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형 총독부 빨리 허물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25일 청와대 「대통령 살림집」이 준공됐다.
노태우 대통령이 중앙청을 딴 곳으로 옮겨 일제 36년 우리 민족을 수탈한 역사적 상징물로 남기겠다고 한 기사를 중앙일보 25일자에서 읽고 만시지탄은 있으나 참으로 잘한 것으로 박수를 쳤다.
도대체 이 조선총독부 건물을 어떤 연유로, 누가 세웠는가를 제대로 안다면 벌써 오래전에 허물었을 것이며 중앙청이라는 명칭으로 사용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1902년 일본인들에 의해 조선의 국맥을 끊을 수 있는 최적지로 경복궁터가 물색되었고 1926년 완공된 조선 총독부는 우리 민족에 일본의 우월성을 과시하고자 당시 일본에도 없던 대단한 건물을 이 땅에 세웠던 것이다.
이 건물은 민족 문화의 유산이 아니며 갖은 압박과 형언할 수 없는 우리 민족에 대한 일제36년 수탈 현장의 상징물이란 것 말고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건물이다.
친일파와 그 잔존 세력들의 향수병적인 발로가 아니고서는 그러한 건물에 어찌 감히 중앙청이라는 이름으로 행정부의 요직들이 입주할 수 있었겠는가. 실로 중앙청건물 고수의 일부론자들의 저의를 의심치 않을 수 없다.
세월이 흘러 망각돼서인지 현재의 국립 중앙 박물관 건물인 과거 조선총독부 건물의 건축 사연을 너무도 모르고 있는 듯 싶어 안타깝고 딱하기만 하다.
1년에 30만여명의 일본인 관광객이 국립 중앙 박물관을 찾고 있다. 이들 일본인들은 전시된 유물을 관람하러 온 것이 아니라 한때 화려했던 일제 36년의 그 시절을 회상코자 방문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북악산은 큰 대자요, 조선 총독부는 일자 형상이며, 시장 건물은 본자를 상징하고 있어 남산에 올라가 굽어보면 영락없는 대 일본이다.
한반도의 중심인 서울에 대 일본이라는 형상의 글씨가 엄존해 있다니 이 얼마나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일인가.
독립한 이래 대통령의 살림집이 조선총독부의 부속 건물이었다는 것도 문제였다. 다행히 순수한 우리 고유의 건축양식으로 대통령 살림집이 신축된 것은 많은 뜻과 의의를 내포하고 있어 감회가 새롭다.
하루빨리 중앙청이 헐려 옛 모습이 복원되고 시청도 용산의 미 8군 자리로 이사가고 그 자리가 공원으로 꾸며져야 비로소 독립 국가의 체통과 체면이 설 것이고 후손들의 선조에 대한 부끄러움을 다소나마 덜 수 있을 것이다. 서상우 <서울 용산구 한강로 3가 40>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