 배지(培地)를 만드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박 사장은 "1만2000평의 6개 농장에서 직원 300명이 근무하고 있어 버섯 농장으론 국내 최대 규모"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버섯 공장'인 셈이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버섯은 팽이.새송이.황금송이 버섯 등 세 가지.

83년 100여 평의 비닐하우스에 느타리버섯을 재배해 꽤 많은 돈을 번 그는 94년 융자금 등 8억5000여만원으로 1농장(600평)을 지었다. 그는 번 돈 대부분을 재투자하면서 농장을 늘려 갔다. 98년엔 버섯 생산을 위한 연구실을, 99년엔 기계를 직접 만드는 기계제작부까지 설립했다. 연구실에는 대학에서 미생물 등을 전공한 전문가 다섯 명이 우수 배지 개발 등 버섯 품질 향상을 위해 연구 중이다. 기계제작 덕분에 2003년 문을 연 6농장의 자동화 비율을 80%로 끌어올렸다. 그는 귀농인 10여 명의 버섯 재배를 지도하고 인근 여섯 농가와 수익을 절반씩 나누는 협업농장을 별도 운영 중이다.

청도=황선윤 기자<suyohwa@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