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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유 46%, 돼지고기 21%, 감자 28% 올랐다…미쳤다 물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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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5월 소비자물가가 지난해 같은 달보다 5.4% 상승했다. 세계 금융위기를 겪었던 2008년 8월(5.6%) 이후 13년 9개월 만에 최고 상승률이다. 정부와 전문가는 이미 5%대의 높은 물가 상승을 예상하고 있었다. 문제는 앞으로다. 물가가 언제까지 오를지, 어떤 품목의 가격이 계속 오르는지가 관건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3일 통계청이 발표한 ‘5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07.56(2020년=100)을 기록했다. 전년 동월 대비 5.4% 상승했는데, 한 달 전(4.8%)보다도 상승률이 높다.

뭐가 그렇게 많이 올랐나

경기가 활성화하는 과정에서 소비자의 수요가 늘면서 물가가 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지금은 경기가 둔화하고 있는 상태에서 공급 가격이 오르며 물가가 상승하고 있다.

대표적인 품목이 석유류다. 국내 석유류 가격은 국제유가의 직접 영향을 받는다. 지난달 석유류는 전년보다 34.8% 급등했다.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 5.4% 중 1.5%포인트를 이 석유류가 끌어올렸다.

서민 장바구니 부담을 키우는 먹거리 가격도 최근 안정세에서 오름세로 전환했다. 지난달 농축수산물 가격은 4.2% 상승했는데, 특히 축산물 가격이 12.1% 올랐다. 어운선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가정 내 식료품 수요가 증가하고 있었던 데다 국제 곡물 가격이 많이 올라 사료비가 상승한 영향”이라며 “세계적 공급망 차질로 물류비 등 수입 단가도 올랐다”고 설명했다.

석유류와 축산물 가격은 각각 국제유가, 국제 곡물 가격 등 대외 요인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직접 손쓰기 어려운 품목이라는 점에서 근심을 더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경유 가격은 전년 대비 45.8% 비싸고, 휘발유(27%)와 등유(60.8%)도 가격 상승률이 두드러지게 컸다. 돼지고기 가격은 20.7% 올랐고, 수입쇠고기(27.9%)·감자(32.1%) 등 가격이 서민 부담을 더하고 있다.

국내 휘발유와 경유 가격은 최근 L당 2000원선을 돌파했다. 사진은 지난 1일 서울의 한 주유소. 연합뉴스

국내 휘발유와 경유 가격은 최근 L당 2000원선을 돌파했다. 사진은 지난 1일 서울의 한 주유소. 연합뉴스

2분기 전기요금 인상에 이어 지난달 가스요금이 오른 효과도 반영되며 도시가스 가격이 전년 대비 11% 상승했다. 전기·가스·수도 가격을 통틀어서는 9.6% 상승하며 통계 작성 이래 최고 기록을 세웠다.

개인서비스 가격도 전체 물가 인상을 잡아끌었다. 특히 외식 가격이 7.4% 올랐다. 치킨(10.9%) 등의 가격 상승이 가팔랐는데, 배달비를 비롯해 밀가루(26%)·식용유(22.7%) 등 재료비가 많이 올랐기 때문이다.

앞으로 인플레이션 어떻게 되나

5월에 이어 6월에도 5%대의 물가 상승이 유력한 상황이다. 통계청은 이달 소비자물가가 직전 달과 비교해 0.4% 이상 떨어져야 5%대 아래로 내려갈 수 있다고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물가는 매달 전월 대비로도 0.6~0.7%씩 야금야금 올라 왔다. 이 흐름이 갑자기 내림세로 반전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어운선 심의관은 “지금 수준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올해 연간 물가 상승률은 4.3%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서 한국은행은 올해 물가 상승률을 4.5%로 전망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는 4.2%를 제시했다. 당초 정부는 2.2%의 물가 상승률을 예상했지만, 이달 발표할 정부 경제정책 방향과 함께 전망치를 상향 조정할 계획이다.

정부가 집행 중인 추가경정예산(추경)은 물가 압력을 더 키우고 있다. 2일까지 소상공인 손실보전금이 19조8000억원 지급되며 시중에 돈이 풀리고 있다. KDI는 이번 정부안 기준 추경이 물가 상승률을 0.16%포인트 더 올릴 것으로 추정했는데, 국회에서 규모가 커지면서 물가 견인 효과는 더 커질 수 있다.

결국 정부는 돼지고기 등에 대한 관세를 한시적으로 없애고 농축수산물 할인쿠폰을 나눠주는 등 긴급 물가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효과는 물가 상승률을 0.1%포인트 정도 떨어뜨리는 데 그칠 것이란 게 정부의 관측이다. 정부 대책이 추경으로 인한 물가 상승을 단순히 상쇄해내기도 쉽지 않다는 의미다.

“가격 인상 자제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방기선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이날 “최근 오름세를 보이고 있는 농축산물에 대해 보다 각별히 관리하겠다”며 “여름철 기상 악화 등 불안 요인에 대비해 배추·무·마늘·양파 등 총 3만4000t을 비축하겠다”고 밝혔다. 방 차관은 또 “축산물에 대해서는 최근 강원도 홍천에서 발생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에 대한 긴급 방역 조치를 비롯해 가격 불안 요인을 철저히 관리하겠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는 가격 인상 요인이 있는 기업이 가격을 최대한 덜 올릴 수 있도록 정부가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직접 지출을 하기보다 기업에 세제 혜택을 부여해서 기업의 비용 상승 요인을 줄여줌으로써 소비자물가로의 전이를 차단하는 접근이 유효할 것”이라며 “기업이 소비자 가격 인상을 최대한 자제하면 법인세 등에서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 등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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