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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원대 수박, 이젠 2만원"…마트 갈때마다 'A공포' 커진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방선거로 휴일이었던 지난 1일 가족과 함께 마트를 찾은 이모(49)씨는 한층 오른 물가를 체감했다. “지난해 여름만 해도 1만원대였던 것 같은데 수박 한 통에 2만원이 넘더라. 사오는 물건은 비슷비슷한데 마트 갈 때마다 결제하는 금액이 늘어난다. 고기며 채소, 과일까지 값이 안 오르는 게 없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를 찾은 한 시민의 텅 빈 장바구니. 뉴스1

서울의 한 대형마트를 찾은 한 시민의 텅 빈 장바구니. 뉴스1

이른 무더위, 급증하는 나들이 수요에 ‘애그플레이션 공포’가 더 커졌다. 애그플레이션이란 농업(Agriculture)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먹거리 가격이 급등하면서 일반 물가도 상승하는 현상을 뜻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산물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2일 전통시장과 대형마트 같은 소매점에서 수박 1개(상품 기준)는 평균 2만1740원에 팔렸다. 1년 전 1만7944원과 비교해 21.2% 값이 올랐다. 평년(5년 평균) 가격 1만7787원과 견줘도 22.2% 비쌌다. 지난 3~4월 기상이 나빠 생산량이 줄었는데 일찍 찾아온 무더위로 수박 수요가 몰린 탓이다. 비료ㆍ인건비 등 부대 비용이 오른 것도 가격에 반영됐다.

다른 채소ㆍ과일 가격 역시 비슷한 이유로 많이 올랐다. 2일 기준 참외 10개들이 가격도 2만원을 뛰어넘었다. 전년 대비 10.9% 오른 2만832원이었다. 멜론 1개 값은 1만2413원으로 1년 사이 21.5% 뛰었다. 양배추(39.5%), 깻잎(25.6%), 배추(25.2%), 열무(24.4%), 시금치(20.7%) 등 가격도 지난해에 비해 크게 올랐다.

이들 채소 값은 평년과 비교해도 20~60%가량 비쌌다. 3~4월 내내 크게 벌어진 일교차에, 최고 기온이 30도 안팎을 오르내리는 이른 무더위가 이어지면서 주요 농산물 생산ㆍ공급에 차질이 빚어지면서다.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이 오기도 전 ‘보복 여행’까지 몰리면서 나들이 때 수요가 많은 채소류ㆍ고기류를 중심으로 가격이 고공비행 중이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소비자가 돼지고기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소비자가 돼지고기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돼지고기 가격도 많이 올랐다. 축산물품질평가원 통계를 보면 지난 1일 기준 국산 돼지고기 삼겹살 소매가는 100g에 2953원으로, 1년 전보다 17% 상승하며 3000원 돌파를 눈앞에 뒀다. 국제 곡물 가격이 뛰면서 사료 값이 오른 데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최근 다시 유행하기 시작한 것도 돼지고기 값 상승에 한몫했다. 닭고기(육계) 1㎏ 소매가도 5968원으로, 6000원에 육박한다. 전년 대비 10.5% 상승했다.

사육 마릿수가 늘면서 소고기 가격은 그나마 안정세지만, 값이 뛰었던 지난해와 큰 차이는 없다. 소고기(1+등급 기준) 100g당 가격은 안심 1만6173원으로 전년 대비 1.9% 올랐고, 등심은 1만3056원으로 0.4% 소폭 하락했다.

지난달 30일 정부는 물가 대응을 중심으로 한 민생안정대책을 발표했지만 끓어오르는 장바구니 물가를 식히기엔 역부족이다. 돼지고기ㆍ식용유 관세 인하 등을 주요 대책으로 내놨는데 주로 수입 먹거리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그마저도 국제 물가 상승, 원화가치 하락 등으로 관세 인하 효과가 상쇄될 분위기다.

실제 KAMIS 통계를 보면 2일 기준 미국산 오렌지 10개 가격은 1만5604원으로 전년 대비 47.7% 급등했다. 망고(22.6%), 바나나(9.6%) 등 다른 수입 과일 가격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밥상 물가에 비상이 걸렸지만 당장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게 더 문제다. 통계청은 3일 소비자물가지수를 발표한다. 국제유가, 공산품 가격까지 뛰면서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4년 만에 처음으로 5%(전년 대비)를 돌파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와 통화 당국은 대외 변수의 요인으로 제어하기 어려운 물가 위기를 한목소리로 경고하고 있다.

서울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채소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서울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채소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경제단체장 간담회에서 “경쟁적인 가격과 임금 인상은 오히려 인플레이션 악순환을 야기할 수 있다”며 “기업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생산성 향상 등을 통해 가격 상승 요인을 최대한 자체 흡수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이날 “1970년대와 같은 높은 인플레이션이 나타나면서 중앙은행의 역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소득 양극화와 부문 간 비대칭적 경제 충격의 문제를 과연 통화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원자재ㆍ인건비 등 모든 곳에서 물가가 오르고 있는 건 사실이나 이런 분위기를 이용해 실제 원가보다 가격을 더 올리는 물가 편승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고 본다”며 “특히 밥상 물가에 끼치는 영향이 큰 농산물은 수확 기간이 1년 중 정해져 있기 때문에 물가 컨트롤이 더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정부는 물가 편승 인상에 대한 점검과 감시를 강화하고, 밥상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큰 농산물 공급 상황을 좀 더 꼼꼼히 점검하고 보완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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