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를 비롯한 태풍 권역에 우리 마당이 들어와 있다.”
윤석열(얼굴) 대통령이 3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한 말이다. 윤 대통령은 6·1 지방선거 승리로 국정 운영 동력을 확보했다는 평가가 많다는 질문에 “여러분은 지금 집 창문이 흔들리고 마당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걸 못 느끼나. 정당의 정치적 승리를 입에 담을 상황이 아니다”며 이렇게 말했다. 선거 승리가 문제가 아니라 민생경제 위기 해결이 더 시급하고 중요하다는 얘기다. 윤 대통령은 전날 지방선거 결과가 확정된 뒤에도 정치적 논평 대신 경제 위기 극복을 강조한 바 있다.
위기 징후는 물가 급등으로 확인된다. 이날 통계청이 발표한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4%.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8월(5.6%) 이후 13년 9개월 만에 최고치다. 경유·돼지고기·채소 등 어느 것 하나 안 오른 게 없다. 무엇보다 경유·휘발유 등 석유류(34.85%)가 큰 폭으로 뛰었다. 이는 생산·물류비용 상승으로 이어져 한국 경제 전반을 위축시키게 된다. 당장 4월만 해도 통계청 산업활동동향에서 ‘전(全) 산업 생산’ -0.7%, 소매판매 -0.2%, 기업 설비투자 -7.5% 등 생산·소비·투자가 모두 하락했다. 수출은 수입 증가세를 따라잡지 못해 무역수지는 4월과 5월 연속 적자다.
물가는 앞으로도 고공행진을 이어갈 전망이다. 이승헌 한국은행 부총재는 “국제 유가와 국제 식량 가격이 높은 수준을 지속하는 가운데 최근 거리 두기 해제 등으로 수요 측 압력이 더욱 커졌다”면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월과 7월에도 5%대의 높은 오름세가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13년 만에 닥친 5%대 물가와 실물경기 둔화는 한국 경제에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경고음을 강하게 울리고 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최근의 한국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에 접어든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스태그플레이션이 무서운 것은 해법이 마땅치 않아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가를 잡으려고 금리를 올리면 경기는 더 얼어붙고, 경기를 부추기면 물가는 더 뛰어오르기 십상이다. 최근의 유가 급등 상황은 우크라이나 사태 등 대외적 요인이어서 정부로서도 뾰족한 수가 없다. 수도권 대학의 한 경제학부 교수는 “그나마 기준금리 인상을 통해 물가 상승률을 최대한 억제하는 것 외에는 묘책이 없어 보인다”며 “윤 대통령의 고민도 여기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한은은 추가 금리 인상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시한폭탄 같은 가계부채(3월 말 기준 1859조원)에 불을 붙이게 될지 모른다. 전영준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금리가 상승하면 빚을 못 갚는 채무불이행 가구가 증가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를 힘겹게 버텨낸 민생경제엔 한층 가혹한 시기가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