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중앙시평

우크라이나 사태에 잘 대처하려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

우크라이나에서 전투가 시작된 지 100일이 넘었다. 우크라이나의 저항은 여전하다. 러시아가 장악한 동부와 남부 벨트에서 일진일퇴가 계속되고 있다.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미 우크라이나 전투는 국제 질서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도 영향권에 들었고 중요한 정책 선택이 우리 앞에 있다. 정책 선택의 기반이 될 바람직한 사회적 논의를 위하여 사태의 함의와 대처 시 유의사항을 짚어 보고자 한다.

러시아는 왜 군사행동을 했을까 부터 살펴보자. 일각에서는 러시아가 소련의 영역을 회복하려는 공세적 의도 때문이라고 해석하지만, 사실은 방어적 위협 인식이 누적되어 분출된 행위라고 보아야 한다. 러시아는 탈 냉전이래 서방이 소련 세력권인 동구를 잠식하여 안보 위협이 커졌다고 인식한다. 이른바 나토의 동진이다. 더구나 이 과정은 동구의 자유화, 민주화 흐름과 함께 진행되었다. 러시아는 이 흐름을 체제 위협으로 인식한다. 러시아는 서방이 러시아의 약화와 체제 교체를 추구한다고 본다.

미·러·중 대립 갈수록 첨예화
동맹과 공조는 불가피하지만
미국과 러·중 사이에서 좌표 정해
우리 실정에 맞게 리밸런스 해야

안보 위협과 체제 위협이라는 인식을 키워온 러시아는 소련의 일부였던 우크라이나마저 나토 가입을 추진하자, 이를 견제하기 위해 크리미아 합병과 돈바스 지역 분리독립을 추진했다. 그래도 친 서방 행보가 계속되자, 러시아는 지금 군사행동을 통해 단기간에 우크라이나를 패배시키고, 협상을 통해 우크라이나를 중립화하는 것이 가만히 있는 것 보다 낫다는 판단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러시아가 침공을 단행하자, 러시아의 안보 이해는 뒷전이 되고, 21세기 유럽에서 자유와 민주를 추구하는 주권국을 무력으로 강제하려는 데 대한 국제적 비난 여론이 비등했다. 서방은 러시아의 침공을 민주(democracy)에 대한 전제(autocracy)의 공격으로 간주했다. 결과적으로 우크라이나 침공은 몇 갈래로 국제적 역학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는 한국이 정책 선택 시 감안해야 할 주요 여건이 되었다.

첫째로 서방과 러시아는 탈냉전을 넘어 첨예한 대결의 시대로 들어갔다. 서방은 유례없이 단합하여 러시아에 사상 최고의 제재를 가하고 있다. 과거 트럼프 시기에는 미국과 유럽 사이에 이견이 심화되고, 영국이 EU를 탈퇴하는 상황이 있었다. 러시아에 달가운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러시아는 단합된 서방의 고강도 제재를 맞는 난국에 처했다.

둘째로 우크라이나 사태는 아시아 지역에서도 미·러, 미·중 대결 구도를 심화시키고 있다. 물론 중국은 타국에 대한 무력 침공을 반대해왔으므로 내놓고 러시아를 지원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서방은 중국을 전제(autocracy)의 편으로 보며, 중국은 전략적 파트너인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제재를 자신에 대한 잠재적 조치로 해석한다.

셋째로 우크라이나 사태의 글로벌, 지역적 영향이 이럴진대, 한반도에 대한 영향도 적을 리 없다. 우크라이나 관련 미·러 대립은 한국과 같은 미국의 동맹국에게 달리 처신할 여지가 적다는 현실을 말해준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한국에게 전쟁 상황에서 동맹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각인시켰다. 반면 북한은 미제의 침략을 막는데 핵무기가 긴요하다는 점을 확신했을 것이다. 북한은 러시아를 적극 지지하고 있다.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가 심화될 소지가 크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영향이 이러한 가운데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섰다. 새 정부는 동맹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서도 전 정부 보다 대미 공조를 강화하는 쪽이다. 미국의 중국 견제 요청에도 보다 적극적이다.

그러니 미국으로부터의 주문은 늘어날 것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새 정부는 이를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수교이래 최저점인 한·러 관계에 추가적인 반작용이 있을 것이다. 중국 또한 한국의 대중, 대러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것이다. 중국은 수교이래 30년 간 한국을 미국으로부터 중국 쪽으로 견인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여겼을 것이므로 지금은 당혹스러울 것이다. 이 추세를 견제할 대응 조치를 낼 것이다.

그렇더라도 세계 10 대 무역국이자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은 국제사회의 주 흐름과 함께 할 수밖에 없다. 남는 문제는 어느 정도로 함께 하느냐와 러시아와 중국에 대해 어떤 보완책을 병행하느냐 이다. 미국과 러·중 사이에서 한국이 설 좌표와 나갈 방향에 대한 기준을 세운다면 이 문제에 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의 정체성에 맞는 미·러, 미·중 간 리밸런스 지점과 헤징 대책을 찾기 쉬울 것이다.

한편 사태의 추이를 면밀히 보고, 이를 우리의 대처에 반영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만큼 지금의 국제질서에서 우크라이나와 한반도는 연동되어있다. 전투와 협상은 물론 러시아 내부사정까지 모두 주목을 요한다. 19세기 중반 크리미아 전쟁의 결과로 러시아에서 농노 해방 등 개혁 조치가 나왔던 사례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새 정부가 미국과 러시아 중국 사이에서 최적의 대처를 하기를 바란다. 지금은 미국, 러시아, 중국 모두 아주 민감해져 있는 때이다.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